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있는 술자리를 바라며
오랜만의 단체 모임에서 친한 친구들만 쏙 빠진 상황, 불편한 직장 상사와의 저녁 식사, 어색한 친척들과의 명절 술자리. 아무리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해도 도저히 술맛이 날 수 없는 자리들이다.
어떻게든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타개해보려 노력해 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원해서 간 자리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원치 않는 술자리를 가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술기운이 올라오면 어지간히 기분이 좋아질 법도 한데 그러기도 쉽지 않다. 억지로 건배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힘들어서 조용히 혼자 마시기도 하고, 아예 안 마시려고도 해보지만 괜한 이목만 끄는 일이라 참고 만다. 젓가락질과 건배만 의무적으로 할 뿐이다.
그래도 그 기회로 친해질 여지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다가도, 친해질 거였으면 진작 친해졌을 거란 생각에 다시 마음을 접는다. 아예 처음 보는 사람들이면 알아갈 여지라도 있지만, 지내온 세월 동안 서로 맞지 않다라는 걸 암묵적으로 인지한 사이일 테니.
남은 힘을 좋아하는 술자리에서 쓰기로 하고 잠시 힘을 빼놓은 채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반면 편한 동네 친구, 마음이 잘 통하는 동료, 오랜만에 봐도 어제 본 것 같은 동창들을 만나면 어딜 가든 술맛이 돈다. 심지어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아무 술집에 들어가서 닭똥집을 시켜도 몇 시간이나 쉴 새 없이 떠들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가고 싶던 맛집에서 함께 술을 곁들이는 것이다. 서로의 취향도 잘 알기에 한잔하자며 약속이 잡히면, 평소에 저장해놨던 맛집 리스트를 톡방에 풀어놓는다. 만약 그 맛집에 갔는데 웨이팅이 심하거나 휴무여도 상관없다.
정말 원한다면 웨이팅도 해줄 친구들이고, 그게 아니라면 근처 유사 맛집을 가도 원조 맛집만큼이나 맛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오더라도 잠깐 당황할지언정 좌절하지 않는다.
누가 나에게 불편한 사람과 비싼 음식을 먹을 건지, 편한 사람과 아무 안주나 먹을 건지 물어본다면 무조건 후자를 고를 것이다. 비싸고 좋은 음식에 혹 할 수도 있지만 분위기가 신경 쓰여 제대로 맛을 음미하지 못하느니, 맘 편하게 쫄깃한 꼼장어 한 입에 시원한 어묵탕을 떠먹는 게 낫다.
나는 무의미하게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건 꼭 실질적으로 얻을 것이 있어야만 술자리에 간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생존을 위해 음식을 씹어 넘기고, 술을 용액 넘기듯이 마시기 싫다는 것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작은 감정이라도 진심으로 나누거나 어떤 분위기라도 느껴야 진정한 술자리라 생각한다. 나에게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랑 마시냐가 중요한 이유다. 그저 영혼 있는 술자리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