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의 열 번째 단어: 질투
이번 주 글감은 질투로 정했다. ‘질투? 쓸 얘기 많을 것 같은데?’ 근데 업로드 일이 코앞에 다가온 오늘까지도 첫 문장을 쓰지 못했다. 무언가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것을 면면히 바라보아야 하는데, 내게 질투는 부끄러운 것 혹은 남에게 들키면 안 되는 발칙한 생각이어서 감추기 급급했다. 오늘 이 시간을 빌어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어딘가에 꽁꽁 감쳐 두었던 이 감정을 잘게 쪼개 보려 한다.
질투의 어원은 다음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경쟁과 질투의 신의 이름은 Zelos이다. 그리고 여기서 jealous (질투)와 zeal(열정)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탄생했다고 한다. 두 단어의 모양새와 발음은 참 비슷했는데 한 번도 연관 지어 생각해보지 못했다. 무언가를 질투할 때는 열정(zeal)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흠.. 열정? 질투는 내 원동력? 그래 뭐, 누군가는 ‘질투는 좋다 ‘고, 그것을 원동력 삼아 더 나은 자신이 되어보라고 이야기 하지만 내겐 썩 좋은 자극은 아니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을 만들어 주는 건 맞는 듯하다. 그래도 내겐 여전히 질투는 그저 미운 감정이다. 막연하게 부러움을 느끼는, 그런 조그맣고 귀여운 종류의 마음이 아니다. 질투는 나를 짜증 나거나 대책 없이 무언가를 미워하거나 우울하게끔 만들었다. 나는 어떻게 하다 이 감정을 뾰족하고 모나게 담금질했나.
질투는 영어로 Jealousy다. 그리고 Jealous는 아래와 같은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1. (형용사) 질투하는 2. (형용사) 시기[시샘]하는 (=envious) 3. (형용사) (자기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경계하는] 애써 지워낸 내 안의 질투를 표현하기엔 의미가 퍽 와닿지 않았다. 그러다 보통 ‘시기 질투한다’고 흔히 묶어 쓰는 말이 다른 의미로 나눠져 있는 걸 보았다. 덩어리처럼 엉겨있던 의미를 살살 풀어 역으로 다시 우리말로 가져와 봤다.
먼저 질투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 또 그것이 고양된 격렬한 증오나 적의(敵意)를 뜻한다. 시기란 남이 잘되는 것을 샘 하여 미워함을 뜻한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인 샘의 뜻도 찾아보았다. 샘은 남의 처지나 물건을 탐내거나, 자기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나 적수를 미워함. 또는 그런 마음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미움’이나 ‘증오‘같은 부정적 의미를 담을 수도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질투와 시기는 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부러움에서 시작되어 간혹 격양된 감정으로 증폭되는 ‘질투’와 흔히 말해 내가 갖지 못한 것이 남에게 있을 때 배가 아프다는 말로 표현되는 감정인 ‘시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질투와 시기를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언제나처럼 과거의 천재가 오늘날 내가 가진 궁금증을 친절히 풀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질투란 이웃이 지닌 것을 자기가 소유하지 못한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고 시기란 자기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이웃이 가진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다.
질투의 초점은 나에게, 시기의 초점은 타인에게 있다. 시기는 뾰족하다. 날이 선 마음이 이리저리 삐져나간다는 생각을 했다. 의도와 그게 아닌 것이 뒤엉켜 사정없이 삐져나가며, 나와 상대에게 가까워져 결국엔 모두를 찌를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찔린 상처엔 적나라한 구멍이 나버리지 않았나. 구멍 사이에 바람이 휘휘 스미던 지나간 계절 사이의 시기심을 떠올려 본다.
홀로 내린 결론은 열정 빠진 미적지근한, 때로는 차가운 질투심이 시기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질투를 극도로 회피하는 이유. 이제껏 나는 질투를 시기와 헷갈려서 그랬던 건 아닐까. 줄곧 시기하고 있던 건 아닌가. 내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남이 가져서 슬펐다. ‘나도 갖고 싶어 ‘까지 마음이 잘 뻗어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굳어 온기를 잃었나 보다. 잘못된 모양으로 어떤 감정을 길러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이 형편없어서 외면하고 감춰왔다. 미움과 시기에도 온기를 담을 수 있는 요령이 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이 선 신경이 뭉툭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쉽게 열정을 잃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뾰족한 면면을 보이지 말자고. 그런 생각을 한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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