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음악의 만남에는 국경이 없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갔을 때였다. 근처에 사는 형과 저녁을 먹고, 2차로 갈 술집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동네 자체가 늦게까지 하는 술집이 거의 없었고, 들어가고 싶은 느낌이 오는 곳도 없었다.
그러다 술집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은 어두운 골목길까지 들어가 버렸다. 다시 돌아갈까 고민을 하다 검색을 해보니 근처에 술집이 하나 있었다.
‘영업시간 : 매일 11:00 – 20:00’
이미 영업시간이 지났을 때였지만, 등록된 사진과 메뉴를 보면 도저히 오후 8시에 닫을 것 같지 않아 일단 찾아가 봤다. 목적지에 다다를 때쯤 저 멀리서 올드팝이 들려왔다.
“형, 아까 찾아본 술집 음악 맞겠죠?”
“내 말이. 사진 보면 절대 LP바는 아니었는데.”
음악 소리를 따라 술집에 도착하니 형형색색 반짝이는 조명들이 우릴 맞이해주었다. 정말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올드팝과 조명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비닐 천막을 젖히고 들어가니 나이가 지긋하신 사장님 한 분이 요리를 하고 계셨다. 테이블도 몇 개 되지 않았고 정말 단골인듯한 손님들만 몇몇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은 잔잔한 음악처럼’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 위쪽에는 글귀가 써진 나무판이 걸려있었다. 입구부터 시작해 들어와서까지 범상치 않은 곳이었다.
하나에 만원도 하지 않는 염통 꼬치와 순두부찌개를 시키고, 벽에 덕지덕지 휘갈겨져 있는 낙서들을 구경했다. 사랑은 잔잔한 음악 같다고 하셨지만, ‘여친 구함’ 같은 낙서들은 잔잔하지 않았다.
안주가 나오고 본격적인 2차가 시작됐다. 소주 한 잔에 찌개 한 숟갈을 떠먹으니 다시 음악에 귀가 기울여졌다.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들이었지만 한 곡 한 곡이 모두 좋았다. 일반 술집에서 올드팝을 들으며 소주를 마신 적이 있나 생각해 보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잠시 대화를 하지 않아도 대화를 하는듯했고, 흘러나오는 명곡들에 쉴 새 없이 소주를 들이부었다.
평소에도 집이나 야외에서 술을 마실 때 음악을 듣는다. 집은 식당이나 술집처럼 말소리 같은 백색소음이 깔리지 않는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시는데 적막한 공기가 느껴지는 건 원치 않아 뭐라도 틀곤 한다.
해변이나 한강은 바람 소리, 폭죽 소리, 파도 소리 같은 충분히 감상할 만한 소리들이 있지만, 그 순간이 주는 특별함을 더 느끼고 싶어 듣고 싶은 음악을 틀곤 한다.
와인을 마시고 있어도 힙합에 꽂혀 있으면 힙합을 틀고, 맥주를 들이붓고 있어도 재즈를 좋아하면 재즈를 튼다. 주종에 어울리는 음악보다는 그 순간의 취향과 분위기가 우선시된다.
와인에는 재즈, 데낄라에는 클럽 음악 같은 특정 술과 음악의 연관성에 대한 관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취향이 다양해지거나 선호하는 장르의 범위가 넓어졌을 때, 그 관념은 허물어진다.
집에서 친구들과 안동 소주를 마시면서 존 메이어의 음악을 듣고, 한강에서 간단하게 캔맥주를 마실 땐 이소라의 노래를 듣는다. 술이 모자란 상태로 집에 돌아온 날엔 편의점에서 산 와인에 외국 힙합을 듣는다.
술과 음악의 만남에는 국경도 없고, 장르적 제한도 없다. 프랑스 와인에 미국 힙합을 듣던, 한국 전통주에 영국 밴드 음악을 듣던 그저 자신이 원하는 술과 음악에 취해간다. 소주 안주를 팔며 올드팝을 틀었던 노포의 분위기처럼 낭만을 즐길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