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4/ 업무량이 너무 과도해..
7:30, 고2 되는 딸은 버스 타고 등교하느라고 "다녀오겠습니다." 목소리만 남긴 채 가버렸다. '아무것도 안 먹고 이 추운 겨울에 어떻게 학교에 가니..'
딸이 떠나고서도 문에 달린 풍경이 댕글댕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들과 나는 아침밥을 먹는다. 갈치구이, 돼지양념갈비, 두부부침에 미역국, 그리고 설을 위해 했던 겉절이. 난 아침을 든든히 먹는 날 기분이 좋다.
9시부터 다시 전교직원 연수. 어제 간식이 있었다고 해서 오늘도 있는 건 아니었다. '아침 든든히 먹길 정말 잘했어.' 아침 잘 먹고 온 나를 스스로 칭찬했다. 그래도 오늘 기쁜 소식을 많이 들어서 좋았다.
-보결 수당 시간당 2만 원으로 인상(작년엔 만원..)
-점심시간 보결도 수당 지급(작년까진 봉사였다구..)
-체험학습과 결석 서류 일체를 온라인으로 접수 및 결재
-전교생 식당에서 식사(전에는 1~3학년만 식당에서 먹고 나머지는 교실에서 먹었었는데, 이제 점심시간을 두 번으로 나누어서 세학년 먹고 나면 세 학년 이렇게 모두 식당에서 먹게 되었다. 교실에서 급식 전쟁은 이제 끝났다.)
학교에선 모든 게 저평가되어 있다. 우리나라 주식이 저평가되어왔다가 작년 내내 전 세계 1위라고 할 정도로 급등한 것처럼 학교에도 그럴 날이 올까? 작년까지는 어느 교사가 결근하면 누군가 그 반에 가서 수업을 할 때 달랑 만원씩만 받았었다. 점심시간은 더 길게 돌봐줘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 받았다. 그게 이제야 개선이 되네.
교실정리를 하고, 4학년에 배당된 학생회실 정리를 같이 했다. 학생회실에 있던 물품을 모두 다른 곳으로 치우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내가 맡은 TV설치 기사님이 오셔서 나 혼자 딴 데 가느라 죄송했다. 새로 만든 교직원 회의실에 75인치 TV를 설치한다. 기사님 두 분이 와서 설치하신다.
"어느 쪽에 설치할까요?"
"전등 스위치가 여기 있고 이쪽으로 드나들 것 같으니 반대편에 하시죠?"
두 분이 수평 잡고 높이(바닥에서 110cm 띄웠다. 침대는 100cm, 소파는 65cm 정도 띄운다고도 하셨다.)와 중심 정하고 설치하셨다.
"이거 정말 좋은 리모컨이에요. 8만 원 정도 할 걸요?"
"뭐가 좋아요?"
"마우스처럼 휠 기능이 있고요, AI버튼을 누른 채 명령하시면 여러 가지를 하실 수 있어요."
"정말요?"
AI버튼을 누른 채 기사님 말씀대로 "최신 노래 틀어줘."라고 하니 음악을 찾아 틀어주었다.
그리고 "TV 꺼줘."라고 하니 꺼졌다. 와이파이를 연결하니 TV가 마치 태블릿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TV 기능들을 이해하고 테스트해 보자 학생회실 정리를 마친 선생님들이 오셨다. 그래서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동학년 9명인데 오늘에야 9명이 모두 모여 인사를 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학교 예산으로 샤브칼국수를 먹었다. 빠알간 국물에 있던 버섯과 야채를 먹고, 고기를 넣어 건져 먹고, 국수를 넣어서 또 먹고, 마지막엔 볶음밥까지 아주 든든히 먹었다. "오늘 메뉴 정하신 분 누구지? 칭찬해." "학교에서 이렇게 두 번이나 밥을 사주네? 좋다 좋아." 근무하는 곳에서 밥을 사주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 우리들이다. 보통은 이렇게 2월에 출근할 때 학교에서 한 번 정도 사주는데 올해는 두 번 사준다고 너무 좋아한다. 학교장이 쓸 수 있는 예산을 교사 식사비로 배정하는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인 것이다. '아, JYP 이런데 구내식당 그렇게 훌륭하다던데, 아이돌이 되었어야 해..' 이렇게 1년 중 2~3일을 빼고는 각자의 돈으로 밥을 사 먹어야 하는데도 우리는 밥을 사준 교장선생님에게 감사해 하는 소박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난 일하는 사람에게 식사가 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식사를 생각하는 건 그 사람을 생각하는 거고, 배려하는 거니까 그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오늘은 연구부장님이 메가커피에서 음료를 사주셔서 유자차를 맛있게 마셨다. 유난히 풍요롭고 신나는 올해의 시작이다.
돌아와서 또다시 일꾼모드.
난 작년 아이들과 만든 문집을 직접 인쇄해서 제본기로 링제본을 하고 있다. 1월에 우리 반이 신문에 났던 기사를 싣느라 시작이 늦었다. 그래서 인쇄는 다 했지만 링제본은 아직 절반이 남았다. 인쇄물을 카트에 싣고 2층 교무실에 갔다. 거기 제본기가 있다. 종이를 20장 정도씩 나누어 구멍을 뚫는다. 제본기 오른쪽에 있는 초록 버튼을 누르면 윙~철컥~ 소리를 내며 조그만 네모 구멍이 일렬로 뚫린다. 문집이 27권인데 1권이 101 매니까 한 다섯 번씩 이 걸 반복하는 거다. 아, 총 135번 하는 거야..(이런 걸 계산하는 건 내가 수학을 좋아해서 교대에서 수학심화를 했던 자연스러운 흔적이다.) 오늘은 마치 내가 공장의 기계 같았다. 예산이 많으면 인쇄와 제본을 40~50만 원에 인쇄소에 맡기고 싶다만 학교는 늘 가난하다.
그리고 링을 제본기에 끼운다. 그리고 벌린다. 그리고 구멍 낸 종이들을 링에 3~4번에 나누어 끼운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려 링을 조이면 한 권이 완성된다. 오늘 15권 제본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교무실엔 교감선생님과 교무부장님, 다른 선생님 두 분까지 4분이 계신데 시끄러우셨을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 이미 사과하고 시작했었지만 그래도 죄송하다.
학교 컴퓨터에서 카카오톡이나 밴드처럼 외부의 것을 이용하려면 설치허가서를 내야 한다. 우리 9명 컴퓨터의 IP주소를 모두 받아 설치허가서를 보냈다.
학부모회를 구성하는 부장님이 전화로 질문을 해오셨다. 내가 이전에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해 드렸다.
학년배정희망서 9명 것을 모아서 제출했다.
퇴근시간이 이미 지났다. 하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보니 교실을 옮기는 두 분 교실 앞에는 50리터 쓰레기봉투가 2개씩 나와있다. 아이들이 채 가져가지 않은 버려진 우산들과 안 쓰는 대걸레 등이다. 두 분 모두 고무장갑을 끼고 아이들 책상과 바닥물걸레까지 대청소를 하고 있다.
"이러다가 병나요. 얼른 퇴근해요."
"눈에 보이면 하다 보니.."
"나도 그러다가 병났어요. 얼른 퇴근하세요."
그렇게 퇴근시간을 상관하지 않고 열심히 3월 개학을 준비하는 선생님들이다.
하지만 다들 힘들다는 소리는 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가서 먹으니 좋은데 우리 내일도 나가서 먹을까요? 이 근처 맛집 아는 분 추천 좀 해주세요."
부장님이 말했다.
점심 메뉴가 그날의 유쾌지수를 결정한다. 그래서 난 걸어서 갈만한 8개의 식당 리스트를 공유했다. 어딜 가든 우리팀 모두가 맛있게 먹고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
최근 흑백요리사 시즌2 우승자인 최강록 씨가 퇴근 후 자신을 위한 요리 옆에 소주를 놓으며 '노동주'라 일컬었다. 그리고 여러 셰프들이 그 단어에 공감했다. 주변에 요리사가 없어서 그분들의 삶과 마음을 몰랐는데 울컥했던 장면이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내일도 우리는 또 힘든 하루를 보낼 것이다. '노동식'이라고 해야 하나? 든든한 식사가 우리더러 힘을 내라고 한다. 나이 든 사람 티 내는 것 마냥 '밥심'이라는 말이 계속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