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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주 Oct 18. 2023

땀범벅이어도 깊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

힘들 때 삼겹살에 소주 따라주는 사람

 가을에 만난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끈적이던 여름이 지나 날도 좋고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할 때 아무렇지 않던 사람도 좋아진다. 붙을 수밖에 없는, 허한 공기를 채울 사람을 찾게 되니까.


 술기운에 찬바람이 불어도 춥지 않을 때쯤 모두가 마지막인 것처럼 종로3가 포장마차 거리로 모여든다. 연인끼리 눈길과 표현을 주고받는 테이블이 있는 반면 다른 이성의 테이블에 곁눈질을 하는 이들도 보인다. 또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을을 즐기기 위해 포차를 찾은 이들의 마음에도 어느새 허전함이 들어찬다.


 차라리 겨울이라면 두꺼운 옷으로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갑자기 찾아온 가을의 밤은 무방비 상태의 나를 사시나무로 만든다.

 차라리 겨울이라면 따뜻한 온기로 실내를 채우는 곳이 많을 텐데, 긴팔과 반팔이 공존하는 가을은 온전한 아늑함을 느낄 수 없다.


 이런 감정들을 느꼈을 때 큰 호감이 없던 사람도 조금의 따스함을 가지고 나에게 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녹아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곧 겨울이 오자 그 따스함은 금방 식어버렸다. 애초에 차가웠던 건 나였기에 탓할 수 없음을 한참 자괴하고 나서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그 정도 따스함에 녹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다만 날이 너무 쌀쌀했을 뿐이다. 그런 경험을 하길 몇 번 더 이상은 안 된다고 결심했다.


 무덥고 땀 흘릴 때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쌀쌀한 날씨에 조금의 자비로 날 안겨들게 만드는 사람이 아닌, 내가 땀범벅이 됐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깊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날 때, 옷을 차려입고 멀리 떨어진 고급 호텔에서 와인을 따라주는 사람보다 함께 집 앞 고깃집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따라주는 사람이 좋다. 고마운 건 매한가지지만 나를 더 깊게 알고 보듬어주는 사람이 좋다.



 물론 나도 가을밤 옆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아니라 한여름에 맨손으로 땀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 한다. 항상 좋아보이는 음식과 술을 사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좋아하는 취향의 것을 찾는 사람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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