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은 담백했고, 깊었고, 시원했다.
몇 년 전, 친구의 지인들과 함께 하는 모임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알려준 장소를 검색해 보니 화려한 조명과 반짝이는 대리석 테이블들이 찬란하게 빛을 수놓고 있는 곳이었다.
‘찬란하다.’라는 말을 실제로 잘 쓰지 않는 이유처럼 나에게는 낯간지러운 분위기의 장소였다. 검색을 마치고 마치 결혼식이라도 가듯 대충 다린 자켓과 미끄러운 감촉이 어색한 슬랙스를 함께 갖춰 입었다. 머리엔 모자 대신 하얀 왁스를 뭉치지 않을 정도로 펴 바르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해서 본 사람들의 첫인상은 좋았고, 다행히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낯간지러울 거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서 본 대리석 테이블 위에 샐러드, 파스타, 스테이크가 순서대로 올라왔다. 다들 와인잔을 채우고 식사를 시작했다. 더 편한 분위기를 위해 처음 본 분들과 대화를 트려는 시도도 함께.
“양갈비 스테이크 맛있지 않아요?”
“그쵸? 저거 한 조각 남았는데 드세요!”
대화를 이어가려는 의도로 말했고 그분도 배려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나는 그저 양갈비를 탐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8명이서 먹는 단 두 접시의 양갈비 스테이크가 아니라 양꼬치집에서 파는 양갈비를 맘껏 먹고 싶어졌다.
물론 다른 음식들도 많았고, 모든 게 다 맛있었는데도 마음은 혼자 먹느니만 못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인데도 그 당시는 모든 게 어색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편했던 건 서먹할 때마다 홀짝거리는 와인 한 모금. 그 모습을 알아차렸는지 날 초대한 친구가 물어왔다.
“너 오늘은 술 천천히 마신다?”
“이런 건 음미 좀 해줘야지.”
“괜히 어색해서 그러는 거 아니고?”
정확했다. 그렇게 느끼한 와인은 처음이었다. 깨작거리는 포크질, 낯간지러운 분위기, 자연스럽지 못한 대화 속에서 옹졸하게 마시는 와인. 그리고 잔 안으로 비치는 입맞춤하는 듯한 내 입모양까지. 와인의 맛이 느끼했을 리가 없는데 그 당시에는 모든 게 느끼했다.
사람, 인테리어, 음식. 개별적으로 보면 다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땐 나와 맞지 않았다. 그 경험은 불편한 기억으로 남았고, 한동안 와인바를 멀리했다.
그 후 시간이 지나 와인에 대한 느끼함을 가시게 된 계기가 있었다. 전 직장 상사분과 오랜만에 만나 연어회에 소주를 곁들이고, 2차를 와인바로 정했을 때였다.
이미 소주로 마음이 풀어져 있을 때라 와인에 대한 경계도 풀린 상태였다. 밤공기를 맡으며 30분을 걸어 해방촌에 위치한 와인바에 도착했다. 어느 정도 소화도 됐겠다 바로 와인을 주문하고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그렇게 남산타워 아래 수 놓인 불빛들을 보며 둘이서 15분 만에 와인을 한 병을 해치웠다.
걸어간 것의 절반 밖에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천천히 향과 맛을 느껴보기도 하고, 벌컥벌컥 마시며 목 넘김도 즐겨보았다. 잔에 찔끔 따라 보기도 하고 절반이 넘게 콸콸 따라 보기도 했다. 대화도 잘 통했고 야경은 아름다웠으며 와인병은 늘어갔다. 그렇게 겉치레 없이 하고 싶은 방식대로 와인을 마시는 순간은 우리가 마시던 드라이한 와인처럼 담백했다.
다시 와인을 좋아하게 되면서 여러 형태로 와인을 즐기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와인에 꽂힌 적이 있다. 마트나 편의점을 애용했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술값의 대부분이 와인으로 나갔을 시절이었다.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고 나서였는데, 주인공은 항상 와인을 병나발로 마셨다. 얼마나 몰입했던지 영화가 끝나자마자 편의점으로 달려가 와인 한 병을 사 와서 바로 병나발을 불 정도였다.
보통은 천천히 향과 맛을 음미하지만 병째로 마실 땐 감명 깊었던 영화의 여운을 음미했다. 아직도 그렇게 마실 때가 종종 있는데 그 와인은 맛을 느끼려 노력하지 않아도 깊었다.
와인에 심취하기 시작할 때쯤 루프탑 전체를 빌려서 작은 파티를 한 적이 있다. 그곳엔 처음 보는 분들도 있었고 친한 사람들도 있었다. 예전 와인이 느끼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장소와 사람들만 바뀐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10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두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고, 쉴 새 없이 잔을 부딪혔다. 안주도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편하게 배달로 준비했다. 답답한 상황도 없었기에 그저 웃고 떠들며 배 터질 때까지 먹었다.
호스트가 맛있다며 특별하게 공수해오신 와인이 박스 째로 있었는데, 그 덕에 술 마시는 템포와 대화의 흐름은 막힘이 없었다. 분위기가 좋은 것과 잘 맞는 것의 차이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루프탑에서의 밤과 함께한 와인은 유독 시원했다.
2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와인과 가까워지기 어려웠다. 잘 취하지도 않았고 바에 가면 비싸서 맘껏 마시지도 못했다. 온갖 미디어에서는 격식 있는 자리를 연출할 때 죄다 와인을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불편한 술로만 인지됐다.
요즘은 괜찮은 바틀샵도 많고, 격식 있는 자리가 아니어도 편하게 마실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전처럼 찔끔찔끔 마시며 ‘이건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맛만 보려고 마시는 건가?’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오해로 남게 됐다. 그렇게 와인과 가까워졌고 나만의 방식대로 즐기게 되었다.
남들이 보여주던 이미지나 규칙이 아니라 각자의 취향대로 와인을 마신다면 자신에 맞게 녹아들 수 있다. 와인뿐만 아니라 모든 술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와인이 내게 딱딱하고 느끼하기만 한 술이 아니라 담백하고 시원할 수도 있는 술이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