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쉽지
드디어 190일간의 만남을 마치는 우리, 4학년 종업식.
요즘은 교실마다 있는 TV로 방송 종업식을 한다. 교장선생님의 인사는 매우 짧다.
우리 교장선생님은 가장 먼저 '안전'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정말 짧은 시간에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다 하시는 능력이 있으시다. 아마도 많이 생각하고 오셔서겠지? 교장선생님의 무게에 맞는 언행과 신중함, 본받고 싶은 점이다.
아이들과 여유 있는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데, 어느 반이 학습준비물로 내년 달력 꾸미기를 사고는 결국 못했다고 연락이 왔다. 다른 반이 할 거면 하시라고. 그래서 '이거 오늘 안 하면 그냥 버려지겠다. 2026년 써진 달력이니 방학 동안 누가 저걸 쓰겠어.' 하는 알뜰 정신이 발동되어 결국은 우리 반 아이들과 하게 됐다.
8절 도화지 크기에 위에는 그림을 꾸미고 아래엔 달력 날짜가 인쇄된 것이었다. 관련된 영상을 보고 달력 만드는 데 결국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종업식엔 아이들은 생활통지표를 받는다. 선생님이 아이가 각 과목을 어떻게 배웠는지 또는 부족한지, 그리고 보통 행발이라고 부르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적어 넣은 통지표. 그것도 그것이지만 아이들은 내년에 몇 반이 되는지, 친한 친구랑 같은 반이 되는지가 가장 궁금하다. 그래서 우리 학년 선생님들은 통일했다.
"종업식날, 통지표는 맨 마지막 시간에 나눠주죠. 안 그러면 1교시부터 복도가 난리 날 거예요."
경험상 그렇다. 누가 몇 반인지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아이들 마음은 난리가 난다. 역시 경험 많은 선생님들의 노련함은 순간순간 빛을 발한다.
그래서 마지막 4교시 때 학생이 한 명씩 나오면 통지표를 주었다. 그리고 "**는 참 친구들을 잘 도와줘서 고마웠어.", "**는 그때 러브버그 잘 잡아줘서 고마웠어." 이렇게 그 아이만의 1년을 피드백해 주었다. 아이들은 담담해 보이는데 나 혼자 헤어짐의 아쉬움을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통지표에 적힌 반배정을 보며 환호를 하기도 하고 절망을 하기도 하는 그 난리가 10분 정도 지속된 후, 나는 정리를 해 준다.
"자, 5학년 가반 일어나세요."
"**, **, ** 3명입니다."
"나반 일어나세요."
"**, **, **, ** 4명입니다."...
이렇게 가, 나, 다, 라, 마, 바, 사 7개 반별로 같은 반 친구가 누구인지 확인시켜 준다. 그래야 3월 첫날 교실 못 찾는 아이가 있을 때 아이들끼리 기억하고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상과 사물함 문을 열어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시키고 인사한다.
"선생님 1년 동안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에는 말도 잘 않던 남자아이가 와서 그렇게 인사를 한다.
어머님이 당부하셨을까, 너무 점잖게 인사를 한다.
아이들은 여러 모양으로 인사를 하고 교실 문을 나선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5학년 돼도 찾아올게요."
"선생님 안녕!"
'그래, 모두 안녕.'
겨울방학 동안 학교에 나와 칼라프린터에 인쇄를 눌러 3부씩 인쇄하기를 9차례, 아홉 번 학교에 나와서 인쇄된 걸 빼고 새로 종이를 넣고 인쇄버튼 누르기를 했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너무 추워서 히터를 틀어도 손이 곱았다. 하지만 프린터에 들어가는 종이가 한계가 있어서 하루 3부씩만 인쇄가 가능하니 어쩌겠나. 내년엔 문집 지면을 줄이거나 그만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3월에 나눠줄 마지막 선물도 마무리됐다. 이제 모든 게 마쳤다.
문집과 우리 반 기사가 나왔던 신문, 신문사에서 보내준 티켓을 각 1장씩 넣어 누런 봉투에 담아두었다. 개학식은 너무 바쁘니, 그다음 날 중간놀이 시간에 오도록 연락을 보냈다.
가끔은 오래된 제자와 연락이 되기도 한다. 이 학교에서도 3년 전 제자가 졸업식날 3명이 다녀갔다.
한 명은 내게 편지를 주며 답장을 달라고 하고는 갔다. 답장은 이미 썼는데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모른다, 어떻게 줘야 할까?
다른 한 명은 졸업식 며칠 전부터 엄마에게 '3학년때 선생님 꽃다발도 만들어 주세요.'라고 했단다. 그래서 꽃을 들고 왔다. 난 아이들 앞에서 인사도 시키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이 형 1학기 전교 회장이었어. 알지?"
"알아요~."
"동생들에게 한마디 해줘."
나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큰 이 아이는 회장님 연설하듯 잘 지내라는 말을 멋지게 했다.
다른 아이도 엄마와 함께 인사 와서 사진을 찍었다.
"이 형은 4학년때 골든벨 우승했던 형이야." 말해주었다. 아이는 웃고 있지만 어머니 눈에는 눈물이 글썽인다.
"산생님 감사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헤어지면서 모든 게 끝난다. 최근에는 서로 연락처를 공유하지도 않으니, 나도 아이들에게 연락할 수 없고, 아이들도 내게 연락할 수 없다.
지금 연락하는 오래전 제자들은 내 휴대전화 번호도 알고 메일 주소도 알고 카카오톡 친구가 되어 있기에 연락이 가능한 것이다. 2011학년도 제자들까지만 그렇게 소통이 가능하다.
내가 올해 가르친 아이들이 내년에 5학년이 되면, 올해보다 더 잘하기를, 내가 가르친 것들을 가끔이라도 기억하기를 바라본다.
"얘들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혼자만의 이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