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 1인 1역

책임감과 성실성을 배울 거라 기대해

by 화원

교실 크기 기준은 잘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초등학교 교실, 이 글을 기회삼아 우리 교실 크기를 줄자로 재봤다. 3m 줄자로 여러 번 재보니 앞에서 뒤가 8m 26cm, 양 옆으로는 8m 54cm다. 대략 가로든 세로든 9걸음 반 정도 된다. 앞뒤가 긴 줄 알았더니 폭이 더 넓네? 맨날 사는 교실도 잘 살펴보지 못하고 살았다는 당황이 찾아온다. 그런데 같은 학교라고 해도 교실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조금이라도 넓은 교실을 배정받으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여유공간이 많아 좋았다.


이렇게 작은 교실에서 1인 1역 나눌 게 뭐가 있을까 싶다. 올해 기준으로 보면 학생 23명.

예전엔 교실 쓸기, 닦기도 1인 1역으로 나눴었는데 요즘엔 방과 후에 아이들이 다 학원 가느라 바쁘고 그래서 남아서 무언가를 시킬 수가 없다. 그리고 학생수도 적어서 그걸 배정할 인원도 부족하다. 그래서 요즘엔 미니 빗자루세트를 책상 옆에 걸어두고 수업 마칠 때 자기 자리만 간단히 쓸고 간다.

선생님들 중 어떤 분은 "이런 거 애들 시키고 검사하고 그러느니 내가 하는 게 나아."라고 하시면서 아이들 청소를 아예 안 시키시고 아이들이 다 간 후에 직접 빗자루 들고 걸레 들고 청소하시는 분도 있다.


청소, 깨끗함을 기준으로만 본다면 아이들을 시키느니 내가 하는 게 낫다는 그 선생님의 마음도 충분히 공감이 된다. 1달 기준으로 역할을 바꾸는데 그걸 매달 설명하고 검사하자면 선생님이 지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건 작은 것 같아도 다 교육적 목적이 있다. 내가 사는 교실의 한 가지를 맡아 청소하거나 관리하는 일, 그 작은 걸 해낼 때의 성취감과 배움이 있는 것이다.

우리 반은 이렇게 운영하고 있다. 숫자는 몇 명이 하는지를 적은 것이다.

순서대로 하나씩 설명하자면,

1) 칠판도우미는 수업 후 칠판에 적힌 걸 지우고 정리한다. 요즘은 화이트보드라서 먼지가 날리지 않고, TV로 보는 수업도 많아서 지워야 할 게 많지는 않다.

2~3) 교과서 도우미는 수업마다의 교과서를 진도에 맞게 펴고 치우고 하는 것이다. 2명이 하며 둘이서 요일이나 시간을 나눠서 한다.

4~5) 질서 도우미는 컴퓨터실이나 영어실, 강당 등 다른 곳으로 줄 서서 이동할 때 맨 앞 1명, 맨 뒤 1명이 서서 간다. 그래서 질서를 잘 지키도록 한다. 교사가 이동시 동행하지만 학생들 간의 역할을 주는 것이다.

6) 화분 물 주기는 말 그대로 교실에 있는 작은 화분 5개에 물을 주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금요일에 물을 준다. 참고로 교실에서 식물 키우기는 정말 어렵다. 햇빛이 잘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5년 전에 화분 10개를 샀다가 지금 살아남은 건 홍콩야자, 테이블야자 4개 정도이다. 이것들은 5년간 화분을 나누기도 할 정도로 교실에서도 잘 자란다.

7) 잔반 버릴 시간 안내도 있다. 우린 교실에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늘 점심시간이 북적인다. 빨리 먹은 아이는 전반을 빨리 (국통에) 버리고 싶어 하는데, 그럴 경우 국을 더 먹고 싶은 아이는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배식을 시작하고 약 25분 후부터 버리기로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규칙이 있어도 "선생님 지금 버리면 안 돼요?"라고 몇 명씩이나 물어본다. 그래서 일단 손목시계가 있는 학생이 그걸 보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얘들아 버려도 돼."라고 말해주는 역할이 생겼다.

8) 칠판 위에는 *월 *일 *요일이 있고 그 숫자나 글자를 바꾸는 역할이 있다. 집에 가기 전에 다음날 것으로 미리 바꾸어야 한다. 매우 중요하다.

9) 도우미, 급식 1등 바꾸기도 마찬가지로 칠판에 있는 것인데, 학생 번호순으로 이름종이가 뭉치로 되어있어서 집에 가기 전에 다음날을 위해 다음 번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다.

10~15) 급식도우미는 교실 급식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사람이다. 이건 가장 난도가 있기에 모든 학생이 똑같은 일수를 하도록 배정한다. 1인 1역 중 급식도우미를 먼저 정하고 나머지 사람이 다른 역할을 정한다. 급식도우미는 12:20 4교시 수업이 마치면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있는 급식차를 가지고 와서 음식을 올려 배식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줄을 서면 배식을 하고, 식사를 다 마친 후 1시부터는 잔반을 국통에 모두 모으고 차를 정리해서 갖다 놓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이나 국물을 물티슈와 대걸레로 정리한다. 정리는 매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이들이 서로 편한 요일을 정해서 나눈다.

16) 수건 담당은 매일 아이들이 가져온 수건(일반적인 세면타올 크기)을 교실 뒷문 쪽에 집게로 건다. 그리고 전날 사용한 건 수건은 그 주인에게 배달한다. 우리 반은 감염병이 있는 때만 빼고는 공용 수건을 사용한다.

17~19) 분리배출, 쓰레기봉투 버리기는 말 그대로다. 아이들은 이 역할을 좋아해서 서로 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건 일종의 외출이 가능하기 때문인 것 같다. 교실에선 주로 종이류가 배출되는데 택배 상자는 테이프를 뜯어내고 납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학교에 있는 분리배출 장소에 갖다 버리고 돌아온다. 쉬는 시간 내에 잘 다녀오는 경우는 드물고 이런저런 이유로 조금씩 늦는 경향이 있다.

20) 물도우미는 선생님의 1.5리터 물통에 월, 수, 금 물을 채우는 것이다. 읽는 분 입장에서는 선생님의 물통을 왜 학생이 채우느냐 반감이 들 수도 있는데, 초등학교 교실에선 선생님이 최대한 오래 교실을 지키는 게 안전의 지름길이다. 선생님의 부재가 개구쟁이 아이들에겐 무슨 기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21) 환기도우미는 교실 창문을 아침에 열었다가 닫는 것이다. 겨울엔 15분이고 여름엔 30분이고 계절마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이게 우리 반 건강을 지키는 아주 중요한 임무다.

22) 연필깎이 통 비우기 역할도 있다. 우리 교실엔 연필깎이가 2개 있는데 우리 반은 샤프 쓰기가 금지라 연필을 많이 쓰기에 일주일에 1~2번 비우면 된다.

23) 결석한 아이의 1인 1 역하기도 있다. 누군가 결석하면 그 걸 대신해 주는 것이다. 결석생이 없을 때야 좋지만 요즘은 체험학습 가는 아이가 많아 결석도 많은 편이다. 아이들이 이 역할을 만들자고 해서 만들었는데, 맡은 아이가 결석생이 누구고 그 아이의 1인 1역이 뭔지 잘 모르기도 하여 애매한 역할이었다^^


1인 1역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하는 게 일이다. 매달 바꾸는데 우리 반은 지난달을 기준으로 성실히 했던 사람부터 원하는 걸 정한다. 지난달 1인 1역 한 걸 표시해서 기록표가 있고 그 기록표를 기준으로 정한다. 그런데 아이들 성향상 고르는 역할이 다르다. 모두가 좋아하거나 모두가 싫어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활발한 아이는 뭔가 나가는 걸 좋아하고, 교실에만 있는 아이는 교실에서 하는 걸 좋아하고, 급식당번은 하기가 힘들긴 하지만 배식 후 맨 마지막으로 받으면서 맛있는 걸(케이크, 핫도그, 과일, 치킨 등) 더 받을 기회가 있다 보니 좋아하면서 한다. 그래서 되도록은 원하는 순으로 하고 겹치면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초등학교에선 가위바위보를 잘하면 좋을 때가 많다.


우리 반은 이렇게 하지만, 내 딸아이의 경우 중학교 때 심하게 불만이 있었다. 중학교에서도 급식당번이 제일 어려운 건데 1년 내내 했던 것이다. 딸이 학교 얘기를 자주 하진 않지만 그건 내가 보기에도 너무 심했다. 선생님이 어떤 이유로 그러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 중 하나였다. 아이가 한번 말씀드렸는데도 바뀌지 않았으니 아이는 그때의 선생님을 정말 싫어했다. 1인 1역을 통해 아이들이 소모되는 게 아니고 배우고 봉사하는 기쁨이 있길 바란다. 학교는 작은 사회가 맞다. 작지만 역할을 주고 해보는 다양한 경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참고로 나는 올해 집에서 안쓰는 로봇청소기를 교실로 가져왔다. 아이들이 쓸고 간 자리도 더 치워야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살짝 덜 된 청소를 보고도 아이들을 웃으며 보낼 수 있어서 아주 쓸모있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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