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은 오래 기억된다
학교의 겨울은 항상 빨리 온다. 학교 건물의 부실함 탓인지 유난히 빨리 느끼는 추위도 있지만 학년말의 업무(반편성, 진급, 생기부 마감, 내년 부장이나 학년(+업무) 신청, 전보와 같은 교사들의 인사이동...)에 관한 안내가 오기 시작하면 학교는 이미 겨울을 준비한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 12월은 3월만큼, 아니 3월보다도 조금 더 바쁘다. 주변에선 다들 연말 모임을 한다고 연락이 오지만 12월은 마음이 너무 분주하여 약속을 잡지 않고 싶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서류라고 볼 수 있는 학생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내용이나 오탈자를 점검하고 최종 마감이 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생활기록부(줄여서 '생기부'라고 부른다.)는 교사 스스로가 점검도 하지만 인쇄해서 동학년 다른 분 2분께 확인을 받고, 다른 학년과 교차해서도 확인하고, 교무부장님과 연구부장님도 점검하셔서 한 5번의 단계를 거쳐서 수정을 다 마치면 결재를 받을 수 있다. 이제는 그 인쇄된 생기부에 빨간 펜으로 수정내용이 마구마구 적혀 오더라도 담담히 고치는데 익숙하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나중에 다시 보더라도 무탈해야 하니까, 교사에겐 생기부를 점검하고 점검하여 완벽한 상태로 만들어 내는 것이 1년 서류 업무 중 가장 큰 과제라고 볼 수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교사로서는 이렇게 업무부담이 커서 자칫 학급 마무리에 소홀해질 수도 있다. 오랜 경험상 이제 나는 해마다 반복되는 이 시기의 함정을 알기에 경계하는 편이다. '마지막은 오래 기억된다.'는 내 나름의 경험과 가치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쁜 건 집에 가서 하더라도 학급의 마지막을 위한 고민을 한다. 어떤 해에는 칭찬샤워를 하며 마친 적도 있고, 학교예산 남은 걸 다 털어서 선물을 사주며 행복하게 마치기도 한다. 보통은 학급문집이 나오면 그걸 읽어보면서, TV로 1년간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며 한 마디씩을 하며 마친다.
올해는 종업식을 일주일 앞둔 12월 23일을 그 행복한 파티의 날로 정했다(생기부 제출이 모두 마친 이후라서 정한 날^^). 그리고 내가 취미 삼아하는 베이킹을 하기 위해 일주일 전 학교 예산으로 빼빼로 만들기용 과자와 코팅용 초콜릿, 초코펜과 데코용 가루, 종이포일, 포장비닐 등을 샀다. 그리고 파티하기 바로 전날 아이들이 다 간 후에 비밀스럽게 교실을 변신시킨다. 8개씩 책상을 길게 모아 3 분단으로 만든다. 그리고 책상 위를 모두 하얀 도화지로 덮는다(그래야 테이블보가 이쁘게 보인다.). 그리고 다이소에서 산 파티테이블보를 덮는다. 앞문에는 핑크색 꼬불꼬불한 파티커튼을 달고, 칠판과 옆쪽에는 크리스마스리스와 전구를 단다. 그리고 천장에는 파스텔 색으로 된 여러 개의 페이퍼볼을 매달았다. 온풍기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게 보기 좋다. 그리고 학용품과 간식을 파스텔색 이쁜 종이봉투에 담아두었다. 다 마치고 나니 나는 이날 저녁 7시에 캄캄한 복도를 지나 퇴근해야 했다.
파티 당일 아침에는 집에 있던 프라이팬과 중탕그릇 2개, 실리콘주걱 2개, 키친타월, 1구용 인덕션, 무거운 머그컵 6개를 가져왔다. 이 모든 걸 당일 아침에 가져오려니 큰 박스에 담아서 차에 가져왔다. 그리고 평소보다 30분 일찍 왔다. 그리고 여기저기 전구마다 스위치를 켰다.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입을 쩍 벌린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응, 우리 헤어지기 전에 파티해야지~"
천장에는 페이퍼 볼이 흔들리고, 책상은 파티테이블로 바뀌어 있고,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느낌의 전등이 아이들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바로 파티를 하고 싶지만, 오늘은 화요일 6교시라 점심식사 후 5, 6교시에 빼빼로 만들기 할 거라고 일러둔다. 오전에는 전담실과 강당도 가야 하고 복잡해서 모든 걸 마치고 5, 6교시에 파티를 하는 게 좋았다. 아이들은 계속 소곤소곤한다. 시작도 안 했지만 아이들은 이미 평소보다 더 웃고 행복해 보인다. 난 서프라이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들에겐 해주고 싶었다.
5교시가 시작되기 전 머그컵마다 뜨거운 물을 담고 짤주머니를 하나씩 넣고 하나는 화이트초콜릿, 하나는 다크초콜릿을 중탕해서 부어준다. 그리고 일회용 접시에 여러 데코 가루들을 놓아주었다. 또 아이 자리마다 도화지만큼 크게 종이포일을 끊어서 주고 그 위에 각각 빼빼로 스틱 8개를 놓아준다.
드디어 내가 시범을 보인다.
"빼빼로 스틱이 더 큰 것도 있는데 그건 먹을 때 이가 아프더라^^ 그래서 가는 것으로 준비했어요. 먼저 스틱 끝을 잡고 이렇게 짤주머니 안으로 넣어서 절반 넘게 초콜릿을 묻히고, 그대로 들고 있어야 흘러내려요. 더 이상 안 흐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종이포일에 놓고 마음에 드는 스프링클을 묻히거나 구슬을 집게로 집어서 올려요."
"선생님 하다가 망치면 어떡해요?"
"하다가 망치면 먹으면 되니 걱정 말아요."
아이들은 기다림이 어렵다. 그래서 보통 막대에서 초콜릿이 더 이상 흐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빨리 꾸미고 싶어서 난리다. 그래서 여기저기 초콜릿은 흘러서 떨어지고 가루도 그렇지만 테이블보가 있어서 괜찮다. 나중에 그것만 걷으면 되니까.
난 밝은 음악도 틀어주고, 계속 모자란 초콜릿을 더 중탕해서 부어주느라 쉴 틈이 없었다. 내가 빼빼로나 과자를 만들 때 기분이 좋았던 것처럼 아이들도 그러길 바랄 뿐이다. 집에서 짐을 가져오는 게 가장 힘들었다. 다시 가져갈 일이 막막했지만, '아름다운 마지막을 위해서야.'라고 나를 다독인다.
아이들은 빼빼로를 다 만들고 나서 비닐에 3개씩, 3개씩 담고 2개는 먹는다. 친구들과 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은 행복하게 집에 갔다. 그리고 다음날은 그 선물봉투를 나눠주었다.
"모두 눈을 감아요."라고 하고는 사물함에 숨겨두었던 선물봉투를 아이들 책상 위에 조용히 놓았다.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듯, 아이들은 뜨고 싶기도 하지만 꾹 눌러 눈을 감고 기다렸다. 이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나 혼자 5초간 눈감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
"이제 눈을 뜨세요."
"와~!"
"여러분 1년간 4학년 잘 보내느라 고생했어요. 이제 선생님과는 1주일밖에 안 남았지만 5학년 가서도 잘할 거라 믿어요."
여기까지 아이들을 위한 파티는 무사히 마쳤다.
2년 전, 2023년 여름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이 있었다. 교사로서의 삶이 버거웠던 후배교사가 선택한 죽음. 그때 난 생각하고 다짐했다. 어렵게 이 길에 들어온 후배교사들을 잘 챙겨야겠다. 그래서 우리 반 파티를 마친 후 바로 3시에는 선생님들을 위한 파티를 준비했다. 그래서 선생님들에게도 1주일 전에 베이킹 원데이클래스를 안내하고 신청을 받아서 19명(교사 17명, 행정실 계장님 1명, 교무실선생님 1명)이 참석하기로 했다. 아이들과는 빼빼로만 했지만 선생님들에겐 좀 더 여러 가지를 제안하고 준비했다. 빼빼로, 바크초콜릿(집에서 기본을 미리 만들어 감), 루돌프쿠키 세 가지였다. 선생님들을 위한 재료는 내 단골 베이킹재료가게에서 따로 준비했다.
몇 명 선생님들은 먼저 와서 준비를 도와주셨다. 테이블보를 깨끗이 닦고, 재료를 각 자리에 놓아주셨다. 그리고 뒤쪽엔 남편에게 부탁해서 준비한 핸드드립커피 2L, 음료수, 과일과 귤을 준비했다. 그리고 신청 시에 미리 받은 각자의 닉네임을 작은 명패로 해서 책상 위에 두고, 스티커로 만들어 가슴 쪽에 붙이기로 했다. 난 음악을 틀고 TV에 완성품 사진을 띄워두고 역시 만드는 시범을 보였다. 선생님들은 빨리도 배우고 잘 배우셔서 시작이 어렵지 않았다. 난 단지 장소와 재료들을 준비했다.
"이 시간만큼은 우리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기입니다. 닉네임으로만 불러주세요."
"우리 장원영 님은 언제 오세요?"
"그러게요 장원영 님이 좀 늦으시네요?"
선생님들이 손이 빠르고 많이 만드셔서 난 초콜릿 중탕하느라고 바빴다. 보통은 서로 교실에만 있느라 바빴지만 지금은 학년과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초콜릿 중탕하느라 내 손은 계속 주걱을 돌리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선생님들의 표정을 보며 행복했다.
'선생님들도 숨 쉴 곳이 필요해. 위로와 격려가 필요해.'
내가 초임시절때도 컴퓨터로 성적입력을 해줘서 고맙다며 와인색 조끼를 떠주신 선배가 있었고, 동학년 여선생님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파스타를 해주신 선생님도 있었다. 교실 꾸미기를 못해서 멍하니 있을 때 색도화지와 스테이플러를 가져와 기적처럼 우리 교실 뒤판을 채워주신 선배님도 있었다. 언제나 선배들의 그러한 따스함으로 인해 '내가 이 길을 가는 게 외롭지 않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젠 내가 어느새 그런 선배의 나이가 되었다. 학교에서 살아간다는 게 힘든 건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는 핑계로 혼자만 살아가지 말고, 후배 선생님들이 외롭지 않도록 돕는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