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문신 여러 개를 몸에 새겼다. 처음에는 그저 이뻐 보여서 시작했고, 그다음부터는 나의 신념들을 하나하나씩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긴 작은 것들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이런 나의 문신들을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더해서 양아치냐는 말,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하냐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보다 양심적으로 살아왔고 사고 한 번 안쳤기 때문에 당당하게 걱정 말라고 말한다.
남들과 똑같이 회사를 다니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려 하는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각자의 가치관을 존중해주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철들지 않기로 했고, 남들과 똑같이 회사를 다니고 싶지도 않고, 각자의 개성을 구속하는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사실 문신을 처음 했을 때 우리 부모님도 많이 나무라셨다. 허락을 받는다고 받았는데, 부모님은 당시 지워지는 걸로 이해하셨기에 얼떨결에 해버린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자연스럽게 몇 개를 더하고 나타났을 때는 큰 꾸지람은 없으셨다. 문신을 했다고 행실이 달라졌다거나 인생에 나태해진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일까 싶다. 처음에는 죄송하기도 했다. 내가 무언가 보여주지 않은 20대 초반에 해버렸으니까. 게다가 흔히들 말하는 -사로 끝나는 직업을 갖길 원하셨으니 어떤 느낌이었는지 짐작은 된다.
나는 그 직업을 원하지 않았기에 문신을 포함해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계속해나갔다. 조그만 창업부터 마케팅 에이전시, 커머스 회사까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런 단계들을 보여드리고 나서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셨고, 나도 문신이나 미래에 대해서 완전히 독립을 했다.
이렇게 문신을 하면서 오히려 나의 신념들을 더 확고히 새기게 되었고, 갈팡질팡하던 나의 가치관들이 더 굳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좋게 보지는 않겠지만,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처음 보는 사람들일 뿐이다. 만약 문신 때문에 가까워지기 어렵다면 친해지고 나서도 분명 어떤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아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계속 알아왔던 사람들은 문신 때문에 나를 멀리하지 않는다. 부패한 정치인이 당을 바꾼다고 청렴한 정치인이 되지 않는 것처럼, 불량한 사람이 아무리 겉치레를 깔끔하게 바꾼다고 선량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선량한 사람이 문신을 한다고 불량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될 것이다.
물론 주변에 물들어 불량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애초에 소신이 없을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을 자신이 있다. 지워지지 않는 문신은 내가 평생 소신 있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가볍게는 평생 입고 다닐 수 있는 옷이라고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