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2/ 잘 지내~
오늘은 삼일절 대체 공휴일이다. 모처럼 3월 개학을 앞두고 하루 더 쉬어서 마음이 편하다.
작년 학교 가는 첫날은 눈까지 오더니 올봄은 비가 와서 온 공기가 다 축축하다.
딸은 올해 고2다. 급식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 고등학교를 정했다는 딸. 입학하기 전에는 이렇게 집에서 멀고, 또 산속에 있는 학교인 걸 잘 몰랐다. 고등학교 지원하기 전에 한 번도 직접 안가보고 선택하다니. 학교설명회에 가는 날이 되어서야 딸이나 나나 산속에 있어서 자연스레 생긴 그 경사가 눈에 들어왔다.
'눈 쌓이면 이 길 차로 못 올라갈 것 같다.'
'나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가는 길 경사가 이거 절반 수준이었는데도 다리 굵어져서 싫었는데.'
'딸아, 무슨 마음으로 여길 지원한 거야. 기숙사 안된다면 정말 답이 없다.'
아이가 정한 학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만 오만가지가 오갔다.
이 학교는 일반고지만 사립고등학교라서 일부 학생들은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다. 시험과 면접을 통해 들어가는 기숙사. 경쟁을 몸소 체험하는 과정이었다. 딸은 다행히 작년에 이어 2학년까지도 기숙사에 입사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1년 단위로 기숙사생을 모집하는데 1학년때도, 그리고 2학년때도 마음을 졸이며 그 결과를 기다려야만 했다. 우리 부부가 다 출근해야 하는데 딸이 기숙사가 안된다면 등교부터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정말 간절히 바랐다. 기숙사를 위해서라도 공부를 잘하길...
독립성이 강한 이 딸은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기숙사 있는 학교에 갈 거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내가 "기숙사 있는 중학교도 있긴 한데 공부 엄청 잘해야 해."라고 했지만 딸은 별다른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학교 갈 때서야 자신의 꿈을 기억했나 보다.
이 학교는 아이가 지원할 때만 해도 그리 유명하지 않았다. 산 속이라 교통이 어려워서 기피하기도 했다. 다만 사립이라 선생님들이 오래 계시고 해서 전통도 있고 노하우도 있고 자부심도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마침 아이 입학하던 해에 기숙사 리모델링이 되어서 깨끗해지는 게 그나마 유인책이랄까. 하여간 중3 때 고등학교 설명을 이곳저곳 듣더니 이 학교를 1 지망으로 지원해서 가게 되었다.
아이에게 기숙사 로망이 왜, 언제부터 생긴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하여간 딸은 그 꿈을 이루었고 마냥 좋단다. 선생님들도 다 좋으시고 반 친구들도 다 좋다고 하니 다행이긴 하다. 방학 동안 계속 친구들이 보고 싶다기도 하고, 학교 가고 싶다기도 하는 귀여운 아이다.
하지만 난 또 생각한다.
'그건 기숙사가 되어서 다행인 거야. 안되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늘 저녁 7~8시 사이에 입사해야 한다. 그런데 하필 비가 온다. 저녁에 더 많이 온다.
"엄마 아이들이 그러는데 기숙사 앞 운동장 바닥이 난리가 아니래요. 발목까지 진흙탕이라는데요?"
"엄마 장화 있는데 신어야 하나?"
"그게 좋을 수도요."
일단 아이는 책가방을 메고 캐리어를 끌었다. 나는 큰 이불가방을 들고 아빠는 욕실용품과 스탠드가 담긴 대형 타포린백을 들었다. 차를 타고 20분을 간다.
"거기 본관에서 기숙사로 내려오는 긴 계단 있잖아. 거기로 내려오면 흙 안 밟을 수 있지 않아? 지붕도 있고."
차 타고 가다가 생각해 보니 그 방법이 있을 것 같아 내가 의견을 냈다
"그럴까요?"
맨날 내 의견에 반박만 하던 딸이 내 의견을 수용하니 낯설다.
모두 운동장 진흙을 밟고 신발은 엉망이 된 채 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린 위쪽에서 기숙사로 이어진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갔다. 빗물이 있어서 아주 조심히 내려갔다. 계단에서 넘어지면 큰 사고니까. 다행히 계획대로 흙을 밟지 않고 기숙사에 도착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딸은 가방과 캐리어를 가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사감선생님이 호실을 말해주자 나머지 짐가방 2개는 남학생들이 날라다 주었다. 딸과는 간단히 인사하고 뒤돌아 나왔다.
나는 결혼 전까지 내내 가족과 살다가 결혼했다. 살림이라고는 라면 끓이고 설거지만 조금 할 줄 알았다. 빨래는 세탁기 넣는 것만 알았다. 그래서 결혼하고 살림이 너무 힘들었다. 결혼이 뽀송뽀송한 솜사탕 같을 줄만 알았던 내게 실제는 오늘 내린 비처럼 축축하고 무거운 것이었다.
그래서 기숙사 2년 차인 딸이 부럽기도 하다.
오은영 박사님도 다른 분들도 자녀교육의 목표는 건강한 독립이라고들 하신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난 기숙사를 계기로 딸을 독립시키고 있다. 적어도 독립 연습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나와 다른 딸, 그래서 키우기는 쉽지 않았지만 너의 삶이 기대되는구나. 멋지게 성장하고 독립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