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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니정 Apr 06. 2021

기계의 감정을 노래한 아티스트
크라프트베르크

[Seoul #4] Inspired By Kraftwerk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내한했을 때가 대략 2년 전쯤이었을 거야. 올림픽공원에서 이뤄졌는데 하필 그날이 팝스타 제시 제이(Jessie J)도 공연하는 날이라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었지. 그 인파 속에서 크라프트베르크 팬을 찾는데 얼마나 애먹었는지 몰라. 역 앞에서 야광봉, 셔츠 등 굿즈를 팔았었는데 크라프트베르크 관련 굿즈는 없던 걸 보니 참 웃기더라고. (있어도 웃기긴 하네...) 


크라프트베르크는 1970년에 데뷔한 '전자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의 뮤지션이야. 기타, 드럼과 같은 밴드 악기들이 득세할 때 노브가 잔뜩 달린 전자악기를 연주하는, 그 당시 참 마이너틱한 행보를 걸었었지. 감성적이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대중 음악에 비해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은 차갑고 딱딱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 로봇, 고속도로, 숫자, 방사능 등 인간이 아닌 것들을 자신들이 만들어낸 전자음으로 표현했어. 이는 곧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다프트 펑크(Daft Punk)에 이어 현재 EDM 씬을 만들어낸 계기가 되었지. 


https://www.youtube.com/watch?v=SY7EFLuDN-Y

(


크라프트베르크는 다프트 펑크(Daft Punk)에게 영감을 줬다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작은 규모로 공연이 시작되었어. 스탠드석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찐팬들과 뒤에 좌석에서 조용히 감상하는 형님(?)들까지 한 3000명 정도 되었던 것 같아.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까 함성소리는 10만명 내한공연 못지 않더라. 알고 보니 진짜배기 전자음악 덕후의 성지였던 것이지.


(2019년 크라프트베르크 서울 내한 공연)


크라프트베르크는 공연이라기보다는 아트 전시회 같았어. 트랙이 바뀔 때마다 백월은 크라프트베르크 특유의 오브젝트들이 담긴 비디오 아트가 나오는데 참 인상 깊었어. 특히 오프닝 트랙 'Numbers'가 나올 때 뒤에 빼곡하게 넘실거리는 숫자들이 아직도 기억나. 내가 마치 진법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빠져든 것만 같았었어. 나중에는 트랙마다 어떤 비디오아트가 나올지 기대될 정도였다니까. 크라프트베르크는 내가 본 내한 공연 중 가장 규모가 작았으나 가장 임팩트가 컸었어. 지금도 말이야.


크라프트베르크는 현과 관이 가득 찼던 아날로그 시대에 작은 파동을 만들었었어. 도시의 소음을 노브가 가득한 전자악기로 구현, 이 음을 리드미컬하게 버무려 하나의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던 이 실험정신은 전자음악의 큰 방향성을 제시했지.


'아날로그의 디지털화'

전자음악의 기본 철학이 아닐까 싶어. 크라프트베르크는 특히 인간과 기계 사이의 연결되는 끈을 만드려고 했었어. 자신들을 로봇으로 묘사하고 고속도로, 방사능, 숫자 등 기계의 요소를 인간의 감정으로 치환했지. 사람들은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을 들으면 딱딱하다고 해. 그런데 기계가 들으면 굉장히 감성적이라고 할 껄? 이렇게 생각해보니 크라프트베르크가 인간 사회 그리고 후대의 전자음악 뮤지션들에게 어떤 이정표를 제시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가. 그리고 이 이정표가 나타내는 길을 확장한 뮤지션이 다프트 펑크이고.


https://www.youtube.com/watch?v=x-G28iyPtz0

('고속도로'의 감정을 이야기한 22분의 롱트랙 Autobahn)


크라프트베르크가 나에게 준 영감은 너무 많아. 'Radioactivity', 'Autobahn' 등 명곡 하나하나에는 물론이고 그들의 음악 표현, 비디오 아트 등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요소마다 영감 알갱이들이 숨어있지. 하지만 이것들을 관통하는 건 바로 '실험 정신'이 아닐까? 모두가 서쪽으로 바라보며 걷고 있을 때 슬그머니 동쪽으로 뒤돌아본 호기심 그리고 과감하게 그쪽으로 걸어가는 용기가 크라프트베르크에 있지 않았나 싶어. 그들이 탄생한 1970년에는 더더욱 그랬을거야. 그땐 누구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되고 싶어했지. 그런데 그 길을 가지 않고 새로운 전자음악의 길을 개척한 이 실험 정신을 난 본받고 싶어.


최근 원년 멤버 플로리안 슈나이더(Florian Schneider)가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 이제 현 EDM 트렌드에서 많이 동떨어진 크라프트베르크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모했던 거로 기억해. 참 다행이야. 그가 만들어낸 음악을 좋아해주는 팬들이 한국에도 아직 많다는 게. 개인적으로 현 EDM 씬이 크라프트베르크의 업적을 많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음악적 요소를 해체하여 배치하고 조각조각 만들어가는 이런 시도들이 50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고. 크라프트베르크와 다프트 펑크를 오늘따라 유난히 듣고 싶네. 


파리는 지금 어때? 코로나 3차 락다운이 시작되었다 들었어. 

최근에 영감받는 것들을 나에게 알려줘.

2021.03.30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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