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의 열다섯 번째 단어 : 선물
좋은 선물이란 뭘까?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물건을 찾는 일이란 이 넓고 복잡한 세상에서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좋다'는 것은 각자 다른 주관적인 개념이지만,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좋은 선물'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기준이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생각해보자면 우선, 받는 사람이 선호해야 하고, 어느 정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하며, 상호 간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가격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선호란 너무나 다양하고, 세상엔 온갖 물건이 과잉 생산되고 있기에 매우 기본적인 이 네 가지 기준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좋은 선물'을 주기 위해 드 넓은 인터넷 세계를 끝도 없이 유랑하거나. 이미 낡고 지쳐버려 현금이나 상품권과 같은 조금 편안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번 경험이 쌓이면 조금 적응이 되긴 해도 선물을 준비하기 앞서 항상 많은 고민이 생겼고, 어쩌면 더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좋은 선물. 이에 대해 고민해보다가 몇 해 전 내 생일날이 떠올랐다. 잠시 스쳐 지나가듯 알게 된, 서로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뜬금없이 생일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이른 아침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보내온 선물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놀랄 정도로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준 선물은 분홍색 하드커버를 가진 작은 다이어리였는데, 그 위에는 카카오프렌즈의 베이비 어피치가 앙증맞게도 잔뜩 그려져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분홍색 물건이라고는 노트북을 살 때 같이 딸려온 공짜 마우스뿐이고, 베이비 어피치는 내가 매일 들고 다니기엔 너무도 깜찍한 친구였다. 게다가 나는 11월 초부터 완벽한 내년 다이어리를 찾아 무얼 살지 결정해두는 (다이어리에게만큼은) 철저하고 까다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이 귀여운 다이어리는 아마도 '실패'에 가까운 선물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위의 네 가지 기준을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 귀여운 선물은 '좋은 선물'이 아닌 걸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선물을 확인하고 웃음이 터진 이유는 예상치 못한 한도 초과의 귀여움 때문도 있었지만,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 선물을 준비했는지,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사소한 취향이 곧바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받는 일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일일수 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울진 몰라도 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을, 그 사람의 머릿속 회로에서 결론지어진 내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니까 말이다.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받는다면 선뜻 시도해보지 않을 일이다.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받고 기분이 이상하거나, 서운함이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그러면 나도 그 상대를 최선을 다해 해석한 선물로 복수(?)하면 그만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받게 된 그 날 나는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유치하고 뻔한 생각을 했다. 역시 선물은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상상하고 해석하는 그 과정이 전부일 것이라고. 결국 그 다이어리는 한 장도 채워지지 못하고 아직까지 책장 아래 칸에 잠들어 있지만, 나는 가끔씩 그 깜찍한 다이어리가 떠올라 피식 웃는다.
by.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