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선생님이 싱글 골퍼인 이유
나는 왜 아직도 백돌이인가
친한 형님네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스크린 골프장이 있어 둘 다 여유가 되면 스크린 골프를 치곤 한다. 형님은 골프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골프를 좋아하기에 바쁜 직장생활과 퇴근 후 쌍둥이 육아를 하는 와중에도 짬이 나면 나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골프란 자다가도 뭉그적뭉그적 일어나서 갈까 말까 고민하다 귀찮음을 이겨내고 막상 치고 오면 기분 좋아지는 그 정도의 운동이다. 골프에 대한 열정과 실력에 심한 격차가 존재함에도 나에게 연락 주시는 것이 고마워 형님께서 제안하시면 무조건 OK이다.
하루는 유독 드라이버샷이 잘 맞아 인생 스크린 스코어가 나왔다. ‘오, 이제 제법 실력이 올라온 건가?’ 자신감을 얻은 나는 다음날 저녁 인도어 연습장에 갔다. 어제 스크린에서 보여준 드라이버샷 궤도라면 아주 기분 좋은 연습이 되리라 기대하고 드라이버를 휘둘렀는데 젠장, 자신감을 너무 얻었나 보다. 내가 날린 골프공들은 오른쪽으로 휘었다가 왼쪽으로 휘기를 반복했다. 연습을 시작한 지 10분도 안 지났는데 진이 빠졌다. 골프를 처음 배운 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 모양인 건가. 심 선생님의 유쾌한 호통이 심히 그립다.
2019년 옆 반 담임으로 처음 알게 된, 나보다 한 살 어린 심 선생님과는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다. 심 선생님은 그 당시 본격적으로 골프를 배우려고 했다. 나는 대학교 4학년 때 교양 수업으로 골프를 처음 접한 후 제대로 된 레슨과 연습 없이 골프와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던 터라 이참에 제대로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심 선생님과 함께 스크린 연습장에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체육 전공인 심 선생님과 같이 배우면 왠지 골프 실력도 빠르게 향상될 것 같았다.
함께 레슨을 받으러 가던 첫날, 심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가 기억난다.
심: 선생님, 골프 목표가 어떻게 돼요?
나: 목표요? 뭐 그냥 올바른 스윙 자세를 익히고 나서 즐기면서 치고 싶네요..
심: 저는 3년 안에 싱글 골퍼가 될 겁니다.
심 선생님의 목표는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심 선생님은 레슨을 시작하고 얼마 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라운딩을 갔다. 나에게도 라운딩을 강권하였지만 나는 스윙 자세를 제대로 익히고 난 후에 가겠다며 거절했다. 레슨을 받으면서 차츰 둘 모두 실력이 늘긴 했지만 목표가 달라서인지 연습의 포인트는 좀 달랐다. 나는 프로님이 지도해 주시는 대로 7번 아이언샷과 드라이버샷만 연습한데 반해 심 선생님은 프로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고 지난주 라운딩에서 잘 맞지 않았던 클럽 위주로 프로님께 질문해 가며 연습했다.
한 번은 심 선생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심 선생님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거실에 있는 퍼팅 연습기에서 퍼팅을 5번 성공한 후 TV 골프 방송을 틀어 놓고 집에서의 일과를 시작했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렇게 하고 있었다.
6개월 동안 같은 스크린 연습장에서 레슨을 받은 후 각자 여건에 맞게 연습을 시작했다. 나는 집에서 좀 더 가까운 스크린 연습장으로 옮겨 레슨을 받았고 심 선생님은 인도어 연습장에서 레슨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라운딩을 가는 심 선생님은 매주 달라지는 스코어를 보며 밀도 높은 연습을 했으며 나는 라운딩을 가지 않기에 아무래도 연습의 밀도가 낮았다.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레슨도 받지 못하고 연습도 꾸준히 하지 않게 되면서 나의 골프 실력은 또다시 정체되었다.
3년 후 심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싱글 골퍼가 되기까지 3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이 라운딩 가서 골프공이 미사일처럼 소리 내며 강력하게 날아가는 그의 드라이버샷을 보고 넋이 나가기도 했다. 싱글 골퍼를 넘어서 이제 언더를 노리는 심 선생님은 아마추어 대회 출전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3년 안에 싱글 골퍼가 된 '심 선생님'골프를 시작하기 전 배드민턴만 팠던 심 선생님은 배드민턴 아마추어 대회에서 준우승을 2번이나 했다. 물론 185cm가 넘는 월등한 신체조건과 타고난 운동 기량도 한몫했겠지만 어떤 운동 종목이든 시작하기에 앞서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연습을 하루의 루틴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는 탁월함의 비밀을 꿰뚫고 있는 게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