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을 알고 싶다
문득, 대학원 때 알게 된 교수님이 생각났다. 지금까지도 많이 존경하는 분이다. 전문 분야의 풍부하고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대가답게, 명료하면서도 날카롭게 말씀하셨다. 밖에서 어울릴 때는 따뜻한 할아버지의 인자함과 유머까지 겸비한 분이셨다. 디펜스 발표 날에는 본인이 직접 만드신 빵을 가져오셔서 놀라고 감사했던 교수님. 그분의 제자들과 동료 중에서 그분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분은 내가 만나본 다른 학자에 비해 유독 어떤 말씀을 많이 하시곤 했다. 그건 "I don't know."였다. 모른다고 하시는 이유도 함께 말씀해 주셨다. 그 교수님은 일상생활에서도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철저히 구별해서 말씀하시곤 했다. 모르는 것이 많아야 아는 것도 많다는 말이 떠오를 때, 이 분이 함께 생각나곤 한다.
그분의 "I don't know"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면을 일깨워 주거나, 내가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논리적이지 않음을 알려주거나, 패턴 매칭으로 연결하고 넘어간, 즉 익숙하고 비슷하지만 정확히는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한 지적이 곤 했다. 나에게 익숙하거나 내가 아는 무언가와 많이 닮았을 뿐, 자세히 살펴보고 꼼꼼하게 따져보면 다른 문제에 성급하게 적용하는 경우들. 아직도 내가 아이디어를 내거나 토의를 할 때, 착한 내 동료들이 조용~해지면, 보통은 나의 패턴 매칭이다. 디테일을 잘 모를 때 생긴다.
그래서, 되도록 시간을 두고 이것저것 살펴보고 말하려 하는데, 일상생활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단순히 말을 하고 싶어서 튀어나오는 말들. 내 안에 무엇이 그 말을 튀어나오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극히 감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곤 한다.
정말 최소한의 노력이겠지만, 내 전문성이나 직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말,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말, 특히 나보다 후배이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이 연관될 때는 조심하려 한다. 며칠 정도 시간을 두고, 자료도 좀 찾아보고, 한 숨 자고 나서 다음날 생각해보면 하지 않는 게 나은 말. 그 정도만 해도 어느 정도 걸러지더라. 그러고 나서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뿌듯해한다. (그리고는 얼마 안 가서 실수를...)
지금 이런 말을 왜 하냐면, 이번 조국 딸 스캔들에 대해서 아직 social network에 아무 말 안 했거든. 좀 뿌듯하다. 나도 나름 가방 끈 긴 사람이고, 국제 학회에 publish 된 논문이 30편 이상, 인용수는 400회 이상이다. 청문회, 검찰 조사, 그리고 당사자들의 라이브 증언을 좀 더 보고 난 뒤에, 욕을 하던, 응원하던, 비웃던, 넘어가던 할 생각이다. 참고로, 나는 한국 정치인에 대한 bar를 지난 5년간 많이 낮췄다. 계속 터져 나온 '윤리' 문제는 포기한 지 오래. 본인의 논문 80% 가까이를 표절로 도배한 정치인이 제1 야당의 대변인으로서 조국 딸의 논문을 문제 삼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무엇을 바랄까. 어쨌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최소한, 넘쳐나는 찌라시, 가짜 뉴스, 가식이 많이 걷어진 상태에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