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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janjan Jan 07. 2021

07. 시트콤 과몰입은 즐거워

잔잔의 일곱 번째 단어 : 시트콤


<모던패밀리> 시즌11


1월 1일 자정이 지나도록 작년에서 넘어온 미뤄둔 일을 처리하다가, 2시가 넘어 시작한 2021년만의 첫 일과는 바로 넷플릭스에 새로 업데이트 된 <모던패밀리>시즌 11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2일이 채 지나지 않아 열 여덟 개의 에피소드를 다 끝냈다. 십 년이 넘게 방영된 시트콤의 마지막 시즌이라니, 왠지 아까워서 하루에 두 편씩만 볼까 했지만 늘 그렇듯 이틀 만에 모조리 보고 말았다. 맨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다 함께 끌어 안는 모습에 나까지 코끝이 시큰했다. 사실 작년에 모든 시즌을 몰아 본 내가 눈물이 나던 게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긴 긴 시트콤의 마지막 시즌은 언제나 마음 찡하다.


제일 좋아하는 프렌즈 단체컷


아마도 2016년 후반 즈음, 넷플릭스가 한국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독을 시작했다. 미드 계의 바이블, 시트콤의 정석과 같은 <프렌즈>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까지 굳은 결심은 아니고, 이게 그렇게 유명하다니까 한 번 봐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지금과 달랐던 그 땐 10개의 시즌을 다 볼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그 때를 기점으로 나는 당장 플레이 할 20분짜리 시트콤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혼자 밥을 먹을 수 없는 유형의 인간이 되고 말았다. 나에게는 같이 밥 먹을 사람보다, 밥상 위의 고기 반찬보다 중요한 건 아이패드와 넷플릭스가 되었다. <프렌즈>를 시작으로 <브루클린 나인나인>,<원데이 앳 어 타임>,<굿플레이스>,<빅뱅이론>,<그레이스 앤 프랭키>,<모던패밀리> 등등 여러 재밌다는 시리즈들을 시간 날 때마다 몰아보며 시트콤 진심녀가 되어갔다. 재작년 여름에는 시즌 당 21개의 에피소드가 있는 <빅뱅이론> 전 시즌을 한 달이 가기 전 독파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하기도 했다. (눈 뜨자마자 잠들 때까지 <빅뱅이론>만 본 날도 있었다.) 나는 영화도 좋아하고 드라마도 좋아하고 유튜브 영상들, 책, 음악 등등 다양한 장르와 형태의 미디어 콘텐츠를 좋아하고 자주 찾아 접하는 사람이지만, 그 중에서도 시트콤이란 장르는 꼭 내 살에 맞닿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my love <브루클린99> 친구들


봤던 영화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읽었던 책도 다시 잘 읽지 않는다. 근데 시트콤은 봤던 시리즈를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가장 좋아하는 시트콤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전 시즌을 3번정도,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그 보다 더 반복해서 봤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여전히 같은 부분에서 웃음이 나고, 다 아는 내용이라 더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하나의 시리즈를 주구장창 돌려보다보면 가끔씩 그 인물들이 꼭 실존하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나 <프렌즈>나 <모던패밀리>같은 장편 시트콤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다른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시트콤 속 그 인물로 강력하게 기억하게 된다. 레이첼을 제외한 다른 프렌즈 등장 인물들을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주쳤을 때는 마치 뜬금없이 명동 한복판에서 중학교 시절 절친을 만난 기분이다. <스페이스포스>라는 짧은 시트콤에서 프렌즈 피비(리사 쿠드로)를 마주쳤을 때 무지 반가웠다구. 거기서는 프렌즈 피비같지가 않아서 왠지 서운했다. <스페이스포스> 속 조금 차가워진 피비를 보며 생각했다. '피비 철들었네...'


(왼) 프렌즈 4차원 히피 피비 & (오) 철 들어버린 스페이스포스 리사 쿠드로



과몰입 좀 해본 사람들은 알거다. 과몰입은 누군가와 같이할 수록 재밌다. 내 주변엔 내로라하는 미드 과몰입 인간들이 있기에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더더욱 실존 인물처럼 느껴진다. 건너 건너 아는 친구 이야기 하듯 대화에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마트에서 망고맛 요거트를 발견하고 "테리*가 좋아하는거다..."하면,  "Terry loves yogurt!"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테리 = 브루클린99의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 요거트를 좋아하며 자신을 삼인칭으로 부르는 말버릇이 있다.)


서로 겹치는 친구가 있으면 어색한 사이도 스르르 녹듯 시트콤이나 드라마 얘기를 하다보면 처음 만난 사람들하고도 빠르게 친해진다. 작년 유럽여행을 하던 중 런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캐나다에서 온  인디아라는 이름을 가진 한 언니와 어색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적이 있다. 잘 안 되는 영어로 스몰토크를 땀 살짝씩 흘려가며 이어나갔다. 어쩌다 넷플릭스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인디아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가 바로 <브루클린99>이라는 것! 어두컴컴한 게스트하우스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는 동시에 "나인 나인!!!"을 외쳤다. 그 때만 생각하면 웃기고 따뜻하고 아무튼 그렇다.


혼자 밥을 먹으며 스크린 너머로 그들의 시끄러운 하루 하루를 구경한다. 싸우고, 거짓말을 하고, 울고, 그 아무리 심각한 일들이 생기더라도 에피소드가 끝나기 전 요란하게 화해를 하고 다시 거실의 커다란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다시 행복해진다. 그 뻔한 공식에 마음 한 구석이 또똣하게 데워진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타임킬링라고 하겠지만, 나에게 시트콤 돌려보기는 일상 속에 자리잡은 소소하지만 큰 기쁨이고 재미이며 없어서는 안될 밥 친구이기도 하다. 후후. 내일 아침밥을 먹으면서 <모던 패밀리> 시즌 11을 또 다시 돌려 봐야지.


아 시트콤 과몰입은 즐 거 워



by.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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