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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니정 Jun 29. 2021

자연의 소리를 담은 시계,
예거 르쿨트르 展

[#16 Seoul] Inspired By Jaeger Lecoultre

이번에 재미있게 다녀온 전시회를 하나 소개해볼까 해. 스위스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Jaeger Lecoultre) The Sound Maker' 전시회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려서 냉큼 다녀왔어. 나는 사실 시계를 자주 착용하지는 않지만 시계가 만들어지는 작업 과정에서만큼은 관심이 많았어. 작디작은 톱니바퀴들이 동전만한 크기에 옹기종기 모여 돌아가는 구조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정밀기술은 어디까지인지가 가늠이 안 갈 정도야. 그것도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던 19세기 초부터 말이지.

예거 르쿨트르라는 브랜드에 설명하려면 참 입이 아플 거야. 1833년에 스위스 발레드 주(Vallée de Joux)에서 창립되어 200년이 다 되어가는 역사를 자랑해. 예거 르쿨트르는 모든 작업을 인하우스로 처리하는 것으로 유명해. 디자인, 무브먼트 설계, 가죽 가공 등 시계 제작에 필요한 중요 작업들을 모두 회사 내에서 해결하지. 이밖에도 예거 르쿨트르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전시회로 나타낸다면 빌딩 한 채를 통째로 빌려야 할 거야.



하지만 다행히 이 전시는 'The Sound Maker'라는 이름을 가졌듯이 예거 르쿨트르의 와치메이킹 중 '소리'에 초점을 뒀어. 19세기 포켓 워치부터 지금의 손목시계까지 미닛 리피터(Minute Repeater)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브랜드 히스토리에 맞춰 전시되어있어. 미닛 리피터는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시간을 나타내 주는 장치로 현재 시각에 따라 종을 울려줘. 총 3가지 종류로 종이 울리는데 3시 50분이라면 첫 번째 종(1시간)이 3번, 두 번째 종(15분)이 3번, 세 번째 종(1분)이 5번이 울려서 시간을 나타내 주는 거야. 이런 미닛 리피터는 19세기 포켓 워치에 설계되었었는데 옛 귀족들의 부의 척도였다고 해. 얼마나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주는지로.


감명 깊게 본 전시물이 있었는데 스위스의 예술가 지문(Zimoun)의 전시물 '호수의 소리'야. 지문은 예거 르쿨트르가 위치한 스위스 발레드 주에서 머무르면서 이 작품을 생각했다고 해.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금속 디스크 몇 백개가 바닥에 부딪히며 돌아가는데 이 전체적인 모습과 소리를 들어보면 호수의 잔잔한 물결과 비슷해. 여기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 어떻게 보면 자연의 반복적인 흐름은 시간을 아는 데 사용되었고 그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시계가 만들어진 것일 텐데 그렇다면 당연히 시계에는 자연의 소리가 담겨야 하지 않을까? 하고 느껴졌어.


https://www.youtube.com/watch?v=aCoSNSbkybg&feature=youtu.be


시계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초소형 기술의 집합체라고 해. 크기는 점점 작아지는데 성능은 점점 좋아져야 하는데 장인정신도 굉장히 중요하지. 그래서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하이엔드 시계 전시회나 매장은 그들만의 기술력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려는 콘셉트가 강했었어. 그런데 이 예거 르쿨트르 전시회는 좀 달랐던 것 같아. 오히려 자신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면서 그 기원을 바탕으로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켜왔는지 보여주는 느낌이었어. 그 기원은 바로 '자연'이야.


시계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렵다는 전시회라는 평가를 봤어. 사실 맞는 얘기야. 무브먼트, 매뉴팩처, 미닛 리피터, 소네리 등 잘 모르는 용어들이 나오는 도슨트는 어리둥절하기도 해. 전시회는 독창적인 동시에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에는 부합하지는 않지. 하지만 나는 이 전시회가 너무 맘에 들었어. 하나씩 단어를 알아가면서 시계라는 물건이 얼마나 대단한 문명의 발명품인지 몸소 느껴지는 경험이었지. 무한히 쪼깨지며 오차 0에 가까워지려는 욕심, 자동화되어가는 사회에 사람의 손맛을 짙게 묻히려는 장인정신이 참 멋지게 느껴지더라고. 러프하게 삶을 바라봤던 내가 다시 디테일을 챙기게 된 계기이면서 다음날에 내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일해야 할지 뭔가 다른 면으로도 동기부여를 받은 것 같았어.


시계도 결국에는 자연의 일부이다. 

전시회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럴까? 365일, 24시간이라는 우리의 시간은 자연의 모습에서 만들어졌다고 봐. 사계절이 지나고, 해가 떴다 지면서 변화하는 자연을 보고 우리의 조상들은 시간의 흐름을 느꼈을 거야. 특히 자연의 여러 반복적인 소리들을 들으며 시간을 촘촘하게 나누고 정의했을지도 모르지. 이런 시각으로 보면 시계의 소리는 당연히 자연의 소리가 반영되어야 하는 게 맞을 거야. 마치 자연의 흐름을 0의 오차로 쫓아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심이 반영된 물건이 시계가 아닐까 싶어.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

2021.06.22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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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YI9Q0bdx1GM&t=40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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