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 janjan Jul 27. 2021

20.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잔잔의 스무 번째 단어 : 빛

*잔잔은 두 친구가 운영하는 브런치입니다.

매주 하나의 단어를 정해 그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씁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윤슬사진. 베를린여행에서 직접 찍었다.



0


빛이라는 단어는 040이 골라주었다. 무슨 이야기를 쓰지, 한참을 고민했다.

빛.... 반짝반짝... 빛...


최근에 빚을 빛이라고 잘못 쓴 글을 봤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빛(빚)으로 고통받았다.' 뭐 이런 문장이었는데

점 하나의 오타로 아버지가 남긴 빛.. 이라니 뭔가 신화 같기도 하고 아니면 철학적인 느낌도 들었다.


... 아니 그래서 뭐 쓰지?

맞다 이 문단은 앞으로 엉망진창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이 나올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1


몇 년 전 빛이 물에 비쳐 반짝거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윤슬.

국어사전에 나온 정의는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 찰랑거리며 흘러가는 물 위에 빛이 튀기듯 반짝이는 모습. 그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들을 한참이고 바라보던 사람들이 많았기에 이 단어가 만들어진 거겠지. 시시각각 변하는 그 잘디 잘은 물결에도, 그 빛에도 이름이 있네. 윤슬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자리한 뒤로 괜스레 작은 개울을 건널 때도 그 빛을 슬쩍 보고는 혼자 윤. 슬. 하고 마음속으로 말해봤다. 뜻도 단어의 생김도, 발음도 단아하니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 잘은 빛에 붙은 이름은 누가 지어줬을고 하고 잠시 걸음을 멈춰보기도 했다.


그는 분명 이유 없는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거다.



2


좋아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시즌4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런 귀여운 대화로 시작한다.


그레이스는 조금 독특한 친구, 셰리와 해변가를 거닐며 금속탐지기로 잃어버린 그의 물건들을 찾고 있다.


셰리 : 이제 금색 젖꼭지 2개 찾으면 돼. 학사모에 달린 거시기 그거

그레이스 : 태슬?

셰리 :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그레이스, 세상 만물에 이름을 다 지어줬구나

그레이스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세상 만물에는 이름이 다 있어

셰리 : 진짜 웃긴다. 그래 그렇다 칠게. 웃긴다. 걸어 다니는 사전 같다니까


셰리는 그레이스의  말이 유머인 듯 생각하여 마구 웃는다. 나는 왜인지 이 대화가 너무 웃기고 마음에 들어

여러 번 다시 돌려보고는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그래그래 세상 만물엔 이름이 다 있어.

금색 젖꼭지 같은 거시기 그거에도,

0.1초마다 바뀌는 저 변덕스러운 작은 물결과 빛에도 예쁜 이름이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니 세상이 조금 더 귀여워 보인다. 이름 모를 땅 꽃에도, 언덕에도,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에도 세상 만물엔 이름이 있다고~~~



3


빛과 빚에서 윤슬로 윤슬에서 금색 젖꼭지로 그리고 이름까지.. 중구난방의 오늘의 기록.


끝.


*원래 이렇게 안 끝나요...



by.DD





작가의 이전글 20. 흑과 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