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 우리 반이 신문에 나왔어요

글은 연결하는 힘이 있네요

by 화원

세 달 전, 우리 반에서 아이들과 읽는 어린이신문에 대한 글을 브런치북 <초등교실, 1년 보고서-1>에 적었다. 4달간 교실에서 아이들이 매일 신문을 읽고 배움 공책에 적는 우리 반의 풍경을 적은 글이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된 글 링크 참고하세요~->) 30화 10월: 1. 어린이신문


이 글은 흘러 흘러가서 신문사 본사에까지 전해졌고, 어느 날 편집장님께 연락이 왔다.


"최** 선생님이신가요?"


어린이신문에 관한 글을 읽고 우리 반 취재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기쁘게 수락했다. 아이들에게도 알렸다.


"얘들아, 선생님 어제 전화를 받았는데~ 어린이조선일보사에서 우리 반을 취재하러 오신대. 12월 29일에 취재하러 기자분이 오실 거고, 1월에 신문에 실린대."

"네??? 정말요?"

교실은 난리가 났다.


"선생님 저 그날 화장할 거예요."

"그러지 마~ 그냥이 더 이뻐. 옷만 단정히 입자."

"선생님, 우리 엄마 소원이 저나 동생이 TV나 신문에 나오는 건데요 벌써 이루겠어요."

"아 정말? 너무 좋겠네!"

"저 배움 공책 더 많이 써도 되죠? 그럼 인터뷰해 주실까요?"

"그래, 노력한 건 티가 나는 법이니까. 도전~!"


취재 일주일 전쯤에 기자님이 이메일로 학생용과 교사용 인터뷰 질문 목록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내 것은 미리 작성해서 보내드리고, 아이들에겐 질문을 모두 적어 복사해 주고 각자의 답을 적도록 했다. 그리고 그 종이 맨 위에는 O, X 표시를 크게 했다. 그건 뭐냐면 기자분과 인터뷰를 하고 싶으면 O, 인터뷰는 싫으면 X표를 하는 것이다. 내 마음 같으면 아이들 모두 인터뷰를 다 했으면 좋겠지만 신문지면이란 게 정해져 있을 테니 아이들 의중을 밝혀두는 게 피차 좋을 것 같았다.


가정에도 미리 안내를 했다.

"전국에 나가는 신문에 우리 반 소식이 전해집니다. 혹시 자녀의 인터뷰나 사진이 게재되는 걸 원치 않는 가정에서는 미리 연락 주세요. 그리고 취재 당일 아이들 옷차림 단정하게 부탁드립니다."

다행히도 동의를 거부하는 가정은 없어서 편안하게 취재에 응할 수 있었다.


기자분은 9시 전에 교실로 오셨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분은 3교시가 마치는 11:20까지 교실 안에 여유로 있던 리에 앉으셨다. 아이들이 신문을 보는 모습을 가까이 가서 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셨다. 1교시에는 신문 읽고 배움공책 쓰는 걸 하고 2, 3교시에 NIE(Newspaper In Education(신문활용교육))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이 학습지 작성하는 걸 보셨다. 쉬는 시간에는 사전인터뷰 학습지 묶음을 보시고는 몇몇 학생을 불러서 인터뷰를 하셨다. 옆에서 인터뷰하는 아이들 표정을 보니 '상기'되어 있다는 게 딱 맞는 그런 긴장과 기쁨의 얼굴이었다.


나는 기자분이 이렇게 오래 교실에 있으실 줄은 몰랐다. 기자분을 이렇게 가까이 만난 적이 없어서 나도 아이들처럼 모든 게 신기했다. 콩닥콩닥, 내 마음도 이렇게 신이 났다.


기자님이 가시고 난 뒤, 우리 반은 서로 어떤 마음이었나 얘기하고 그런 시간을 이어갔다. 신문사 기자분이 우리 교실에 와서 취재한다는 건~ 아주 특별한 경험이니까. 며칠 후 어떤 아이는 우리 반 기사가 나는 신문을 보려고 구독신청을 했다고도 했다.


드디어 취재 후 보름정도가 지나서 2026년 1월 14일 어린이조선일보에 우리 반 기사가 나왔다. 2면 전체에 가득~ 사진과 인터뷰가 실렸다. 온라인에도 기사가 올려졌는데 지면보다 더 많은 사진과 내용이 가득했다.

(인터넷 기사: 부천 석천초등학교 4학년 6, 급식 메뉴보다 어린이조선일보먼저 본대요)


학급운영비 예산으로 12월까지만 알뜰히 신문 구독을 한 거라서 기사가 난 1월 당일엔 신문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먼저 봤다. 그리고 이후에 학급대표 어머니가 집에서 구독하시던 신문이라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다. 그래서 그 사진과 온라인신문 링크를 학급 SNS로 모든 가정에 보내드렸다. 학생 세 명과 학부모님이 감사하다고 연락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 반 학급문집에도 이 신문 기사를 넣어 만들었다. 이건 아주 특별한 일이니까 빠뜨릴 수가 없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는 기자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들 인원수 알려드리면 신문을 보내주신다는 거였다. 그래서 23명이라고 말씀드리니 얼마 뒤 학교 교무실로 택배가 왔다. 아이들이 3월에 오니까 그때 신문과 학급문집도 함께 나눠주려고 한다.


내가 아는 선생님 한 분은 하루에 2개씩 네이버블로그에 글을 쓰신다. 책도 이미 4권 쓰셨고 파워블로거시다 그분을 포함해 여럿이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간 적 있는데, 숙소로 들어와 모두 씻고 자려고 할 때도 그분은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셨다. 여행 중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실 때도 그랬다. '와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학생 때 수없이 들었던 말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야.' 하는 말이 떠올랐다. '글을 쓰는 것도 엉덩이가 하는 거야.' 글을 쓴다는 건 무척 성실해야 한다. 나는 그 점에서는 한참 멀었지만 가끔 글을 쓰고, 내가 쓴 글을 한 열 번쯤은 다시 읽으며 고치는 편이다.


내가 쓰는 알림장 한 줄, 내가 쓰는 카톡 한 줄, 400자 꽉 채워서 쓰는 리뷰, 일주일에 한 편 쓰는 브런치 글, 5주마다 쓰는 온누리신문 글, 논문, 학회지 글... 내가 쓴 모든 글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나는 신중히 쓰는 알림장으로 조금 더 잘 소통하고, 카톡으로 조금 더 잘 위로하고, 리뷰로 누군가의 선택을 돕고, 브런치나 신문 글로 조금 더 잘 공감과 공유한다고 느낄 때 행복하다. 그리고 이번 일로 다시 한번 생각한다. 글은 살아있고 힘이 있다. 연결하고 연결한다. '글 쓰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내 경험을 떠올려보면 글은 수많은 일을 일으킨다.


이제 이 브런치북은 마지막 한 편을 남겨두고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일년살이를 아주 조금이나마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마음의 숙제를 이제야 마쳐간다. 나의 브런치 글을 읽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거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나에겐 기록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겐 정보, 누군가에겐 공감과 위로가 된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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