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 학급문집

1년 추억의 기록

by 화원

1999년이 나의 첫 발령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담임을 맡았던 건 올해까지 17년이다. 나머지 기간은 전담교사 2년 반, 대학원 파견연수 2년, 육아휴직 4년, 병휴직 반년, 연구년 1년 등 다양하게 지나갔다. 초등학교에선 담임이 기본값이지만 체력도 상황도 모두 맞아야 가능하다. 교사가 그 해에 출산을 하거나, 수술 등 치료가 계획되어 있어서 공백이 있다면 학교에서 보통은 담임을 주지 않는다. 암처럼 극심한 질병의 수술 후 치료 중에도 그렇다. 그렇게 상황이 맞아 담임이 된 선생님은 그 1년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으로 아파도, 힘들어도 끝까지 잘 마치고 싶어 한다. 얼마 전 김경일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교사 대상 연수라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 시대에 우리나라처럼 열심히 가르쳐서 교육의 공백이 없는 나라는 없었다며 선생님들의 노고를 기억해 주셨다. '맞아 그때 정말 어느 때보다 힘들었지. 그때 교실은 체온 재는 보건소였고, 그 와중에 식사를 위해 책상마다 가림판을 사대는 준비도 하는 철저한 식당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위해 PPT로 자료를 만들고 그걸 또 영상으로 만드는 것, 줌으로 수업하는 것 등 모든 걸 새로 배우고 긴장했던 그 해.' 지나고 나서 잊을 뻔했는데, 교수님의 그 몇 마디를 들으며 그때가 다시 떠올랐고, 그 시절의 교사들이 고생해 준 덕분에 교육 공백이 거의 없었다며 고맙다고 기억해 주시는 분이 이렇게 한 분이라도 있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령 첫해부터 나는 학급문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담임을 맡은 해엔 항상 아이들의 글과 사진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3년은 못 만들었는데 내가 첫째 낳던 2002년이랑 코로나 19 감염병이 유행이던 2020학년도, 그리고 올해 문집이 아직이라 총 13권이 위의 사진처럼 있(첫해 문집은 여유가 달랑 1권이라 깊이 넣어두어 사진에 못 담았다.). 지금 돌아보니 나는 그 옛날부터 글쓰기, 책 만들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좋은 학급문집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그 1년 학급운영이 잘 되어야 한다. 학급에서 수업도, 다양한 이벤트도, 선생님의 사랑과 격려도 많아야만 학급문집이 잘 나온다. 그래서라도 나는 학급 운영을 위해 무척이나 애썼다. 조성진이나 임윤찬의 수상을 축하하며 피아노 연주를 함께 보기도 하고,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받으면 피겨 영상을 보기도 했다. 첫 해 아이들과는 안산에서 종합운동장까지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엄마가 못키우게 하신다며 데려온 토끼를 키우기도 했고, 참새가 교실에 들어오면 며칠 함께 있기도 했다. 생일파티를 하면서 장기자랑 시간을 주어 아이들의 보여주기 본능을 충족시켜 주고, 일기를 지도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했다. 아픈 아이 병문안도 가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경우엔 장례식장에 가기도 했다. 한글을 모르는 1학년 아이는 남겨서 가르치기도 했고, 우리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학기에 한 번씩은 개별 학생상담을 해서 아이들의 고민을 듣고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고, 학부모 상담은 모두 하시도록 안내하여 빠짐없이 학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도우미나 1인 1역, 짝 등에 대해서는 되도록이면 공평하게 돌아가며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항상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유난히도 힘들고, 가르치려던 대로 되지 않는 해도 있었다.


작년까지는 글을 모으고 내가 편집해서 문집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일기 각자 3편, 그리고 도우미가 매일 쓰는 '학급역사', 국어시간에 쓴 시나 주장하는 글, 학부모님의 편지...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담아 앙케트를 해서 넣는다. '우리 선생님은?'이라는 겁 없는 질문을 넣었던 적도 있는데 이게 나중에 보면 정말 재밌다. 또 친구들에게 하는 마지막 인사도 넣는다.

아이들이 워딩을 할 때도 있고, 내가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보통 문집도 한 해가 마치는 12월에 하고, 생기부 입력도 그즈음에 하다 보니 학교에서 모든 걸 마치는 건 어려웠다. 안 그래도 바쁜 12월에 문집까지 하느라고 늘 바쁘고 힘들고, 집에 와서 밤새 한글 프로그램과 씨름하던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일은 역시 편집이었다. 일단 기본적인 오탈자 확인하고, 중간중간엔 귀여운 그림을 넣어준다. 인쇄비 절약을 위해 일단 세로로 단나누기를 한다. 그렇게 하면 가로로 짧아지니 읽기에도 훨씬 편하고, 같은 지면에 더 많은 양의 글이 들어간다. 글은 보통 아이들 출석번호대로 넣고, 아이들과의 사진도 넣는다. 장르가 바뀔 때마다 상단에 안내문을 넣으면 보기가 좋다. 그리고 최종에는 쪽번호를 넣어서 마친다. 아이들 인원수에 내가 소장할 용도로 3~5권을 추가로 인쇄한다. 예산상 2022년만 칼라 문집이었고 나머지는 항상 흑백인채(2022년 11월에는 내가 실신하며 심장수술을 받느라고 학부모님이 문집 편집과 인쇄를 맡아주셨다.) 표지 사진만 칼라로 했다. 이렇게 해서 보통 문집 1 권당 3000~5000원가량 인쇄비가 필요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실에서 알뜰시장을 해서 판매금으로 문집비를 걷곤 했는데 최근에는 학생들에게 돈 걷는 일 있으면 안 된다고 하셔서 그냥 자체 인쇄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올해는 캔바 프로그램으로 문집 만들기를 강의하는 선생님의 연수를 듣고 바로 적용해 보고 있다. 학생들에게 돈을 걷지 않으면서, 교사는 이전보다는 수월하고 아이들은 자기가 자기 글을 편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윈윈의 방법이다. 앞으로는 캔바로 PDF 작성하고, 학교에서 인쇄해서 링제본 하는 방법으로 유지될 것 같다. 예산도 교사 노동력도 줄여주는 방법이라 학급문집 만드는 분이 있다면 이 방법을 추천드린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왜 이 힘든 일을 하고 있나?' 생각해 보면 이건 추억 기념품이라서다. 2년 전인가 6학년 때 가르친 제자를 12년 만에 만났던 적이 있다. 그전에 만나면 내가 피자를 사주곤 했는데 그 해엔 20대 대학생들이 되어서 자기들이 나에게 삼겹살을 사준 최초의 만남이었다. '다 컸네.' 그리고 그날 이야기의 소재는 문집이었다. 내가 미리 준비해 가긴 했지만 대화는 아이들에게서 먼저 시작됐다. "선생님 저 그 문집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그렇게 몇 마디 오갈 때 내가 문집을 꺼내자 아이들이 한참을 보며 소곤소곤 댔다. 옆에서 보는 내 마음이 몽글몽글 핑크빛이었다. '그래,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추억 기념품이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1999년 첫 학급문집부터 가끔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얘는 커서 뭘 하고 있을까?' 교사로서 나의 한 해 한 해를 기억해 주는 학급문집, 제자를 만나기라도 하면 제일 먼저 준비하는 나의 추억, 우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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