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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Hur Jun 12. 2017

재택근무 10개월째

나는 미국 LA에 살고 있는 공돌이다. 2015년 11월 기나긴 학교생활을 마치고, 음성신호처리와 언어처리를 하는 작은 미국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이 회사의 특이한 점은 모든 직원이 재택근무를 한다는 것.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맞벌이 부부에게는 큰 혜택일 수 있다. 배우자가 전 세계 어디에 직장을 잡더라도, 가족과 함께 살면서 내 분야의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 작은 회사지만 직원들의 경력이 좋은 점이 마음에 들었고, 함께 일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퍼를 수락했다. 그리고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나름대로 내 사무실 책상

나름대로 사무실이라고 생각하는 내 방 한켠에서 대부분의 회사일을 하고 있다. 내 직책은 Research Scientist. 즉, 연구원이다. 일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컴퓨터로 모델링, 실험, 약간의 코딩 등을 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내 분야의 논문과 기사도 틈틈이 읽는다. 시간을 내서 논문을 써보려고 마음먹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건 게을러서 실패. (회사일 하면서 아이도 보면서 논문까지 쓰는 선배님 후배님들 정말 존경한다.) 학생 때부터 사용하던 책상이 내 사무실 책상이 되었다. 의자는 머리 받침대까지 있는, 인체공학적이지만 그나마 가격이 합리적인 것으로 구매했다. 키보드도 구매. 마우스는 쓰던 것으로. 모니터는 있던 것으로 버티다가 최근에 24인치로 질렀다. 가끔 카페에서 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집에서 한다. 커피 향이 온몸을 뒤덮는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전원 재택근무를 해서 그런지, 회사 문화는 상당히 자율적이다. 휴가는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만큼, 일도 하고 싶은 시간에 할 수 있을 만큼. 하루 이틀 정도는 보스에게 알리지 않고 쉰다. 알아서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하는 문화다. 하지만,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놀라웠던 점은, 회사 사람들이 해내는 일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회사 워크샵 때 직접 만나보니, 아웃풋이 쏟아져 나오는 유형의 사람들이더라. 상대적으로 내 아웃풋이 적어 보이지 않을까 눈치를 본 적도 있지만, 지금은 나만의 페이스로 마음 편히 일하려고 하는 편이다. 뭐 나만의 장점과 기여하는 부분이 있겠지. 이야기를 특별히 더 자주 하는 그룹이 있기는 하지만, 사내 정치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지금까지는 일에만 신경 쓰며 살고 있다. 서로 모르는 것은 열심히 도와주는 분위기라서, 배우는 것도 많다. 회사 초창기 멤버들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게 보인다. 그들도 이런 시스템이 잘 돌아갈지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잘되니까 놀라고 있단다.


회사 내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메신저로 한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과거의 모든 대화의 검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메모 필요 없이 토론에 집중할 수도 있고, 따로 정리를 해놓을 필요도 거의 없다. 메신저 방은 주제별로 세분화되어 있다. 사람들의 배경이 다양하니 재미있는 방향으로 대화가 진행되기도 한다. 공돌이 유머가 난무하는 잡담방도 있다. 정기적인 미팅은 화상채팅으로 하는데, 가끔 농담도 하지만, 주로 업무에 관련된 말만 빨리빨리 하고 끝낸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작은 회사가 내 첫 직장이 된다고 생각하니, 나중에 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오퍼를 수락하기 전까지 왔다리 갔다리하는 나에게, 바쁘신 와중에도 많은 조언을 해주신 교수님들 선배님 후배님 형 누나 동생들이 참 고맙다. 덕분에 나는 잘 살고 있다. 이 특이한 회사 문화를 즐기면서. 이제는 내가 이런 시스템의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딸아이를 내가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기, 병원에 데려가기, 아이가 아플 때는 집에 같이 있어주기 등은 주로 나의 몫이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딱 마주쳤을 때, 아이가 날 보며 씨익 웃으며 아장아장 걸어올 때 느껴지는 특별한 감정이 있다. 일 때문에 집에서 함께 있을 수 없는 미안함, 오늘도 학교에서 잘 놀고 잘 지냈다는 안도감과 대견함, 어떤 새로운 걸 했는지 선생님에게 들을 때의 놀라움. 차에 태우면서 "자~ 이제 엄마 보러 갈까?"하면 "응. 엄마" 라고 대답하고 이어지는 "맘마 맘마" 혹은 "깍까 까까" (맘마는 밥, 까까는 간식이란 뜻). 그때 미리 사놓은, 아이가 좋아하는 Plum Pouch나 간식을 쥐어주면서 아빠 노릇을 하는 기분도 느껴본다. 아이는 나중에 기억을 못 하겠지만, 내 기억에는 소복이 쌓이고 있다.


한 가지 단점이라 한다면, 조금 심심하다는 거.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고, 운동도 같이 하고, 술도 한잔 하는 어울림이 아쉽다. 대신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더 어울리려고 한다. LA는 할리웃의 도시 아닌가. media, game, movie, data analysis, marketing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Snap과 Hulu는 우리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다. Google, Netflix, Apple 등의 IT 기업 오피스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는 편이고, 그러면서 생기는 우연 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을 좋아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뒤섞여 지내면서, 심심할 때는 지금처럼 글도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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