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 비상이야 비상

매일 긴장되는 교실 이야기

by 화원

어제는 글쓰기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과 나의 열정이 만나 빛나는 걸 느꼈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들을 같은 층에 있는 도서실에 데리고 갔다. 원래는 각반마다 도서관 이용 시간이 배정되지만 올해는 학급수가 늘어서인지 7 학급인 4학년에 5시간만 배정이 되었다. 서로 갈 건지 물어가며 가야 하는 게 아쉽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올해 두 가지 가르칠 게 있어요. 그건 바로 책 읽기와 글쓰기예요.”라고 했던 어제에 이어 오늘은 “앞으로 매주 도서관에 1시간씩 갈 거예요.”라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지킬 예절들을 안내하고, 아주 조용히 복도를 지나 도서관에 갔다. 사서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책 자리를 표시하는 나무막대에 대해 설명을 듣고 각자 자기 번호가 적힌 막대를 들고 다니며 자리를 표시하고 책을 꺼내 읽었다. 아이들이 꼭 하는 질문은 “선생님, 만화책 읽어도 돼요?”였다. 아마 10년 전이었으면 안 된다고 했을 거다. 그건, 내가 거의 안 읽었던 책이고, 어떤 학습만화 전집류 책에서 적절치 않은 내용을 봤던 부정적 기억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알게 된 건, 남편이 서점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수많은 책과 만화책을 읽으며 자랐고 우리 집에 산더미같이 많은 만화책이 있어서 아이들도 그걸 읽으며 자랐다는 게 나의 관점을 좀 바꾸었다. 서재방에 있는 그 많은 만화책-아, 베란다에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그 책들 때문에 난 이 아파트가 무너질까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딸아이는 초등학생 때 이미 슬램덩크와 초밥왕도 모두 읽었다. 그리고 어린이 과학동아를 쪼그리고 앉아 얼마나 오래 보던지, 도서관에서 버리는 과월호를 1년치씩을 구해와서 주는 것인데도 그렇게 재미있게 보고 또 보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느새 ‘건강하게 검증된 만화책은 좋은가 보다.’하고 나의 관점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래서 대답한다. “네,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마칠 즈음 아이들이 대출하려고 줄을 서자 사서 선생님은 “대출할 때는 만화책 1권 빌리려면 줄글 책 2권을 꼭 같이 빌려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 몇 명은 급히 줄글 책을 찾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독서와 글쓰기 지도의 상징과도 같은 도서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는 가르치는 기쁨과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난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건만, 결국 아이들과 3일째인 오늘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다. 먼저는 한 아이가 9시가 넘어도 학교에 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의 엄마에게 연락했지만 계속 전화를 받지 않는다. 세 번 전화를 해봐도 받지 않자 결국은 아이의 아빠에게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빨리 받으셨고, 집에 연락해 보겠다는 말을 듣고 끊고 기다렸다. 하지만 또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또 쉬는 시간마다 엄마분께, 아빠분께 연락을 드렸지만 또 연락이 되지 않는다. 기초조사서 등 각종 회신해야 할 안내문을 가장 마지막까지 내지 않고 있는 아이였다.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아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결국은 점심식사하는 12:30에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죄송해요. 오전에 급한 일이 있어서 연락을 못 드렸어요. 지금 집에 가볼게요.” “네, 가까이 계시면 그렇게 해주세요. 많이 걱정했어요. 오늘 6교시까지 하니까 꼭 바로 오라고 해주세요.” 그렇게 30분 정도 기다리자, 깨끗이 닦아놓은 그 창문 너머로 키 큰 그 아이의 머리가 보였다. 실내화로 갈아 신는 것 같다. 그런데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길래 “얘들아 사회책 잠시 보고 있어.”라고 하고 나가보았다. “**야 무슨 일 있었어? 지금까지 잔 거야?”“네 지금까지 잤어요.”라고 말하는 그 아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괜찮아. 선생님은 많이 걱정했어. 엄마랑 아빠 다 출근하시고 혼자 못 일어났구나. 스마트폰 있지? 거기 알람도 되고?”“네 있어요.”“그래, 그럼 내일부터는 알람 잘 맞추고 소리 나면 잘 일어나서 와.”라고 했다. 등을 두드려주고,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나는 앞문으로 들어왔다. “**가 사정이 있어서 좀 늦었어.”라고 하니까 아이들이 인사했다. 아이는 오늘 6시간 중 겨우 2시간만 하고 갔다. 아이를 기다리면서 이 아이의 작년 담임선생님에게 작년에 무슨 일 있었는지 메신저로 물어보자, 6학년인 이 선생님은 “6교시 마치고 말씀드려도 될까요?”라고 답을 주셨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간 오후에 우리 교실로 오셨다. “작년에는 학교에 이렇게 안 오는 일은 없었어요.”“아 그래요? 전 우리 반 아이들 명단 보며 주변에서 걱정하던 아이보다 이 아이가 더 걱정이 되네요.”“작년 이야기들을 다 말씀드려야 하나 모르겠네요?”“아는 대로 다 알려주세요. 알아야 대비를 하죠.”“그럼, 일단 이 아이가 작년 3학년 때도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서 곱셈을 배우기 어려워했어요.”“아, 그래요? 학습부진 그런 표시가 없었는데요?”“아, 제가 꼭 표시해 달라고 했는데 부장님이 누락시키셨나 봐요.”“아, 그래요?” 그렇게 아이에 대한 상담을 마치고 난 뒤, 난 가만히 앉아서 이 아이의 첫날부터를 복기해 보았다. 시업식 애국가를 부를 때 혼자 유일하게 음정을 맞춰 고운 소리로 부르던 아이였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 드러내어 칭찬했었다. 그런데 4학년 아이라 보기엔 너무 어둡고 우울했다. 어두운 베일을 벗겨주고 싶은 아이였다. 이제 만난 지 3일일 뿐인데, 무얼 할 수 있을까. 내일 9시 전에 맞춰 잘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이 아이를 오전 내내 기다리며 마음 졸이고 있는데, 20분인 중간놀이시간에 뒤쪽에서 한 아이가 눈두덩을 손으로 누르는 게 보인다. “왜, **야 다쳤어? 이리 와봐.” 아이가 왔는데 둘이 같이 놀다가 오른쪽 눈 바로 그 접히는 연한 살 쪽이 친구 손톱에 다쳤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다치게 한 친구는 연신 사과하고, 둘이 보건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보건선생님이 “얼굴이라 혹시 상처 걱정되면 학부모님께 피부과에 가보시도록 안내하는 게 좋겠어요.”라고 메시지가 왔다. 그래서 곧바로 아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4학년 올라와서 담임의 첫 전화가 상처로 인함이니, 어머니는 얼마나 속상하실까. “어머니, 며칠 되지 않았는데 **가 다쳐서 정말 죄송해요. 아이들끼리는 사과했는데 상처가 걱정되네요. 보건 선생님이 상처 염려되면 바로 피부과 가보시도록 안내드리라고 하셨는데 그러시겠어요? ”“아니요 선생님, 괜찮아요. 아이들 놀다가 다칠 수도 있죠. 그냥 보건실에서만 치료해 주시고 수업 마치면 보내주세요.” “네 더 안전하게 지도할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음 어려운 전화를 마쳤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을까? 아이가 또 밴드 붙인 자리를 누르고 있길래 가까이서 보니, 밴드 위로 피가 배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다시 보건실로 직접 데리고 갔다. 보건 선생님 앞에는 한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치료받고 있다. 조금 기다렸다가, 보건 선생님께 가니 밴드를 떼시고, 다시 소독하고 코피 막는 솜으로 그 상처 부위를 꾹 누르셨다. 그리고 눈이 불편하지 않게 <자 모양으로 밴드를 잘라 붙여주셨다. 5mm 정도가 빨갛게 상처가 보였다. “선생님, 저 사진을 하나 찍어둘게요.”“아 아까 왔을 때 사진 찍어둔 게 있어요. 그걸 메신저로 보내드릴게요.”“아 네 그래 주세요. 감사해요.” 내 아들도 8살 때 동네 동생과 놀다가 그 동생이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바람에 광대뼈 근처에 상처가 나서 피부과를 몇 달 다녔던 기억이 났다. 얼굴 상처는 얼마나 잘 보이는지, 보일 때마다 속상했다. 이 아이도, 어머니도 한동안 아프고 속상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고 난 뒤, 메신저로 받은 상처 사진을 아이 어머니께도 보내드리며 다시 죄송하다고 하고 상대 아이 어머니께도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 아니에요. 그 아이 어머니가 연락 주셔서 먼저 죄송하다고 하셨어요. 저도 괜찮아요.” 괜찮다고 하시지만 아들 상처에 마음 괜찮은 엄마가 어디 있을까. 이해해 주시는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등교하지 않는 아이, 그리고 눈가 상처 난 아이로 인해 오전에 화장실 한번 가지 못하고 마음 졸이기만 한 그런 하루였다. 내가 교실에서 두 눈 부릅뜨고 지킨다 해도 사고는 일어난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가르치지 않은 건 없지만 사고는 일어난다.


마음은 그 두 아이에게 온통 가 있지만, 그래도 내가 가르쳐 준 대로 인사를 바르게 한 다섯 명의 아이들을 앞에서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음악 시간에는 ‘모두 다 꽃이야’에 내 친구 이름을 넣은 가사 바꾸기를 했다. “발표할 사람?” 하니까 쭈뼛쭈뼛해한다. 내가 “이거 발표 안 하면 우리 집에 못 가는데, 1시간 더 해야겠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아….” 탄식하며 웅성웅성한다. “**아, 네가 발표해 줘.” “아, 나도 잘 못하는데.” “아, 제발. 우리 집에 가게 해 줘.” 앞에서 보면 그러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씩씩하고 밝은 친구를 향한 간절한 바람의 눈길들. 결국 그 아이가 바꾼 가사로 노래를 불러준 덕분에 아이들은 모두 ‘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집에 갔다.

결국은 많은 일이 있어도 하루는 끝나고 나는 퇴근한다. 하지만 3일째 오늘은 비상사태였다. 모든 게 다 이해되고, 이해받았지만 그래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딱 10년 전, 내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가 ‘사구체종양’ 임이 밝혀져서 수술을 했었다. 손톱 아래에서 점점 자랐던 사구체종양을 수술로 제거하던 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게 수술 면피하는 거예요.”라며 그 팥알만 한 종양을 핀셋으로 눌러 뒤적이며 보여주셨다. 나도 가끔 생각한다. ‘나의 교육에도 저 종양을 꺼낸 것처럼 보이는 끝, 보이는 마무리가 있다면 좋겠네.’ 내가 애쓰고 마음 쓰는 교육이라는 이 판은 참 결과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성과가 있다거나 보람이 있다거나 하는 동기부여를 받기 어렵다. 내가 나를 스스로 독려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후배선생님들 생각이 많이 난다. 나도 힘든데 후배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올해는 유난히 후배 교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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