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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말문이 닫히기 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자녀와의 대화가 어려운 부모님들을 위하여 -1-

by 잡식공룡

* 자녀와의 대화가 어려운 부모님들을 위한 3편의 글 중 첫번째 입니다. *




"왜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니?"
"왜 아빠한테 말하지 않았니?"


이런 말을 내뱉어 본 경험이 있나요? 내가 모르는 사이 사랑하는 나의 아이가 힘든 일을 겪고 있었거나 겪었던 것을 알게 된 순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말이죠. 아마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알았더라면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왜 혼자서 끙끙대었는지 마음이 아파서 콱 막혀오는 말문을 겨우 뚫고 나온 말일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말 중에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과 나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으로써 상대를 이해해보라는 뜻의 사자성어인데요. 상대방은 힘든 이야기를 나에게 왜 말하지 않았을까라고 질문을 바꾸어보는 겁니다. 내가 그에게 말하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 역시 자신이 왜 아이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 되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부모님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해하실까 봐 부모님을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숨기고 싶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조금 다르게, 부모님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혹은 부모님께 이야기를 하면 되려 자신이 혼날까 봐 숨기려 했을 수도 있어요. 문제는 후자입니다.




저는 교직에 있으면서 여러 학생들과도 상담을 하고, 여러 학부모님들과도 상담을 했습니다. 그 경험을 돌이켜보면 생각이 한 갈래로 모이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가족 간의 대화가 아이의 마음 성장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가족 간 대화가 활발한 아이들은 대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족을 첫 번째 의지할 대상, 가장 가까운 조력자로 여깁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그것을 회피하거나 혼자서 해결하려고 꽁꽁 싸맬 때 더 크게 곪아 터지죠. 즉, 이 아이들은 어떤 문제나 고민이 처치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 전에 그것을 가족들과 함께 해결할 수 있고 그런 경험은 오히려 긍정적인 기능을 해서 아이 마음의 성장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에 '문제 = 해결 가능한 것'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게 되면서 한층 더 적극적인 아이가 될 수 있지요. 이런 아이는 또래들과의 관계에서는 문제를 겪고 있는 친구에게 조력자의 역할을 해 줄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대처 방식을 아이들은 곧잘 배우니까요.


반대의 경우, 친구 관계에 어떤 문제가 생긴 한 아이가 있습니다. 평소 부모님과는 '다녀오겠습니다', '학원 다녀올게요', '밥 먹었어요'와 같은 무미건조한 일상 반복형의 대화만 겨우 하는 수준입니다. 이 아이는 생전 처음 겪는 문제들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집에서는 오히려 무뚝뚝해지거나 짜증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고도 싶지만, 즐거운 얘기를 하기에도 데면데면한 부모님께 어디서부터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털어놓아야 할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친구라는 것을 한참 중요하게 여기는 시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다른 친구에게 털어놓으면서 잠깐의 위안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또래관계 속에서 자신을 더욱 고립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면 시간의 힘을 빌어 유야무야 하게 없었던 일처럼 해결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이 아이의 머릿속에는 '문제 상황 = 답답하고 힘든 것,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공식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 문제예요. 자신의 문제를 '잘' 해결해 본 경험도 없는 아이가 다른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좀 버겁겠지요?


사실, 가족 간의 대화라는 것이 야속하게도 대화량의 빈부격차가 큽니다. 대화를 많이 하는 가족은 정~말 대화를 많이 하고, 하지 않는 가족은 서로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하게 지내기도 하지요. 물론, 성격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안하는 것은 입이 아플 정도의 수다가 아닐지라도 가족 간에 늘 따뜻한 대화, 관심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가정에 대화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혹은 아이가 어릴 때에는 대화가 많았는데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부모님이 먼저 내 아이의 입술에 얹어진 무게를 덜어주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제 아이지만.. 저도 바쁘고 아이도 학교에 학원에 밤늦게나 마주치다 보니 할 말이 없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하죠?" "선생님, 아이랑 대화를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며 겸연쩍어하시던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대화의 물꼬가 될 수 있는 주제들을 브런치를 통해 공유하려 합니다. 갑자기 하지 않던 엄마와의 대화, 아빠와의 대화가 아이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닫아두기에는 남은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색함을 꾹 참고, 시작해보세요. 좋은 대화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 Photo by Luz Fuertes on Unsplash

©️잡식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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