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께 100억 상속받기 2화
오빠... 우리 아빠가
오빠를 만나보고 싶어 하시네?
여자친구의 말이 평소답지 않게 무겁게 가라앉은 채 전해진다.
여자친구와 사귄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어머니께서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할 때, 여자친구는 망설이지 않았다. 나도 큰 부담 없이 받아들였다. 물론, 어머니를 처음 대면한 순간에는 정말이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떨리긴 했다. 그 후 두 번 정도 더 만나 셋이서 같이 카페에서 팥빙수 먹으며 이야기 나눌 정도로 어머니와는 살가워졌다.
교제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아버지께서 날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할 때의 여자친구는 망설임으로 가득했다.
‘뭐지?’
‘아빠에게 나를 보여주는 게 부담스러운 걸까, 나에게 아빠를 보여주는 게 부담스러운 걸까’
애써 태연한 척, “그래, 한 번 뵈러 가지 뭐”라고 대답했지만 여자친구의 망설임은 곱절이 된 크기로 나에게 전이됐다. 그날부터 온갖 상상을 하며 혼자 긴장했다.
‘부모님께서는 뭘 하시나?’
‘연애만 하게’
‘자네에게 내 딸을 줄 수 없네’
아침 드라마에서나 봤을 법한 장면들을 떠올렸다.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이미지 트레이닝 하며 결연해지곤 했다.
만남의 장소는 여자친구네 별장이었다. 주말에 1박 2일로.
“별장?”
여자친구네 별장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별장은 부루마블에나 있는 거 아닌가.
‘하, 1박 2일이라’
나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1박을 같이 하는 건 좀 부담스럽다. 그런데, 처음 뵙는 여자친구 아버지와 함께 1박 2일을 보내야 하다니.
쿨한 척,
“그래, 가자. 가보자.”
“근데, 아빠가 일을 많이 시키실 수도 있어.”
“일을 시키신다고? 말을 시키시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 같은데?”
“그래?.. 어쨌든 오빠, 미안해”
‘왜 미안한 거지?’
아무래도 나에게 아빠를 보여주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다.
약속의 날, 여자친구네 집으로 갔다. 여자친구 어머니의 고급차를 보고 한껏 움츠러들었던 나는 넓디넓은 아파트를 영접하곤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살면서 60평대 아파트는 처음 가봤다. 세 식구가 사는데 60평대라니. 한 명당 20평 이상은 차지하고 사는 게다.
그때까지 나는 아파트에 살아본 적도 없었다. 그나마 살던 주택도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짐에 따라 30평대에서 20평대, 마침내 10평대로 아담해졌다. 우리 식구는 5명. 한 명당 4평도 안 되는 땅을 점유했다. 장성한 삼 남매가 한 방에서 자야만 했다.
여자친구 아버지의 고급 SUV를 타고 청평으로 이동했다. 쪼그라들 때로 쪼그라든 나는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받으러 가던 신병 때 마냥 위축되고 잔뜩 긴장했다. 말을 꽤나 잘하고 넉살 좋은 나였지만 그날은 좀처럼 입을 열기 어려웠다. 그냥 진중한 사람이기로 했다.
번뇌에 휩싸여 심난하게 요동치는 나의 마음과는 별개로 청평 별장으로 향하는 길의 풍광은 참 아름다웠다. 청평호를 둘러싸고 여유롭게 자리 잡은 별장들. 물살을 시원하게 가르며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별장에 도착해 짐을 풀고 여자들은 식사준비를, 남자들은 바깥노동을 시작했다. 사실 나는 시골에서 6년 정도 살았던 경험이 있어 노작 활동에 상당히 유능했다. 혹시라도 아버님께서 말을 걸까 싶어 일하는데 초집중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상황에 적합한 연장을 구해 와서는 알아서 척척 일하는 나를 보고 아버님은 꽤나 흡족해하셨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정원에서 자갈을 나르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약속된 시간보다 15분쯤 일찍 나간 걸로 기억한다. 충분히 일찍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아버님은 이미 땀을 흘리시며 한창 일하시는 중이셨다. 허둥지둥 연장을 챙겨 노동에 동참했다.
여담인데 아버님은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신다. 항상 정해진 시간보다 먼저 시작하신다. 사위인 나는 아버님과 만날 때면 늘 한 시간을 뺀다. 9시에 만나자 하시면 8시까지 가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님께서 날 기다리실 때가 많다.
마지막 작업을 마칠 즈음, 아버님과 가까운 거리에 앉아 풀을 뽑았다. 그때부터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예상했던 그 어떤 호구조사나 연애에 관한 참견은 없으셨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젊은 대학생에게 도움 될 만한 말씀을 해주셨다. 그날 아버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일기장에 적어뒀다. 내 삶의 방향을 찾을 때마다 꺼내본다.
1. 멘토를 찾아라. 멘토는 객관성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2. 결정은 잘 나갈 때 내려라. 사람들은 흔히 상황이 어려울 때 결정을 내린다. 이는 감정적인 판단이 되기 쉽다.
3. 젊었을 때 나를 발견하고 나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길을 확실히 정했을 때는 핸들을 없애버려야 한다.
4. 골프를 배워라.
이 말들을 들었을 때, 뭐랄까. 내 삶에 빛이 비친 느낌이랄까.
나는 가난했지만 내 꿈까지 가난하진 않았다. 내 삶을 둘러싼 세상이 나에게 냉소적일지라도 나는 세상을 향하여 단 한 번도 냉소적이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을 읽으면 가슴이 뛰는 대학생이었다.
여자친구의 아버님은 그런 나에게 찾아온 빛이었다.
책에서만 보던
부자아빠가 현현했다.
학교에서 다시 만난 여자친구는 한껏 가벼워져있었다.
“아빠가 오빠 꽤 안 부리고 일 잘한다고 좋아하시네.”
역시, 일은 잘하고 봐야 한다.
한참 지난 어느 날, 여자친구가 다시 무겁게 말을 건넨다.
“오빠... 아빠가 오빠한테 이 신문 기사를 전해주라 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