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 vol.4 : 눈물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어도 자꾸만 삐져나오는 눈물 때문에 곤란하신가요?
이젠 걱정 마세요. 1초 만에 눈물을 집어넣는 방법 알려드립니다.
효과 만점! 안 따라 하면 손해!
1. 눈물 신호를 캐치한다.
2. 숨을 '습' 참는다.
3. 눈밑 살을 잡아당긴다.
4. 눈물이 쏙! 수납 끝!
요령을 갖기 전까지는 저도 콧방울이 터질 때까지 힘을 주어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만 했습니다. 그치만 눈물을 수납하는 방법을 익힌 후엔 아무 때나 울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물론 눈물을 평생 모아 둘 수만은 없습니다. 수시로 저장고를 열어 비워두어야 해요. 그렇게 신생아처럼 우는 시간을 가끔 갖고 다시 아주 바삭한 눈물샘으로 되돌려 놓기를 반복합니다. 필요할 때만 울어야 하는 어른으로 자란 것이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우는 모습을 쉬이 보이지 않으면 남들이 멋지고 쿨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적으며 언제부터 아무 때나 울지 않게 되었는가 생각해보았어요. 제게는 눈물에 관한 몇 개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중 하나를 이야기해드릴게요.
저는 초등학생 시절 몇 차례의 방학을 영어마을에서 지냈습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그때 영어를 더 잘했던 것 같기도 해요. 영어마을은 귀엽고 작은 집들이 있고 외국인 선생님과 외국에서 온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이제 막 두 자릿수의 나이가 된 아이들은 해맑아서 금방 친해졌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나 집 나온 지 사흘이 지나면 공중전화부스의 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보고 싶대요. 저도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그치만 내가 졸라서 왔는데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으면 나는 자존심이 상하고 엄마는 다신 영어마을에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영어마을에 있는 동안 절대 울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유시간, 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삐약!”
작은 아이들은 정말 삐약거리며 울어요.
사건은 방에서 커다란 벌레가 나오며 시작되었습니다. 도대체 다리가 몇 개 인지도 모르겠는 벌레는 아주 빠른 속도로 납작하게 지나다녔습니다. 지금의 저보다 영어도 당당하게 하고 벌레도 잘잡던 저는 슬리퍼로 벌레를 때려잡았습니다. 일순간 조용해진 복도에서 한 아이가 아주 나지막이 말을 꺼냈습니다.
“집에… 가고… 싶어…”
뒤이어 다른 아이도, 그 옆에 아이도, 뒤에 아이도 돌림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물론 며칠간 울음을 참은 지라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어요. 벌레도 멋지게 잡고, 울음도 잘만 참다가 그만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졌습니다. 딱! 한 방울이 조용히 뺨을 타고 내리자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습니다.
“멋지다… 멋지게 운다…”
멋지게 우는 건 뭘까요? 인터넷 소설에서나 나오던 한 방울짜리 눈물이 아이들의 니즈에 맞아떨어졌던 걸까요? 이 사건 이후로 저는 멋지게 울지 못할 바엔 울음을 잘 참는 사람으로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젠 울음을 참는 요령을 글로 쓰기까지 하네요.
어릴 때보다 울 일은 더 없는데 울음을 참아야 하는 날은 많아졌어요. 목구멍으로 스쿼트를 하듯이 힘을 줘봐도, 콧구멍을 최대한 빠르게 벌렁거려도 속수무책이셨죠? 현대인의 안면근육은 생각보다 약하니까요. 눈물이 처치곤란인 날은 저장해두세요. 펀하고 쿨한 어른인 척하다가 어느 하루를 정하고 모두 내보내세요. 그러면 다시 바삭바삭해진 눈가를 가지고 험난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아직 눈물을 저장하는 방법을 모르는 여러분께 이 글을 바칩니다.
by. 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