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움과 함께 분주함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첫날이다. 나는 오늘 반가운 마음을 담은 핑크색 스웨터를 입었다. 그런데 오늘 3월인데도 빵가루같이 보슬보슬 고운 눈이 내렸다. 잠깐도 아니고 한참을 내렸다. 걸어서 출근하는 아침 8시부터 11시 정도까지 내렸다. ‘아무래도 올해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것 같아.’ 때를 지나 내리는 눈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보다도 일찍 교실에 온 아이들은 3명이 있었다. 아이들은 인사하고 번호와 자리를 확인한다. 물론 오늘도 다른 반에 가서 헤매던 아이는 1명 있었지만, 9시 전에 오기만 하면 된다. 이런 일은 별일이 아니다.
1교시는 학교 시업식 방송을 교실 TV를 통해 봤다. 개식사, 국민의례, 전출 교사 소개, 전입교사 소개, 복직 교사 소개, 그리고 각반 담임선생님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3학년 담임교사 소개까지 마치고, 다음 4학년 담임교사 소개하는데 천장에서 들리던 소리가 안 들린다. 방송실에 인터폰으로 안 들린다고 전화했지만 결국은 끝날 때까지 방송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교장선생님 입 모양만 바쁘게 움직이고, 교가 가사가 보일 때야 일어나서 적당히 비슷하게 따라 불렀다. 학교 방송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끔 있는데, 아무 일이 없는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은 소리가 작거나 안 들리는 일이다. 그래서 이날 오후에 스피커 테스트를 했는데 그때는 또 잘 됐다. 나도 전담 교사할 때 방송을 맡아봐서 알지만 학교 방송 장비들은 참 방송하기를 싫어하나 보다.
2교시는 담임인 나를 소개하고, 우리 반에서는 매일 도우미가 그날의 ‘학급 역사’를 쓴다고 했다. 그리고 각자 일기와 독서록을 쓰고, 1년 마칠 즈음에는 학급 역사와 글, 사진, 작품들을 넣어 문집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짝당 1권씩 문집을 나눠주고 보여줬다. 1999년 이후 쭉~ 만들어서 10여 권이 되었다며 샘플 문집들을 잔뜩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와 2000년이면 얼마나 오래된 거야?”라며 일기를 하나하나 읽어본다. “아 그렇게 자세히 보면 날 샙니다. 사물함 위에 1주일 정도 둘 테니까 천천히 보세요.” “어, 이거 ** 누나 아닌가?”“누가 ** 누나야? 너 누나가 **야?”“네 맞는 것 같아요.” 결국 난 올해도 제자의 동생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똑 닮았다. 글씨가 똑바른 것도, 추운 날씨에 목폴라를 입은 그 사랑 담긴 옷차림도. 반가웠다.
3교시에는 교과서를 나누어주었다. 이번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방학 중에야 교과서가 도착했기 때문에 첫날인 오늘 교과서를 나누어 주었다. 학년 자료실에 과목별로 쌓여있는 교과서를 아이들이 각각 1권씩 챙겨서 모두 13권을 가지고 교실로 왔다. 그리고 네임펜으로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생님 저 체육책을 안 가져와서 가져올게요.”, “선생님 저는 왜 11권이죠?” 이런 아이들이 꽤 많이 있다. 결국 각 교과서마다 단원을 모두 살펴보고, 6학년이었으면 이미 끝났을 이 모든 일은 결국 40분을 꽉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가녀린 여자아이는 “선생님 이 책 너무 무거워요.”라며 정말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지금 이 교과서들은 아이들을 무겁게 짓누른다. 너무 두껍고 화려하다.’ 난 혼자서 교과서에 대한 불평을 한다.
4교시는 급식지도 시간이었다. 이 4학년 아이들은 3학년 때까지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이제 교실 급식을 처음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난 “얘들아, 이건 배우면 고등학교 때까지도 필요한 거야.”라며 초집중을 요구했다. 사진자료가 들어 있는 PPT를 보여주고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설명을 한다. 일단 책상 위를 깨끗이 치우고, 손을 30초 이상 씻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급식당번 6명을 정하고, 각자가 1년간 2달 정도의 급식당번을 할 것이라고, 모두가 똑같은 기간을 할 거라고 말한다. 급식당번에게는 급식차를 가져와서 음식을 배치하고, 안전하게 나눠주고, 마치면 뒷정리까지 하는 것을 알려줬다. 아주 조용히 모두 줄 서서 급식차를 가져오는 곳에 가서 우리 반 급식차를 가져오는 걸 알려주고 교실로 왔다. 그리고 모두 손을 씻고 오면 내가 로션을 손등에 발라준다고 했다. 선생님이 손이 깨끗한지 확인한다고 하자 “선생님 저 아까 이름 쓰다가 네임펜이 너무 검게 많이 묻었어요. 어떡하죠?”라고 하는 아이들. “네임펜은 며칠 지나야 지워져요. 괜찮아요.” 급식당번에게는 나눠줄 음식의 양을 알려주고 로션을 발라준다. 다 마치면 급식당번이 각자 원하는 대로 음식을 담고 내가 마지막에 음식을 받는다. 맛있는 반찬은 모든 걸 다 먹은 사람만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빨리 먹은 사람도 기다렸다가 같이 정리할 거라고 했다. 먼저 먹은 사람은 사물함 정리를 하고 있으라고 한다. 그리고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다 먹고 나면 나는 알림장을 적는다. 아이들의 필기량이 너무 많지 않도록 필수적인 것만 적는다. 나머지는 학부모 알림 앱에 자세히 적으면 된다. 첫날이라 난 식사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음식 양을 조금 받기도 하고, 그것마저도 남겼다. 아이들의 첫날에 집중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스마트폰을 끄는 게 학교 규칙인데도 두세 명의 아이들 폰에서 소리가 난다. 한 명은 그나마 “선생님, 아빠에게 문자가 왔어요. 정문에서 기다리신대요.”라고 한다. “교실 전화로 1시 10분에 마치고 나갈 거라고 아빠에게 전화드려요.” “저 아빠 번호 모르는데요, 아 잠시만요.”라고 하면서 자기 폰에 저장된 번호를 보고 전화를 드린다.
내가 그동안 보던 4학년보다는 어리다고 해야 하나. 6, 7, 8세 때 코로나19 감염병을 겪은 아이들이라서 그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4학년인데 글씨 쓰기가 너무 힘이 없고, 집중력도 부족하다. 교실 한편에 있는 학습 준비물을 내게 아무 말도 없이 사용한다. 공기, 보드게임, 네임펜…. “이건 학습 준비물이지만,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사용해요.”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없다. 4명의 아이들은 교실에서 계속 뛰어다닌다. “뛰면 안 돼요.”라고 3번을 반복했을 때, “선생님 그럼 이렇게 놀면 되나요?”라고 하며 뛰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겪은 감염병 기간의 교육 공백. 그래서 이 아이들의 공백을 수용해 주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11살이지만 11살 같지 않은 이 아이들을 앞으로도 계속 누가 수용해 주겠는가. 경계, 질서가 좀 필요해 보이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그렇게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첫날이었다. 아이들은 오후 1:10에 수업을 마치고 “안녕히 계세요.”를 외치며 돌아갔다. 4학년이지만 글씨쓰기 지도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자료를 찾았고, 오늘 하루만 봐도 지도할 것들이 당장 생각나는 우리반을 위해 3월동안 지도할 것들을 여러 가지 적어보았다. 3월엔 보통 놀이를 통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던 나였지만, 올해는 놀이보다는 규칙이 우선 필요해 보인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서로를 위한 질서를 만들어가고, 그 위에 편안함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이상하게 오늘 첫날인데 전체 직원회의도, 학년 회의도 없었다. 그래서 덕분에 교실에서 차분히 할 일만을 하고 정시에 퇴근했다. 3월에는 할 일도 많고 바쁘긴 해도 절대 무리하면 안된다. 무리하면 병이 나고, 내가 결근하면 우리반도 옆반도 모두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첫날 가지는 마음은 '올해 무탈하게 내가 맡은 아이들을 1년간 잘 가르치자.'는 것이다. 내가 아픈 일도 없고, 아이들이 아픈 일도 없고, 아이들 가정도 모두 무탈하길 바랄 뿐이다.
'얘들아 반가워. 올 한해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