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1화
나는 12년 차 중고등학교 수학 교사다. 이번 생에 100억 이상의 자산을 갖기로 결심했다. 미친놈인가. 100억대 자산가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직업을 교사로 선택하다니. 근로소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상속받기로 했다.
나의 장인어른께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사실 그냥 '(찢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가난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부모님께서는 모두 대학 교육을 받으시고 번듯한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지만 아버지께서 30대 나이에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시면서 두 분은 고달픈 삶의 역경을 지나셔야만 했다. 아버지는 술과 담배, 어머니는 독실한 신앙심에서 삶의 위로를 얻으며 그럭저럭 삼 남매를 길러내셨다. 두 분은 5분 이상 대화를 이어가실 수 없을 만큼 생각, 취향, 철학이 너무나도 다른 분들이셨지만 공통된 의견이 있었다.
돈 많다고 행복한 거 아니다.
학교에서도 돈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는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다. 물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을 얻어야 한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은 많았다. 고등학생 시절, 내 주위 어른들이 말하는 최고의 직장은 병원 다음으로 학교였다. 나 역시 의사가 되거나 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했으며 확고한 목표의식 없이 '수능 점수 결과대로 가지 뭐'라는 생각으로 두 번의 수능 시험 끝에 졸업생의 99%는 교사가 되는 지방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했다.
대학교에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많았다. 다들 넉넉지 않은 집안의 그래도 공부는 좀 하는 착한 자녀들. 돈에 관해 새로운 생각을 일깨워주는 친구, 선배는 없었다. 교수님들도 마찬가지. 정말이지 자신이 가르치셔야 하는 전공 내용에 충실하신 분들만 만났다.
군대를 전역하고 25살이 되었을 때, 지금의 아내가 된 여자친구를 만났다. 당시 나는 3학년이었고 여자친구는 신입생이었다. 여자친구는 특별히 비싼 명품을 소지하지도 않았고 소매가 심하게 해진 후드 점퍼를 별로 개의치 않고 입고 다니는 털털한 친구였기에 이 친구도 나와 비슷한 수준의 경제적 배경을 지니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사귄 지 6개월쯤 지났을까, 서울에서 여자친구를 만나러 학교에 오신 여자친구의 어머니와 잠깐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사귄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이 만나는 남자친구의 인상착의 정도는 굉장히 궁금하셨으리라. 여자친구에게 어머니를 만나면 넉살 좋게 절하겠다고 말했었다.
차종에 대한 정보는 모른 채 도서관 앞에서 어머니의 차를 기다리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처음 보는 에쿠스가 저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당시에도 1억 상당하는 모델이었다. 이상하게 그 차를 보며 몸이 굳어지면서 육감적으로 어머니께서 다가오심을 느꼈다. 넉살 좋게 절하겠다는 호기는 말끔히 사라지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직감은 맞았고 나는 다소 떨면서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배려심이 남다른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딸의 남자친구 인상착의가 양아치로 보이지는 않음을 확인하시고 내가 부담 가질까 서둘러 가셨다. 나의 인상착의는 매력을 어필하기보다는 신뢰감을 주는데 최적화되어 있기에 딸이 외모만 보고 남자를 만나지는 않는구나 하고 안심하셨을게다.
지금이야 워낙 좋은 차들을 많이들 끌고 다니지만 그 당시에 특히 지방에서 그런 고급차는 흔치 않았다. 카푸어도 워낙 많은 세상이니 차만 가지고 경제적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여자친구와 교제하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그녀가 나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음을 차츰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제적 풍요는 사업가로서 자수성가한 ‘여자친구의 아버지’ 덕분이라는 것도 여자친구를 통해 들었다.
연애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을 때, 여자친구의 아버지께서 청평에 있는 별장으로 나를 초대해 주셨다. 그렇게 그분과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그날부터 ‘돈’에 대한 나의 생각은 서서히 각도를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