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감탄과 흥미
‘뻥!’
술자리에서 숟가락으로 맥주병을 시원하게 따는 사람들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라이터, 가위 심지어 병뚜껑으로 따기도 한다.
아직 이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맥주를 시킬 때마다 손이 빨개질 때까지 도전한다. 병따개가 없을 때 유용한 방법들이라 배우고 싶은 것도 있지만, 묘한 쾌감과 재미를 선사하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술자리에서 유용성보다 재미가 우선시되는 경우는 소주를 딸 때도 수두룩하다. 소주 뚜껑을 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화려하게 팔을 휘저으며 뚜껑을 따는 쇼맨십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주 뚜껑을 따는 것뿐만 아니라 따기 전의 의식도 다양하다. 저마다의 노하우로 병 안에 회오리를 만들기도 하고, 팔꿈치로 병 아래를 탁탁 치기도 한다. 예전에는 침전물을 섞이게 하기 위해 흔들었다는 말이 있지만 요즘은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재미를 위한 행동들이다.
술자리에서는 이렇게 많은 구경거리가 생겨난다. 이 행위들은 술자리의 필수 요소가 아니지만 더 풍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왜 오늘은 안 쳐?”
나는 소주병을 따기 전에 손바닥으로 병 아래를 두 번 치는 습관이 있다. 한 번은 병이 미끄러워 바로 뚜껑을 땄더니 친구가 오늘은 왜 안 치냐며 물어온 적이 있다. 대단히 섭섭하진 않았겠지만 평소 하던 행동을 안 했다고 의아해했다.
나에게는 가벼운 행동이었는데, 누군가 반복적으로 봤을 때는 기억에 남을 행동이었다. 봤을 때 큰 감흥이 없더라도 안 하면 아쉬운 기분. 술자리에서는 이런 소소한 재주들을 가진 친구들이 많다.
맥주를 흔들어 화려하게 폭탄주를 만드는 친구, 손바닥으로 볼에서 입까지 소주잔을 돌려 마시는 친구, 소주 뚜껑에 구멍을 뚫는 친구까지. 어쩔 땐 단순 재미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 술장인의 기술로 보일 때도 있다.
꼭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행동들. 하지만 찰나의 감탄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행동들. 무색으로 시작해 무취로 끝날 수도 있는 술자리들도 있었지만, 나날이 다채로워지는 행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술자리를 채웠다.
차를 타고 여행을 갈 때 화장실도 안 급하고 배가 고프지 않다고 휴게소를 안 들른다면 허전한 느낌이 든다. 축구선수가 역전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안 하면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휴게소를 가는 건 여행의 필수 코스가 아니고, 골 세레머니를 안 한다고 경고를 받지도 않는다. 다만 하지 않으면 아쉬운 행동들이다.
요새는 다양한 휴게소 맛집 리스트가 나오고, 축구선수들은 경기마다 개성 있는 세레머니를 보여준다. 이 둘은 여행과 축구 경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슬프거나 안 좋은 상황이라면 골 세레머니를 자제하고, 맘 편히 맛집을 갈 수 없듯 술자리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따라 화려하게 술병을 따지 않을 수도, 평범하게 소맥을 탈 수도 있다.
다만 특정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만의 행위들로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영화의 카메오처럼 잠깐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끈다.
“굳이 그렇게 따야 돼?”
“재밌잖아.”
없어도 그만이지만 있으면 재밋거리가 하나라도 더 생기는 순간. 다음엔 또 누가 어떤 특이한 방법으로 병뚜껑을 딸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