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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Aug 10. 2020

의욕이 젖어버렸다

이사 와서 새로 시작하게 된 배드민턴

톡ㅡ 토–옥. 투–욱. 픽. 아ㅡ씨.
내 발 앞에 떨어진 콕을 주우며, 왜 안되는 걸까, 나는 생각한다. 아니 원망한다. 무엇을? 나의 노력을? 운동신경을? 내 작은 체구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본다. 팔을 덜 펴서 그런가. 몸의 회전이 덜 되어서 그런가. 아직 팔에 근육이 부족해서? 과연 연습한다고 더 잘되긴 하는 걸까. 결국 이르는 생각은 ‘이렇게 스트레스받아가면서 까지 이걸 해야 하는 걸까? 나한테 구기종목이 맞지 않아. 경쟁하는 운동은 싫다고.’ 요즘 배드민턴장에서 무수히 도돌이표를 그리며 하는 생각이다.

뭐든 잘해야 재미가 나는 법. 오기로 콕을 노려보며 쫓아다니지만 도통 잘 안된다. 보던 남편이 안타까웠는지 핸드폰으로 내 자세를 찍어준다. 하이클리어의 바른 자세는 오른팔을 귀로 붙이면서 팔을 완전히 펴야 하는데 핸드폰 영상 속 내 팔은 새우등처럼 굽혀진 채로 힘만 잔뜩 들여 콕을 힘겹게 받아내고 있었다. 참 두 눈뜨고 보기 안쓰러운 광경이었다. 엉망인 자세를 보는 것 자체가 괴롭다. 이후로도 의욕은 계속 꺾여만 간다. 옆의 코트에 팡ㅡ 팡ㅡ. 소리 내며 코트 끝에서 끝으로 콕을 클리어 시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와는 다른 종의 인간을 보듯 보게 된다. 심지어 함께 시작한 남편도 기본적으로 코트 끝에서 끝으로 보낼 수 있다. 같이 치다 보면 남편은 내 콕을 받기 위해 점점 코트 앞으로 진출하고 나는 남편의 콕을 받아내기 위해 (굴욕적으로) 점점 후퇴한다. 내가 아무리 멀리 보낸다고 보내도 태생적으로 그들(남성)과 비교도 안 될 거란 생각에 힘이 쭉 빠진다. 이건 내게 시작부터 불리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면단위 시골로 이사와, 3월부터 동네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하여 온 가족이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며 레슨을 받고 있다. 위 글은 4월 중순에 썼던 글의 일부다. 시작할 땐 뭔들, 누구든 그러하듯 새로 산 600그램의 핑크색이 배색된 산뜻한 느낌의 라켓을 꽤나 의욕적으로 휘둘러 댔다. 여분의 시간이 나면 유튜브를 통해 기본 동작인 하이클리어를 연구하며 반복해서 따라 했다. 그래서, 지금은 하이클리어를 잘하게 되었냐고? 흠,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 여전히 팔을 펴지 못하고 스냅도 못쓰는 채로 5월이 되었다. 강사 선생님께서 힘이 없어서 콕이 멀리 안 나가는 건 분명 아니라고 했다. 열심히 한다고 되긴 되는 건지, 태생적으로 구기종목에 소질이 없는 운동신경과 작은 체구 때문이 아닌 건지. 종이장처럼 얄팍한 실력에 비해 회의감과 의구심만 비대해져 갔다. 그나마 있었던 나의 열정은 알고 봤더니 하이클리어의 벽을 넘어서기에도 턱없이 가볍고 무른 것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의욕의 자리에 열패감과 하기 싫은 마음과 핑계만이 점점 자라나고 있었다.

반면 남편은 꾸준히 실력이 향상하는 듯싶더니, 5월이 되고부터 동호회 회원들의 경기에 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상기된 얼굴로 집에 들어와서는 오늘 처음으로 이겼다며 애써 내 앞에서 표정관리를 하더니, 씻고 다시 집을 나선다. 어디 가냐고 물으니 게임한 사람들끼리 ‘동동치킨(동네 유일한 술집이자 사장님이 동호회 회원이다)’에서 술 한잔 하기로 했단다. 그래, 그렇게만 한다면 재미있겠네. 좋겠다. 슬리퍼 끌고 나가 술 마실 동네 친구도 생기고, 배드민턴 실력도 늘고. 좋은 시간 혼자 보내니 좋니. 내 마음은 이리, 삐딱해져만 간다.

5월의 레슨이 두 번 남짓 남았을 때, 그때도 나는 하이클리어에 대해 레슨을 받고 있었다(반면 남편은 좌로 우로 스매시 때리고 난리도 아니다). 그날따라 강사 선생님은 시종일관 일관성 있는 내 자세가 안타까우셨는지, 유독 처음 하이클리어를 알려주실 때 하시던 말씀을 반복하셨다. “콕을 칠 때 내 위치 기준으로 11시에서 12시 방향에 있다고 생각하고 팔을 오른쪽 귀 옆으로 붙여 몸과 팔을 쫙 펴서 내가 칠 수 있는 한 가장 높은 위치에서 정확히 라켓의 중앙에 놓아야 해요. 콕이 맞기 직전에 라켓을 머리 뒤로 가볍게 재꼈다가 펴서 순간적인 스냅을 만들어야 해요. 그렇게 정확하게만 치면 힘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초등학생이라도 코트 끝에서 끝으로 보낼 수 있어요.” 지치는 마음이 들었지만 코치님의 말씀을 염두해서 친다고 쳐도 여전히 잘 맞지 않았다. 그 순간, 사그라질 대로 사그라진 내 의욕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네네. 3월부터 익히 많이 들었던 내용이네요, 죄송하지만 내 몸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여전히 제 오른팔님이 펴질 생각을 하지 않거든요. 과연 정확하게 치는 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할 수 있는 건가요? 모든 초등학생이 그렇게 칠순 없잫아요? 운동신경이 뛰어나거나, 체격 조건이 좋거나. 저는 키도 작고 팔도 짧고, 그래서 구심력도 크지 않다고요. 깡다구, 포기하지 않는 근성만 믿었는데, 계속 이렇게 늘지는 않고 홀로 허공을 젓고 있으려니, 생각보다 빨리 저도 지치네요. 퇴근하고 거의 매일 강당에서 배드민턴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이렇게 계속 한숨만 나서야. 집에서 책 보고 누워서 쉬는 게 훨씬 행복할 것 같아요. 견디면 되긴 되는 걸까요? 6개월을 버텼는데 여전히 하이클리어가 안되면 어쩌죠, 무엇보다도 일단은 그때까지 이런 의욕 부진, 열등감, 자괴감의 시간을 보내기가 싫네요. 일단 해보라고요? 아니요, 솔직히 하기가 싫어졌어요. 남편이랑 딸이랑 운동 같이 하며 좋은 시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운동도 안 되는 것, 같고, 괴로운 시간이 되어버렸어요. 그만 할게요. 여자 회원들이 오래 못한다고 했죠. 저는 끈기 있게 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하기 싫은 마음이 그만 이겨버렸네요. 언젠가 지금의 마음을 뛰어넘을 자극이나 의욕이 생긴다면, 다시 할게요. 부디 그런 마음이 피어올랐으면 좋겠고요.' 그날 이런 생각이 들자, 레슨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에 가버렸다. 남편과 딸을 두고 걸어서 집으로 씩씩대며 돌아가버렸다.


성질을 부려봐도 당연히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남편은 여전히 열심히고, 학교 강당에 레슨을 받고 게임을 하고 가끔 ‘동동치킨’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 딸아이도 남편을 곧잘 따라다니며, 그곳에서 언니 오빠들과 놀며, 맛있는 것도 얻어먹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듯하다. 엄마는 왜 배드민턴 안 하냐고 자기는 오늘 배드민턴 라켓으로 아빠가 쳐주는 셔틀콕을 4번이나 연속으로 네트를 넘겼다고, 엄마보다 잘한다고 자랑한다. 남편도 안타까워했다. 원래 여성회원들은 6개월 정도는 해야 경기를 하곤 한단다. 꾹 참고 6개월만 채워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만하라고. 그러면서 하이클리어가 안 되는 여성을 위한 맞춤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고 내 꺼진 의욕에 토치를 들이밀며 불씨를 붙이지 못해 안달이다. 하지만 내 의욕의 장작은 이미 푹 젖어버린 후다. 언제 다시 타기 좋은 상태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4월 중순, 군산시 배드민턴 전용구장에서 본 배드민턴 여성 군상에 위안과 동시에 자극을 얻었고 글을 쓰며 스스로 다독이기도 했었다. 여성 배드민턴 동호회원으로서 끈기와 노력으로 코트에서 남편과 짝이 되어 혼성복식경기로 반짝여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마음은 욕심이었던 걸로. 그렇게 안타깝게 3개월이 채 되지 않는 반려 운동 도전기는 휴식기에 들고 말았다. 나도 마음이 마냥 편하진 않다. 신중하게 시작하고 시작하면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그러지 못하고 포기해 버린 현재 상황이 한심하고, 영 개운치 않다. 그러나 당장은 비스듬히 눞듯 앉아서 책을 읽고 빈둥거리는 저녁시간이 좋기도 하다. 원래 난 꾸준히 요가를 했던 사람이니 시내까지 이동시간이 다소 걸려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요가원에 다시 나가볼까. 그래도 가까운 곳에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점이 많은 배드민턴을 포기하기엔 아까운 마음도 있다. 당분간은 푹 젖은 의욕이 바짝 마를 때까지, 그래서 다시 불이 붙을 때까지 내 마음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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