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이 있어요
한 해가 마쳐갈 즈음 학교에선 은밀히 아주 중요한 작업을 한다.
'쉿!'
바로 다음 해 반편성이다.
올해도 11월에 '내년에 전학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을 미리 조사해서 제외시키고 실제 올려 보낼 학생수를 확정한 후,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학급수를 그대로 하여 학생을 나누는 반편성을 했다. 반편성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거의 한 달이 걸렸는데 그동안 반편성 명단이 적힌 파일이나 인쇄물이 어디에도 노출되지 않도록 교사들은 침묵하고 자료를 잘 관리한다. 잠깐 본 자료는 바로 파쇄한다. 해마다 하는데도 마치 비밀임무처럼 주변을 경계하며, 연구실에서 할 때면 연구실 문단속을 하며 하는 모습이 은근히 재밌기도 하다. 비밀요원이 된 듯.
일단 기본사항은 이렇다. 올해 7개 반이어서 내년에도 7개 반을 기준으로 나누는데, 각반 학생수가 비슷해야 하고, 가능한 남녀학생수도 비슷하게 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나 생활태도 수준도 비슷하게 하고 같은 반에 동명이인이 없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일단 학년에서 정한 어떤 규정에 따라 학생을 줄 세운다. 그 규정은 학교마다 학년마다 다르다. 아주 예전에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던 때에는 그 성적을 기준으로 했었지만, 이젠 그런 일제평가는 없고 수행평가만 있는데 수행평가도 학생을 일렬로 세울 어떤 기준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근무했던 한 혁신학교에서는 오! 로! 지! 아이들의 이름을 ㄱㄴㄷㄹ.. 순으로 해서 반배정을 했었다. '아무 정보 없이 반편성을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라는 나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고 학교는 그런대로 잘 굴러갔다. 그리고 가능한 '서연'과 '서현'처럼 발음상 비슷한 아이도 없도록 조정한다(이건 선택적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건 올해나 이전에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파악해서 분리하는 것이다. 드물긴 하지만 이게 중요한 부분이다.
반편성은 이렇게 아무 기준 없이 해도 잘 될 때도 있지만, 아무리 여러 정보를 가지고 나눈다고 해도 잘 안될 때도 있다. 3월 한 달만 지나 보면 선생님들은 안다.
"*반이 좀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이 많이 모인 것 같아요."
"맞아요. *반 선생님 힘드실 것 같아요."
반편성이 잘못되었다는 걸 가장 먼저 느끼는 분은 전담선생님들이다. 전담선생님들은 같은 내용으로 여러반을 다 가르치시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태도나 집중력, 대화태도 등을 바로 느끼고 비교하실 수 있다. 나도 전담교사를 할 때 반마다의 차이를 확연히 느끼지만, 담임선생님이 먼저 물어보시기 전까지는 미리 말하지 않는다. 보통은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이 질문하시기에 먼저 그걸 알려드릴 필요가 없다. 내가 보기에 어려운 반도 잘 감당해 내는 선생님이 계신가 하면, 어렵지 않아 보이는 반도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있다. 선생님들마다 어려워하는 학생이나 특성이 다르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을, 10월부터 여자아이들이 슬쩍 내게 청탁을 해온다.
"선생님, 저희 4명 다 같은 반에 보내주시면 안 돼요?"
"얘들아, 우리 반 여자가 11명이고 7개 반으로 나뉘어야 하는데 가능할까? 한 반에 1~2명밖에 못 가는 걸?"
2학기까지 더 우정이 단단해진 이 아이들, 학교 마치고 운동장에서 같이 노는 이 아이들이 같은 반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하지만 들어줄 수 없어 안타깝다. 학생수가 적어서 요즘은 정말 1~2명밖에는 같은 반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학부모님들 몇 분도 담임교사에게 연락을 하신다. 전화도 오고 편지도 오고, 하이클래스 문자로도 온다. 그런 걸 학년에서 모은 적이 있는데 각반 2~4건 정도였다. 올해 우리 반 학부모 요청은 1건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 간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다른 반 아이에 대해서도 부탁을 해오신다.
"선생님, 아이가 **랑 관계가 불편해해요. 다른 반으로 해주실 수 있나요?"
이럴 때 내 답변은 이렇다.
"아이가 힘들어한다니 안타깝습니다. 다만 반배정 규정상 학폭 가해, 피해 관계만 분리가 가능해요. 결과가 어떻더라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내가 이 학부모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규정상의 질서가 어그러지고, 누군가는 또 이 아이가 싫어하는 그 아이의 반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톱니바퀴처럼 하나가 틀어지면 다른 것도 이어서 틀어진다. 그래서 규정대로 하지 않아서 생기는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두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 아이가 힘들어하는 아이는 보통 여러 아이가 불편해한다. 툭하면 욕하고, 소리 지르고, 싸우고, 주변정리 전혀 안 하고, 담임선생님에게 시비 거는 아이를 누가 좋아할까. 그러다 보면 그 아이를 불편하다고 호소하지 않은 아이들만 그 힘든 아이와 같은 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예전에 그런 경우를 보기도 했다. 옆에 누가 있어도 상관하지 않는 아이, 혼자 꿋꿋이 학교생활 잘하는 아이들만 그 학년에서 가장 힘든 아이의 반으로 갔다. 무던하다는 이유로 힘든 반에 가야만 한다면 그건 공정한가. 트롤리 딜레마가 어느 순간부터 의식되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을 따른 많은 사람들로 인해 우리나라에 민원 문화가 발달한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난 규정대로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같은 반이 되게 해달라고 하는 부탁도 있었다.
"선생님 **가 친구로는 **밖에 몰라서요 같은 반이 되게 해 주실 수 있나요?"
극단적으로 내향적이거나 사회성이 낮아서 학교생활이 어려운 학생의 경우는 보통 친구가 아예 없거나 단짝 1명 정도가 있다. 무언가 도와주고 함께 하는 친구. 그러면 그 친구의 도움으로 한해를 잘 보낸 학생과 어머니는 그 단짝친구와 내년에도 같은 반이 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곤 하신다. 하지만 난 그 단짝 아이와 어머니의 속마음을 안다. 표현하시기 때문이다. 친절이 계속되면 권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듯, 처음엔 고마워하던 마음도 일부는 1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으레 받아야만 하는 친절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런 상대의 변화를 감지한 단짝 아이와 학부모님은 "내년에는 다른 반으로 해주세요."라고 요청하기도 하신다. 이때도 나는 규정대로 한다. 같은 반이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그건 규정대로, 인연대로 되는 것이다.
종업식, 마지막날 나눠주는 통지표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다.
귀댁의 자녀는 5학년 ( ) 반에 배정되었습니다.
12월 끝에 전학 오는 학생도 있고, 여러 가지 변수가 있기에 이 괄호는 종업식 며칠 전까지도 비워두고 정말 모든 것이 확정된 후 글씨로 직접 쓴다. 결국 각반 남자 1~2명, 여자도 1~2명씩 배정했다. 그리고 배정한 반 이름은 1, 2, 3, 4... 반이 아니고 가, 나, 다, 라... 반으로 적는다. 왜냐하면 이 학생들을 선생님들이 뽑는 아주 중요한 단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아이들 명단을 나눠 가지면 그 이후 교실과 확정되는 반을 정한다. 그러면 우리 반이 4-6이더라도 그 푯말 아래 (4-마) 이런 종이를 붙여두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곧 3월 첫날 와서 그 반에 찾아간다.
반편성으로 인해 아이들은 새로운 학년과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다. 그래서 선생님들도 반편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신중히 한다. 아이들은 때론 좋아하는 아이와, 때론 싫어하는 아이와 만나는 걸 받아들이고 적응해 갈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것보다 잘 적응한다. 힘들면 피하고 숨는 어떤 부모님의 방식은 내 아이도 힘든 친구는 피했으면 하는 마음이시겠지만, 아이는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고 힘이 있다. 반편성에서 누군가 피하려고만 한다면, 아이는 앞으로도 그게 맞는 방법이라고 배울 것이다. 하지만 원치 않아도 만나면 적응하고 1년을 지나는 것, 그리고 더 바라자면 마지막에는 상대 아이를 이해하고 그 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승리감을 맛볼 수 있고 성장하는 것이다. 부모님 중에서 내 아이가 실패를 겪게 하고 싶지 않다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따라다니며 계속 그렇게 책임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의 목적이 결국은 아이의 '독립'인 걸 아신다면 지금 아이의 속상함과 눈물을 공감은 하시되 아이 대신 그 삶을 살아주시는 일은 멈추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