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뤼헬 (부)의 이야기...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Pieter Brueghel the Elder,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개인적으로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기법보다는 내용에 감동을 받아서 무척 좋아하는 피터 브뤼헬 (부)의 작품을 소개해 드릴까한다. (여기서 괄호 안의 '부'는 '아버지'라는 뜻.)
*Pieter Brueghel the Elder 는 흔히 피터 브뤼겔이라고도 표기되곤 했는데, 요새 표기법으로는 피터르 브뤼헬이라고 표기하는 듯하다. the elder라는 꼬리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아들도 유명한 화가. 장남인 Pieter Brueghel the younger는 환상적인 지옥의 모습을, 차남인 Jan Brueghel the younger는 아름다운 꽃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6/1530–1569),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ca. 1558), oil on canvas mounted on wood ; 73.5 x 112 cm,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462년 전에 그러한 기획을 한 것에 한번 놀라고, 그의 속담 속에 나온 인간의 본성이 2021년 현재에도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게된다. 모르긴 몰라도 작가는 때로는 나약하고 때로는 추악한 인간 본성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작가인 듯하다.
오늘 소개해 드릴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과욕과 오만을 경계하는 교훈을 담았다고 알려진 이야기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루스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이 다이달로스로 말할 것 같으면 미노타우르스를 가둔 미로를 만든 최고의 장인이지만, 바로 그 뛰어난 재능 탓에 미로의 비밀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미노스 왕에 의해 평생 감금된 채 살아야할 운명에 처해진 인물.
탈출을 계획한 아버지가 만든 날개를 달고 시운전을 해보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무 태양 가까이에는 가지마! 날개를 이어 붙인 밀납이 녹아버릴테니까'라고 말했건만! 그 말을 듣지 않고 좀 더 높이 좀 더 높이 하면서 우쭐거리고 신나서 날던 이카루스는 그만 밀납들이 다 녹아버려 깃털들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대로 추락해서 죽고 만다는 이야기.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이야기를 주제로 그려진 작품들은 많다. 아름다운 미소년으로 그려진 이카루스가 커다란 날개가 떨어지면서 추락하는 장면을 대서사 양식로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다 클래식한 예를 몇 가지 살펴볼까요? 때로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그려질 때가 있기도 하고, 태양의 신 아폴로와 함께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이다 보니, 항상 주역은 이카루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는 피터 루벤스와 콜라보로 작품활동을 하기도 했던 당대의 유명작가 야콥 피터 고위라는 플레미쉬 작가가 그린 <이카루스의 추락>이라는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서의 '이카루스의 추락'이라는 주제로 그린 그림의 표본과도 같은 작품이다. 여기서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가 함께 탈출을 시도했다는 설정으로 그렸다.
Jacob Peter Gowy (c.1610-1644이후), The Fall of Icarus (1635/1637) oil on canvas ; 195 x 180 cm, Museo del Prado
아래 작품은 메리-조셉 브론들의 <이카루스의 추락>에서는 태양의 신 아폴로와 함께 이카루스가 그려졌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이카루스는 신과 동급을 이루는 주인공이다.
Merry-Joseph Blondel (1781-1853), The Fall of Icarus (1819) oil ; 2.7 x 2.1 m, Louvre
아래의 작품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 화가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에 의해 그려진 작품으로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라는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이후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되었다. 19세기 아카데미 미술 특유의 화풍으로 그려진 이 이카루스는 'Lamentation'이라는 '예수의 죽음을 애도함'이라는 종교화의 전통적 도상에서의 예수의 포즈로 그려졌다.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이처럼 이카루스를 장렬하게 전사한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져 왔다.
Herbert James Draper (1863-1920), The Lament for Icarus (1898) oil on canvas; 1.83 x 1.56 m, Tate Britain
아래의 작품은 <네개의 불명예>라는 제목으로 제작된 4개의 톤도 시리즈 중 한 작품인 <이카루스>다. 미술사상 가장 유명한 동판화가 중 한명인 헨드릭 골치우스와 네덜란드 매너리스트 화가 코넬리스 코넬리즈 반 할렘 (Cornelis Cornelisz van Haarlem)과 공동작업 하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다. "네 개의 불명예"라는 주제로 제작된 작품에서는 모두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한 인간이 형벌을 받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은 크기의 동판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기술로 독특한 앵글을 포착하여 섬세한 동작을 포착해낸 골치우스의 기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만함으로 벌을 받는 4명의 인물을 다룬 시리즈 중의 한 작품이다보니 자세한 신화의 묘사보다는 이카루스의 모습에 집중한 작품이다.
Hendrick Goltzius, Icarus, from The Four Disgracers (1588), engraving; 34.2 x 33.7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양 미술사에서 "이카루스"라는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 영웅에 대해 그린 작품들은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다. 다시, 우리가 오늘 살펴볼 피터 브뤼헬 (부)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이라는 작품으로 돌아가보자.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6/1530–1569),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ca. 1558), oil on canvas mounted on wood ; 73.5 x 112 cm,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여기서 우리는 전경에 그려진 밭을 갈고 있는 농부, 그 뒤로 보이는 양치는 소년, 저 멀리 바다에 띄워진 멋진 범선등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의 비극적 영웅 이카루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눈썰미 있는 분들은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찾아보셨다면 이제쯤 찾으셨으리라.
그렇다. 이카루스는 진작에 하늘에서 떨어져서 벌써 바다에 빠진 상태다. 바다 위로 흩날리는 깃털 몇개를 제외하고는 그의 장대한 날개는 흔적도 없고, 겨우 그의 애처로운 다리가 허우적 거리는 것이 보인다. 이 대목에서 피터 브뤼헬의 어두운 유머감각이랄까 짖궂은 상상력이 발휘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몇 가지 작품에서 유사한 구도의 작품을 살펴볼 수 는 있다. 하지만, 그 작품들 모두에서는 작긴 하지만 확실하게 날개 달린 이카루스의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아래 보이는 작품은 한스 볼 혹은 작자미상의 동판화로 넓은 풍경을 배경으로 이카루스의 추락 장면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피터 브뤼헬 (부)의 작품과 유사하지만, 여전히 이카루스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는 데 피터 브뤼헬 (부)의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
Hans Bol, Anonymous, Fall of Icarus (c.1550-c.1650), engraving; h 127mm - w 185mm, Rijksmuseum
Joos de Momper the Younger (1564-1635),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oil on panel ; 154 x 173 cm, Nationalmuseum, Sweden
위의 작품 역시 밭을 가는 농부, 낚시하는 사람, 바다에 떠 있는 배와 같은 소재면에서는 피터 브뤼헬 (부)와 유사하나, 여기서도 하늘에 떠 있는 이카루스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반면, 피터 브뤼헬 (부)의 작품에서 이카루스의 영웅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다만 오만의 댓가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한 젊은이만 있는 것이다. 그의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주변의 인물들을 보자.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건만, 어느 누구도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심지어 그가 빠진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1588년의 네덜란드 화가는 인간이 타인의 불행에 얼마나 무감하고 무관심할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그러한 잔인한 진실을 한폭의 평화롭기 짝이 없는 풍경화를 통해서 다소의 유머까지 가미해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통렬한 진실 앞에서 감동 받은 것은 저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을 보고 느꼈던 깊은 감동은 영국계 미국 작가인 W.H. Auden에 의해서 아름다운 시로 탄생했다. 오늘의 그의 시를 읽으며 가지게 되는 여운을 간직하면서 마치도록 하겠다.
고통에 대해서 고전 대가들은 결코 틀린 법이 없었다. 인간의 입장에 대해서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던가.
.....
꽤 여유롭게 재난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지)
밭을 가는 농부는 첨벙하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구해달라는 외침도,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중대한 실패가 아니었다.
녹색의 물 속으로 사라져 가는 하얀 다리를 태양은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값비싼 배는 한 소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놀라운 장면을 분명히 목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야할 곳이 있었고, 조용히 항해를 계속해간다.
- W. H. Auden의 Musée des Beaux Arts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