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노래:유주용)

- 내가 좋아한 노래들(My favorite Songs)

by 정안나 Essayist


어머, 김소월 시인 詩래요!


父 母[부모]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 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 알아보리라



-작사:김소월(김정식), 작곡:서영은, 노래:유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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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 네이버 검색 // 부모 / 결혼지각생 / 오늘같은 날은




세일러문, 1991

"달빛요정 세일러 문~!"

"뭐요? 고모? 세일러 문?"

"응. 달빛 요정 세일러 문!"

"없는데요? ......없어요!"

"그럴리가? 잘 찾아봐~!"

"없어요! 하하하......"


"그럼, 부모!"

"아이참, 「부모」? 그 노래는 나중에 나중에 해, 누나."

"왜, 그냥 하자, ......"

"어허이,......"

"그럼, 캔디!"

"H.O.T. 캔디?"

"아니 그냥 캔디, 하하하......"

"캔디도 없어요~!"

"어머 그럴리가! ......그럼, ......하하하......신청곡~! 엄마, 신청곡!...호호호......"


그 다음 무슨 노래를 찾았는지 생각이 가물거려 아이들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둘째동생과 함께 부른 이종용아저씨의「너」였다. 60~70년대생이나 386세대들의 공감어로 통하기도 하며 전국 방방곡곡 특히 회식 좌석 어디서든 들리던 그 노래, 나는 동네 언니들에게 배웠던 노래였다. 가사 속의 「너」,는 마치 방향을 잃고 헤매는 어린 나,의 갈등들 속에서의 「엄마의 맘 그리고 가족들의 맘」, 더불어 「사라지고 있던 이 순간 이전까지의 나」였으리니 공감대 형성이 컸다고 볼 수 있던 노래로 내게는 자리하고 있었다. 타임을 놓치려는 순간, 친정어머니의 하나뿐인 사위인 남편이 불현듯 김건모씨 버전「빗속의 여인」을 선택하여 같이 부르게 되었고 분위기 파악 못한다는 듯한 길이 생긴 것이다. 하하하......호호호.......




2025.12.26. 친정어머니 팔순

친정아버지 돌아가시고 만9년 6개월이 지나고, 아버지 팔순(八旬)에는 세계여행을 보내드려야지 했던 내 꿈도 함께 벌써 사라지고, 친정어머니는 혼자남은 종갓집 맏며느리로 보이지않는 좌불안석 세월로 채워져 오며 그나마 견디시는 나날중, 그래도 둘째 남동생이 늦게나마 올 2025년 봄 결혼을 하고, 친정어머니 팔순은 두 동생들이 계획을 세워 두었다 여겼는데 내년 2026년 2월 초 첫 외손녀인 우리의 맏이 결혼식도 있고 하니 가족모임을 송년회인듯 음력 섣달 생신을 양력으로 세우시듯 예고없이 올라오셔 만나고 미니 파티를 하게 되었었다.


"오늘 팔순잔치인거에요?",

식당에 모여 차레로 돌아가며 인사를 나누던 차에 나의 순서에서 나의 첫말이자 질문은 종갓집 맏며느리의 위세에 늘 진 발언으로 '출가외인이니 관여치 말어라',만을 중심으로 하는 기준에서의 낟알인 나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래되고 보존하는 보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며, 그를 지켜 주시는 친정어머니이시니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서운함이 더 많아져서는 서로에게 불이익이 될밖이니 그럴 필요는 없다 여기지만 문중과 함께 지내시는 중이시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2025.12.26. 친정어머니 팔순

큰동생내외와 현역병 제대 불과 3주된 조카와 재수생 조카 넷이 사는 집으로 둘째내외가 모시고 올라오신 것으로 나에 대한 불신, 즉 나의 일상이 전면 거짓말이라고 여기는 주변인들 헛소문 기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는 것으로 결혼 후 세 아이를 낳은 이후의 4년대졸업까지도 대학졸업식 사진을 액자에 담아 드려도 참석하지 아니하셨기에 믿기지 않는 상태의 정신들로서 애가 타는 나를 그나마 그날 참석한 가족들인 남편과 세 딸들만 알 뿐인 것으로 아무리 진실 진짜라고 해도 자신들 기준대로만 여기다 다툼이나 일으키니 사실, 문예지 문단의 등단도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해외 유수(有數)대학이나 대학원 유학파들의 경쟁구도들에서는 「국립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생」이라하면 고교 졸업 정도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현실에서 울화가 치미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찌하였든 드러난 '학문의 길' 대로에서는 질과 양을 떠나 뒷쳐지는 형색이 맞는 것이 보통 일반인들의 판단이니 아마 이에서도 '국립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졸업생들'이 다시 또 편입을 하고 또 하고 거듭하여 그 학력의 갈등과 갈증을 메우고져 함으로하여 본인의 의식의 반향이기도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다. 다만 현재 사회활동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거나 현실보다 크게 바라는 이상과 비젼이 없다면 지금 그대로를 유지하는 방법으로의 학문과의 대면일 것으로 일상유지가 기본이 되는 것이될테다. 소리 소문없이 대학 입학과 졸업을 하고 소리 소문없이 9개월만에 평생교육사2급 취득을 한 경위에서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판단들이 90%이상으로 열변을 토하는 것이 일상이 된 것도 맞던 것이다. 결국 내 공부는 열변의 방증(傍證)이었던 것일까, 웃음이 난다, 친정어머님께서 살아 계시니 다행으로 그나마 안정을 찾는다 할 수 있다.


"우리집으로 오세요."

2025.12.26. 친정어머니 팔순

"아니, 다음에 가마. 네 딸 결혼식 있으니 그때 가면 되지, 다름이 아니고, 둘째가 회사에서 단체로 하는 정기검진을 한다고 서울로 간다고 하다 내외가 같이 받으니 나도 같이 가자하여 내일 간다."

"아, 그래요? 검진 마치고 우리집으로 오시면 되시지요?"

"아니, 거기 식당 예약 했다고 하니 거기서 보자. ......"

"예, 그러면 그래요...... 그리고 엄마, 오셔서 보시고 가시고 매일매일 저희집을 다른사람 집이라고 하지 마시고요. 큰이모님께도 알려 드리시고요....."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늘 전화통화로 드리던 내 마음들이었다. 어느 누군들 부모님과 함께하는 항복한 삶을 부정하겠는가? 잘못된 판단들과 사정들이 있을 뿐인 것이다.


"엄마, 요즘은 팔순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아시잖아요. 100세시대만으로도 앞으로 20년이나 남았고, 빈 말씀이라도 영원히 함께 잘 살자는 세상이니 엄마도 잊지 마시고요......"

"그래, 그러자......끊는다......"

"예......"



*P.S:「노래방」에는 가족들이나 동료들과 함께 모범업소에만 다녀요!




1987.05.08.어버이날 노래자랑

"어! 이게 뭐람! 어휴 엄만 참!"


「전국노래자랑」에 출현하신다던 해가 몇 십 년 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예선만 통과하시고 본선에는 못 올라가셨었다고만 하시어 한참을 놀랐던 날들이 있었다. 또한 결혼 전, 어느날 집에 내려가 가족 앨범을 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도 사실이었고 나는 얼마나 수치심을 가졌었는지 모른다. 중학교 모교 구령대 위편에 설치된 무대에 올라 가셔서 「학부모 노래자랑」에 참석 하신 모습이셨지만 내게는 이상하게도 지금까지도 숨겨오는 이야기들이 되었었는데, 이제는 조금 괜찮아 진것이 맞아 이렇게 비밀공개를 하듯 말하는 중이게 되었다. 아마도 나는 학교 선생님이 될 사람이니 늘 조심하시라고 당부를 드리던 내 본심의 역사였던 것이 분명한 것이었다.

1987.05.08.어버이날 노래자랑

다시보면 다름아닌, 나는 이미 1984년 2월 졸업을 하고 3년이 지난 교내「어버이날 기념 노래자랑」이었고, 졸업이후에도 남아 계시던 담임선생님 모습들도 심사위원석에 보이시어 반갑고도 인사드리지 못함에 죄송스러움이 앞선 마음들이 함께하여 한껏 그 시간들로 나도모르게 스며들었지 싶다. 하긴, 중학교2학년에는 방송반에 들지 않겠느냐시던 도덕선생님 말씀도 있었던 연유일까도 싶다. 그 권유 이전 봄에 이미 「체신부」 주관「국군장병위문편지쓰기에서 우수상도 수상」한 바에 의한 것이었기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한사코, '그건 니 생각이고~!',이셨음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는 것으로 내가 6학년이던 1980년 엄마는 동네 부녀회장을 맡고 계셨었고 그 직분에 대한 충성이 이어진 길들이기도 하였음을 45년만에야 알다니 참 무심한 외동딸 불효녀 나인 것이다. 엄마 노래 부르시던 날, 나는 근로자 역할에 매우매우 충실하며 평택 금성사 기숙사에서 내집처럼 살던 때였다. 그리고 다시보니 해마다 열리는 '5월 사내 축제'가 연습중이었거나 실제상황이던 날들이기도 하듯 하다. 아마 2~3일 정도를 했지 싶고 나도 참가를 해보고 싶은 맘이 굴뚝 같기도 하여 두리번 거리던 날들이 분명하였으며, 일반 체육대회는 전원 참석이었을 것이나 무대 위에서 활동은 사전에 준비된 팀들 몫인 것은 당연하였다. 아, 나는 사직서를 이미 제출한 상태였기에 바라만 보고 있었던가도 싶다. 그저 서울로 재상경하여 국어선생님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내딛던 길들이었고 5월 말 고향집으로 돌아왔었다. 일주일에 3~4일씩 철야를 하던 만 열아홉의 나, 나는 극도로 쇄약해지고 피곤애 쌓여 피를 쏟으며 쓰러질 둣 집으로 돌아 왔었다. 형들과 선생님들께 일언반구 연락도 없이, 혈우병 걸린 소녀처럼 쉬고 싶었던 것이 옳을 것이다. 2000여명 사원들이 정기검진을 받던 오산의 지정된 병원에서의 검진에도 아무 이상은 없었다. 그저 쉬고 싶었던 것이 옳을 것은 도중에 내과 검진도 있어 처방도 있었지만 집에 오니 하루 이틀만에 회복이 되었었다.




1980년 초등6학년 가을 외할머니 회갑

초등 저학년부터 어쩌면 가장 먼저 귀동냥으로라도 들었음직한 노래, 「부모」는 외삼촌 주제곡이기도 하였었고, 특히 이렇게 하얀 눈이 소복히 밤사이 내리는 겨울밤이면 캄캄한 방안에서 그림처럼 들릴 듯하던 노래였었다. 외할머니 품안에서 눈이 내리는 소리, 나의 안식처였다.


그런데 「소월 김정식 시인」의 詩,였다니 국어국문학과 졸업생으로 말이 아니게 부끄러워진다. 얼마전에는 「엄마야 누나야」를 너무 좋아하던 내 유

1980년 초등6학년 가을 외할머니 회갑, 마을 어르신들과 외삼촌

년에서 시골아버지께서 내 맘길을 헤매시다 돌아가신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도 들었었다. 누구나 그러하므로, 누구나 엄마와 행복하게 살고 싶으므로.


이 사진 속에는 안 보이지만 엄마와 아버지, 이모님들과 이모부님들 그리고 외삼촌과 외숙모님과 조카들, 그리고 온 동네 어르신들과 멀리서 친지들까

지 오시어 기쁜 잔치가 열렸던 외할머니의 회갑잔치, 그리하여도 마을 이장님께서 확성기까지 미리 준비해 주시어 마당에서 노래잔치가 열릴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부잣집의 화려한 회갑잔치는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적당하고 분수에 맞는 행복한 시간들이었음이 당연하였고, 외할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앉아 찍으신 모습들도 나는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친정어머니 팔순에 외할머니 회갑을 연상하게 된 것은 우연이기도 필연이기도 함은 친정어머니를 낳으신 분이 외할머니시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 그런데 이 또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달의 요정 세일러문'은 선한 노부부가 키운 여자아이 이야기라니, 너무 놀랍고 '나', 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 가사인가? 나는 처음 듣고는 거절했고, 이미지는 맘에 두었었다.




[112] 달의요정 세일러문~ : 네이버 카페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살며시 너에게로 다가가

모든 걸 고백할텐데


전화도 할 수 없는 밤이 오면

자꾸만 설레이는 이 마음

동화속 마법의 세계로

손짓하는 저 달빛


밤하늘 저멀리서

빛나고 있는

꿈결같은

우리의 사랑


수없이 많은 별들중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어

기적의 세일러문

[112] 달의요정 세일러문~ : 네이버 카페


그러고보니, 하얀 바지에 노란 세일러복을 입고 다니던 만스무살 1988년 서울생활로 , 지금의 세 딸들 아빠이자 하나뿐인 남편 기억속 나이기도 한 것이었다. 또한 나는 초등학교 밴드부원으로 하양 빵모자와 파란 망토와 짧은 주름미니스커트를 입고 피아노연주와 운동장 퍼레이드를 하던 밴드부원이었다. 잊으려 한 건 아니었는데 자꾸 잊혀지듯 함은 긴 세월간 오염된 세상의 판단들이 앞서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000년 아이러브스쿨에서 몇 십년만에 안부를 주고 받으며 겨우 밴드부 단체사진을 친구에게 얻었었는데, 셋째 늦둥이를 낳고 여러차례 이사를 하고 컴퓨터도 몇차례 바뀌어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지금이다. 하지만 백업파일 어딘가에는 있지 싶고 다시 친구들에게 내가 들어 있는 밴드부 사진이 하나라도 있다면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날들이기도 하였다. '그런 것들이 지금 무슨 소용이냐~!',는 판단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러한 과거를 통하여 발전된 것이기에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늘 잃어가며 알게 되니 아쉬운 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나는 완전히 동화나라에 빠진 동화쟁이였기도 하였었다. 하교후는 물론이거니와 학교 쉬는 시간에도 도서실에 가서 동화책을 보고 대출까지 하여 와 집에서도 읽던 독서광 나, 모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지극하신 참사랑에 힘입은 것으로 주는 밥만 먹고 자란 나 맞던 것이다. 다시, 외할머니 회갑잔치 사진만으로도 우리집에는 늘 동네어르신들이 매일밤처럼 마실을 오시던 집이기도 하였었다. 평생교육사2급을 취득하며 이미 내몫으로 지정이 된 듯한 「노인교육론」을 배우며 이것은 어릴적 나와 어르신들의 교감이라고 여길만큼 수월하기만 하였었다. 사진 속 어르신들이 지금은 어느 분이신지도 기억에서 가물거리는 나, 다시 드는 생각은 결혼 이후로 시댁 어르신들 기준으로 살다 잊은듯 하니 두 마을 이웃사촌들과 먼 친지분들까지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저토록 눈부시던 분들이셨는지, 진실로 눈물이 저절로 솟던 날들이 이미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야말로 한 점 티없이 맑은 맘으로 농사일에 자식일에 온맘 다 해 살아 오시던 분들이기에 갖는 정감들일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년여전 돌아가시고 슬픔에 찬 산들녁에도 봄은 오고 가을이 왔던 것이다.






-커버이미지 : Pinterest/Familia에 있는 핀

-참고이미지 : *부모 (父母)

*김소월 : 네이버 검색

*부모 / 결혼지각생 / 오늘같은 날은

*세일러문, 1991

*[112] 달의요정 세일러문~ : 네이버 카페

(저작권에 부합한 내용이 있다면 메일로 연락을 주십시오.)

-Writer : Evergreen 정안나/평생교육사, 수필가


ⓒ Evergreen 정안나/평생교육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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