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3월에 하는 것 중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상담이다. 보통은 학부모 상담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나는 학생상담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3월이 시작되면, 학생상담을 위한 여러 자료를 수집한다.
가장 먼저는 학교에서 일괄 등사해서 나눠주는 ‘기초조사서’가 있다. 기초조사서에는 기본적으로 학생의 주민번호를 포함한 자세한 인적사항, 그리고 학부모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형제, 자매에 대해 기록하는 칸이 있다. 그리고 아랫부분엔 빈칸을 주며, 담임교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란이 있다. 이 내용들을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제목 그대로 아주 기초적인 자료로써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리고 주소의 경우 이전 방학에 종종 이사를 하기도 해서, 전산상 보이는 주소보다 이렇게 종이로 받는 것이 훨씬 정확하다. 또, 부모님의 이름이 한글이 아니라면 바로 다문화 가정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교사를 하던 초창기에는 기초조사서에 부모님 직업뿐 아니라 집이 자가인지 전세, 월세인지 쓰는 것도 있었다. 또 종교를 쓰는 것도 있었다. 한눈에 어떤 가정인지 볼 수 있는 아주 세세한 질문들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때문인지, 그런 것들은 없어졌다. 간략히 보자면 학생과 학부모의 인적 사항과 하고 싶은 말이 주 내용이다. 하고 싶은 말을 쓰는 칸에 채워오는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그냥 빈칸으로 내는 가정도 1/3 있고, 간략하게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게 해 주세요.’ 정도만 적는 가정도 많다. 이 조사서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가정에서는 정말 자세한 내용을 적기도 한다. 가정 상황이나, 아이가 아팠던 병력, 학교에서 주의해 주시길 바라는 점 등 많이 적는 가정에서는 뒷면까지 쓰기도 한다. 어쨌든 기초조사서에 적힌 내용은 가정과의 첫 소통이기에 다 읽고, 항상 잘 보관해서 참고한다.
다음으로 나는 ‘선생님에게 알려드리는 나의 이야기’라고 다양한 질문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어 쓰게 한다. 좋아하는 과목, 좋아하는 친구, 싫어하는 친구, 가족과 행복했던 기억, 선생님에게 바라는 점…. 정말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질문들이다. 아이마다 자세히 기록하는 아이도 있지만, 심드렁하게 대충 적는 아이도 있다. 그런 기록하는 습관 자체도 아이에 대한 정보가 될 수 있다.
또 나는 두 가지 전문가적 검사지를 활용한다. 하나는 문장완성검사, 다른 하나는 자존감 척도 검사이다.
문장완성검사는 문장 앞부분만 제시하면 아이가 뒷부분을 완성하는 것인데, 아이마다 정말 답이 너무나 다르다. 긍정어가 많은 아이도 있지만, 반대인 아이도 있고, 깨알 같은 글씨로 자세히 쓰는 아이도 있지만 ‘없음’을 자꾸 쓰는 아이도 있다. 3월에 모으는 여러 자료 중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하나의 자료를 꼽으라면 난 이 ‘문장완성검사’를 꼽는다. 이 한 장으로 아이의 마음, 가족에 대한 생각, 친구들에 대한 생각, 자신의 꿈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개방된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자존감 척도 검사는, 내가 2012년경부터 ‘자존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책도 읽고, 연구도 하고, 인성교육 실천 사례 연구대회도 준비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매해 가르치는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자존감’에 관련된 활동은 늘 1년 내내 하는 편이다. 그 시작은 현재 아이들의 자존감을 검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30가지 정도의 문항을 5가지 척도로 표시해서 내면 나는 역문항이 섞인 그 점수들을 계산해서 기록한다. 56점 이하는 낮음, 126점 이상이면 높음이다. 지난번 검사한 걸 오늘 점수화해 보니, 올해 아이들 중에는 다행히 낮음 단계는 없고 높음 단계는 8명 정도 있다. 상당히 많은 편이다. 요즘 워낙 가정에서 귀하게 키우고, 배운 대로 키우다 보니 자존감은 많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존감 척도 검사를 하면, 아이가 자신과 가족,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네 가지 자료를 두고, 한 명씩 상담을 한다. 교실 바로 옆에 방과 후 교실이나 상담실 등 빈 교실이 있으면 제일 좋은데 올해는 없다. 그래서 좀 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상담을 한다. 교실 내 자리 옆에 나지막한 소파 하나를 두고, 아이를 앉게 한다. 그리고 먼저는 요즘 잘 지내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묻는다. 그리고 이후에는 자료들을 하나씩 보며 미리 표시해 둔 것들 위주로 이야기를 나눈다. 조용할수록 더 좋은데, 올해는 그럴 공간이 없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가 제일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 마치고 일정이 꽉 차 있다.
오늘은 두 명 상담을 했다. 한 명은 똘똘하고 발표도 잘하는 여학생이다. 엄마가 **중을 가라고 하시면서 영어공부를 엄청 시키신다고 했다. 가족들이 다 좋기는 하지만, 자기가 말하는데 엄마가 “잠시만~.”이라고 하시고는 아예 다시는 이야기를 잇지 못할 때 속상하다고 했다. 엄마가 자기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있어?”라고 물으니 “한 달에 두 번 정도요?”라고 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많은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다. 가정에서 주는 ‘안정감’이 가장 중요한 거름인 걸 느낀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아이도, 감정이 흔들리면 공부를 할 수가 없다. 공부는 집중력인데, 부모님의 불화나 지나친 기대로 무너지는 아이들도 많다. 이 아이도 부모님이 아이의 정서를 좀 살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다른 것들은 특별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다른 학생은 엄마가 나라 이름이 생소한 어떤 외국분이시다. 기초조사서에 알 수 없는 언어가 있었다. 그래서 들어보니, 아빠가 일하러 가셨다가 엄마를 만나서 결혼하셨고 그래서 이 아이가 6살 때까지 그 나라에 살았다고 한다. 그때 한국으로 와서 입학했고, 2학년 때는 전학까지 와서 좀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전학을 와서 2년 정도 있으니 지금은 편하다고 했다. 정말 세상 ‘때’라는 게 보인다면, 그런 게 하나도 안 묻었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다. 모든 질문에 긍정적이다. 문장완성검사에서 ‘남자애들은 다 착하다’ 이런 답은 정말 드문 답이다. 약속 안 지키는 아이가 제일 싫다는 아이였다. “선생님에게 바라는 점은 없을까?”“지금처럼만 해주세요.”“아, 그래. 지금처럼은 계속할 수 있지.” 서로 웃으며 상담을 마쳤다.
보통은 몇 년 지난 갈등사건을 꺼내기 마련인데 오늘은 두 명 다 그런 일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상담을 마치니 마음이 가벼웠다. 한 때는 상담사 자격증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한데,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많지만, 이렇게 개별적으로 만나 대화 나누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각자를 만나지 않으면, 교실은 목소리 큰 아이들, 나서는 아이들의 의견으로만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실은 이렇게 조용히, 성실히, 협조하는 아이들이 지켜나간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항상 눈에 띄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돌려 이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내가 읽은 책 ‘훌륭한 교사는 무엇이 다른가’에서 ‘잘하는 아이들이 편한 교실, 규칙’을 만들도록 권했는데, 내가 그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학급 운영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아이를 지도하는데 집중했던 나는 그날로 바뀌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기 전에 상담시간을 학기별로 모든 학생들과 갖고 조용히, 묵묵히, 친구를 도우며 잘하고 있는 아이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상당히 많은 정보도 얻고 해결책도 찾아진다. 그러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같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아왔다.
학생 상담은 선생님이 더 시간을 내야 하고 분명 추가적인 일이지만, 학급 운영 1년을 생각한다면 모든 교사분들께 강력 추천하고 싶다. 선생님과 둘만의 대화시간을 가지면 아이들은 놀랄 만큼 깊고 슬픈, 오래된 이야기까지 모두 꺼내놓는다. 그 진솔함에, 가끔은 아픔에 나는 그 아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교실은 좀 더 편안하고 믿음이 생긴다. 아이들은 항상 누군가가 자기들의 말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눈빛이다. 그리고 매일 만나는 선생님이 그래 주신다면 아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될 것이다. 모두가 편안한 교실의 시작, 학생상담을 적극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