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정심을 자주 잃을 때
혼자 있을 때는 가능할 것도 같았다. ‘즐거움과 고통 사이의 줄 위를 걸으면서 중심을 지키는 것’이. 잠에서 막 깬 아이가 엄마를 즉각 소환하기 위해 징징대기 전까지는. 그 소리가 나의 ‘균형 잡기’를 방해한다. 침대로 가보니 아이는 사정없이 자신의 얼굴과 팔, 다리(정확히 말하면 손이 닫는 거의 모든 곳)를 긁고 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작은 두 손을 잡고 아이 얼굴을 본 순간. 새벽부터 쌓으려 노력한 평온, 평정, 마음의 균형 따위는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눈가가 분홍색을 넘어 빨갛다. 입 주변도 각질이 인 수준을 넘어, 살이 패일 정도로 긁어 상처가 생겼다. 아이는 왜 자기가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옆에 없느냐고 짜증을 내며, 벅벅 긁는다. 나는 못 긁도록 손을 잡아 챈다. 그러면 아이는 더 크게 짜증을 내다가 눈물을 흘려 눈가를 자극시키고, 그러면 한층 더 거칠게 긁고 만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의 엄마는 더더욱 평정심이 필요하다. 아이의 벌겋게 부푼 눈가를 바라볼 때 걱정되고 안타까운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면. 심지어 미소를 띨 수 있으려면. 아이가 긁을 때마다 잔소리하지 않으려면. 다른 일 재쳐두고 늘 아이 곁에 머물며 아이의 손톱으로 인해 피부에 2차 손상이 가지 않게 관리해 주려면. 바쁜 아침시간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네 마네, 자운고를 바르네 마네 지난한 협상에 시간을 뺏기지 않으려면. 아이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재빠르게 로션을 발라 보습해주고, 연고를 필요한 곳에 적절 양을 도포하려면. 난 이런 능숙한 엄마의 역할엔 언제나 턱없이 부족하다. 자고 일어난 아이는 세수는커녕, 로션이나 연고를 바르려 기습하는 내 손길을 더 날쌔게 피한다. 출근 시간은 다가오는데 밥도 먹지 않고, 옷도 입지 않고 놀고 싶은 자기 마음대로 내가 따르지 않는다고 짜증을 낸다.
금요일 아침이었다. 일주일 내내 아침마다 아이 요구를 들어주느라 나름대로 노력했던 나를 떠올리다가 이건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딸아이 앞에서 터지고 말았다. 쏟아 내는 그 순간에는 후련함이 있었겠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불편함이 남는다. 너무나 뻔한 것인데, 아직 덜 강해진 나는 힘이 센 감정에 꼼짝없이 덜미를 잡혀 후회할 행동을 반복하고 만다. 작년엔 ‘벚꽃 복지’라 표현했던 그 길을 답답한 마음으로 내달리며, 마음이 몹시 아렸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시작된 부정적 감정의 대상이 나란 인간 자체로 옮겨 붙었다. 너무 한심하고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미워졌다. 아이 앞에서 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참지 못하고 불편한 감정을 다 드러내고 표현하는 미성숙된 존재인 내가.
큰 문제는, 나는 나아진 점이 별로 없는데 나름대로 수련을 한답시고 내가 꿈꾸는 수행자의 ‘그러해야 한다’는 이상은 계속 높아만 간다는 거다. 그 사이에서의 보이지 않을 만큼 아득한 간격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현실의 형편없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바닥을 친다. 어느새 내가 형편없는 어른, 혹은 꼰대가 되어버린 것만 같아 한동안 끝도 없이 괴로웠다.
내가 나를 이렇게 계속 못마땅해하고 있어도 될까. 평생 동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는 걸까. 죽기 전까지 새로운 면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까. 혼자만의 고민으로 어지럽던 차에 내가 자주 가는 서점 ‘마리서사’에 들렀다. 그곳을 운영 중인 정지혜 대표의 출간된 지 며칠 안된 새 책을 그의 서점에서 보게 되었다. 평소 추천해주시는 책들이 나랑도 잘 맞아, 반가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라는 책은 본인이 번 아웃되어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생경한 우울에 빠져있던 시기, 우연히 빠진 BTS덕질로 삶에 활기를 찾게 된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인상적인 부분이 삶의 모순을 말한 부분이었다. 행복은 고통과 함께하며, 괴로움, 권태, 의심 또한 일을 구성하는 일부라는 거다. 지금의 괴로운 나의 감정도 거부하지 말고 견뎌보고, 통과해 볼 힘을 주었다. 또 작가가 명랑하게 권하는 행복해지는 법은 다음과 같다. “좋아하는 것을 더 자주 하고 싫어하는 것을 덜 하면 됩니다.”
다음은 내가 떠올려 본 내가 좋아하는 것들. 책 읽기, 내 글쓰기, 요가 수련, 차 마시는 시간. 꽤 명확하다. 좋아하는 걸 바로 떠올릴 수 있다는 데 나를 위안해본다. 최근 꽂힌 평정심에 대한 책의 내용 중에서 ‘개인의 선호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행동을 선택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것은 지금 내겐 너무나 어려운 경지로 보인다. 평정심은 하루아침에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일단 그저 위에서 나열한 좋아하는 것들을 해야 하는 일과 함께 돌려가며 하면 그럭저럭 일상의 균형이 잡히리라. 일과 역할 때문에 인해 화가 쌓이고 머리가 탁해지면, 뜨거운 보이차를 몸에 부어 마신다. 몸이 덥혀지면 ‘찐’하게 요가 수련을 한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면 책을 찾아 읽고,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내 글로 정리해보는 거다.
오늘은 그중 ‘내 글쓰기’가 당첨되었다. 이렇게 글로써, 가라앉고 축축한 마음을 햇볕 아래 내 걸어 탁탁 털어 말려내고 있다. 사실 이번 글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부터 무너지지 않고 버티기 위해 쓴, 다시 말해, 실용적인 목적이 다분한 글이다. 그랬던 터라 글을 쓰며 잘 풀리지 않은 건 차치하고, 이것이 남과 나눌 만한 글이 될 수 있을까, 완성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다. 워낙 내 상태가 녹록지 못하고, 퍽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툰 글 한 편을 어찌어찌 완성해 내려 안간힘을 다해보는 건, 글을 쓰는 동안 이제 나를 미워하는 건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