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우리 반은 매달 1일에 짝을 바꾼다. 나는 아이스크림막대에 1~12 번호를 적어서 뽑기 주머니에 넣고 아이들이 손을 넣어 뽑도록 한다. 책상마다 1~12 번호가 있고, 한 달은 남자아이가 먼저 뽑고 한 달은 여자아이가 먼저 뽑아서 결정한다. 결국 같은 책상 번호를 뽑은 아이들끼리 짝이 되는 것이다. 이날이 되면 아이들은 책가방을 메고, 책상 서랍 속에 있던 짐도 모두 들고, 옆에 걸려있던 미니빗자루 세트도 들고 한 줄로 서서 아이스크림막대를 하나씩 뽑는다. 조용히 하라고 해도 누구와 짝이 될지 애들과 얘기하느라 조용할 수 없는 아이들이다. 막대를 뽑아서 짝이 확인되면 한 명도 예외 없이 소리를 지른다. "아, 정말." "잉.." "선생님 저 쟤랑 짝 했었어요." 이런 반응들. 우리 반은 짝이 한 번 되면 다시는 되지 않도록 다시 뽑게 해 준다. 그래서 11월, 12월에는 짝이 안 됐던 아이를 찾아 메모를 해가며 아주 힘겹게 짝을 정해야 한다. 우리 반은 여자 11명, 남자 12명이라 남자아이 한 명은 혼자 앉게 되는데 남자아이들은 그걸 엄청 좋아한다.
하지만 3월부터 이렇게 짝을 정하지는 않는다. 요즘 책상은 개별 책상이라 3월에는 개별책상으로 있도록, 그러니까 짝이 없이 혼자씩 앉도록 한다. 그 이유는, 3월 첫날부터 짝으로 인해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나름의 배려다. 3월 만은 짝 없이 혼자서 새로운 학년과 교실에 적응하는 게 좋겠다는 고민 끝에 나온 방법이다. 그렇게 한 달 동안 혼자만의 적응을 마치면 4월부터 짝을 정한다. 보통 남녀 짝을 정한다. 아이들은 항상 남남/여여끼리 짝을 하게 해달라고 조른다. 그래서 어린이날 바로 앞이나 체육대회처럼 다소 들뜬 날 좋아하는 친구끼리 앉도록 해보기도 한다. 올해도 한 번은 선착순으로 와서 자리를 정하기를 했었다. 이런 날은 수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아이들은 너무 들떠서 데시벨이 올라가고, 선생님은 안중에도 없이 옆 친구와 얘기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래서 적당한 다름과 경계가 있는 남녀 간 짝이 수업을 위해서는 안정적 조합이라고 여긴다.
내가 어릴 때는 두 명의 책상이 붙어있는 나무책상이었다. 가끔 책상 모서리 가시에 손가락이 찔렸던 기억이 나고 내 옷이 긁히기도 했다. 누군가 앙숙이었던 이전 책상의 주인들은 38선이라 불리는 가운데 금을 깊게 골이 보이게 파놓아서 책상 가운데가 정확히 어디인지 항상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넘어오면 내 거다."라며 째려보는 짝 아이의 멘트는 늘 반복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 책상은 1인용이고, 반들반들하고, 모서리는 부드럽게 마감되어 있고, 연필이 굴러가지 않도록 홈도 있다. 서랍도 가운데에 살짝 올라온 부분이 있어 왼쪽과 오른쪽을 잘 나눌 수 있게 되어있다. 책상 위에 무언가 묻어도 잘 닦아내면 말끔해지는 재질이다.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다 같이 고른 것이니 얼마나 좋은 걸로 고르는지 모른다.
짝이 되면 그 둘은 좋으나 싫으나 얘기하게 되고, 안 가져온 건 빌리게 되고, 안 오면 짝이 청소도 해주는 그런 최소 공동체가 된다. 좋건 싫건간에 한 달은 무조건 짝이라 인내심을 기르게 된다. 서로 좋아하던 아이끼리 짝이 되면 말은 안 해도 표정이 싱글벙글하다. 짝사랑하던 남자아이랑 만난 아이는 입이 정말 귀에 걸린다. 하지만 개구쟁이 짝을 만난 아이는 한숨부터 쉬면서 그 한 달을 걱정한다. 그러면 중간중간 물어본다. "어때, **가 많이 힘들게 하니?""빨리 다음 달이 돼서 짝 바꾸면 좋겠어요. 다음엔 다시 안 만나니 그게 다행이에요." 짝으로 인한 불평과 가끔은 학부모 민원이 있다 보니 아예 1년 내내 개별책상으로만 두는 선생님도 봤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짝으로 인해 구체적인 민원을 경험한 선생님은 이후에 해가 바뀌었다고 해도 다시는 짝을 맺지 않겠다는 본인의 룰이 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여러분이 학교에 오는 이유는 바로 '친구와 함께 공부하기 위해서'예요.""혼자 배우려면 유튜브도 있고 온라인학습도 있고, 책과 EBS만 봐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어요. 하지만 거기엔 친구가 없죠. 학교에서 친구와 함께 공부하면 물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러면서 함께 지내는 경험을 하고 극복해 가며 커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꼭 학교에 와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와 함께 지내는 가장 고정된 방법으로 짝을 지어 앉도록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주 예전에 내가 첫해에 46명의 아이들을 가르쳤고, 내가 자랄 땐 더 많은 학생이 이 똑같은 면적 교실에 있었으니 짝끼리 앉지 않으면 자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교육적 목적보다도 아이들을 모두 앉히기 위한 방법으로 '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반 23명, 개인별로 앉아도 충분히 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짝이 있을 때 배우는 것들이 있다. 이곳을 나가면 거의 다 혼자이지 않은가.
전에 어느 학부모님은 내게 상담을 오셨다. "선생님, 작년에 아이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올해 선생님은 짝도 자리도 한 학기 동안 한 번도 안 바꾸셔서 어쩌죠?" 짝을 너무 오랫동안 바꾸지 않으면 아이들이 힘들다. 우리 반 한 달이라는 기간을 참는 것도 버거워하는데 말이다. 그분이 나이 많은 남자 동학년 선생님이셔서 나는 동학년 회의 시 자연스레 우리 반은 한 달에 한번 자리 바꾼다는 말을 하고 이런저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분이 다행히도 2학기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바꾸셨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성장기고 시력이 한창 변할 때라 자리도 수시로 바꾸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반은 짝은 한 달에 한 번만 바꾸지만, 자리는 일주일마다 한 번씩 바꾼다. 규칙은 오른쪽으로 1 분단 이동하고, 뒤로 한 칸씩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월요일마다 ㄱ자 모양으로 바꾸는 것이다. 일주일마다 서랍 속 짐을 옮기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자리를 바꾸어야 아이들 시력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모둠원도 바뀌고, 아이들도 다소 숨 쉴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짝을 바꾸는 건 시간도 내 에너지도 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는 능숙해져서 20분이면 마치긴 하지만, 그 20분을 내기 위해서 하루는 어쩔 수 없이 아침자습시간을 어수선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짝 바꾸는 일처럼 교실 일상의 작은 것도 교육적 의도와 고민 없이 이뤄지는 건 없다. 그리고 또 그래야만 후회되는 일이 없다. 난 생각을 많이 하면 살이 빠지는데 그래서 살이 못 찌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