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병오년 (丙午年) - 미술사에서의 말의 모습

by 민윤정

새해를 맞이해서 그 해의 십이지 동물에 대해서 살펴보는 포스팅을 올리곤 했다. 매년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돼지해에는 아기돼지 삼형제에 대해서, 용의 해에는 미술사에서의 용의 이미지에 대해서 올려봤었다.


올해 2026년은 말의 해, 병오년 (丙午年)이다. 육십간지의 43번째로 붉은색과 불의 기운을 지닌 ‘병(丙)’과 말을 상징하는 ‘오(午)’가 만나 ‘붉은 말의 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말의 해가 오면, 사람들은 대개 “힘차게 달리자” 같은 덕담을 떠올린다. 그런데 미술사에서 말은 단순한 길상의 동물이 아니다. 말은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 권력을 과시하는 방식, 그리고 속도와 폭력까지도 한 화면 안에 데려오는 장치였다. 그래서 말의 이미지를 따라가면, 동서양 미술이 무엇을 욕망했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말 이미지를 따라가면 “동물이 어떻게 그려졌나”를 넘어, 한 시대가 무엇을 힘이라고 불렀는지까지 보인다. 오늘 포스팅은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말의 의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대표작 몇 점을 통해서 훑어보려 한다.


1. 말이 등장하는 순간, 역사가 빨라졌다

동굴벽화 속 말은 놀랄 만큼 생생하다. 화가의 목적은 말의 품종을 구별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선이 적을수록, 오히려 움직임이 커진다. 미술의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 말은 이미 속도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 속 라스코 동굴 벽화 속 말의 모습은 그것이 기원전 약 17,000년경에 그려진 것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다. 바위의 굴곡을 말의 몸통처럼 쓰고, 최소한의 선으로 근육과 속도를 만들어냈다. 미술은 처음부터 ‘정지한 대상’보다 ‘살아 있는 힘’을 먼저 붙잡으려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은 인간의 시간을 바꿨다. 이동이 빨라졌고,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고, 소식과 물자의 흐름이 넓어졌다. 미술에서 말은 그 변화의 “가장 즉각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말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그려졌다. 사실적 묘사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에너지”다. 동굴의 굴곡을 몸통으로 삼고, 선 몇 개로 속도를 만든다. 미술이 처음부터 정지된 사물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이 증명한다.

〈라스코 동굴 (Lascaux caves)벽화의 말〉, 작가 미상, 기원전 약 17,000년경


라스코 동굴 (Lascaux caves)벽화의 말, 작가 미상, 기원전 약 17,000년경, 프랑스 라스코 지방의 라스코 동굴에 그려진 말 그림은 석기 시대 크로마뇽인들이 사냥길에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2. 고대 그리스에서 말은 ‘도시가 길들인 힘’이 되었다

라스코의 말이 자연의 힘이라면, 파르테논 프리즈의 말은 공동체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행렬 속 말은 제멋대로 뛰지 않는다. 보폭은 일정하고, 기수의 자세는 절제되어 있다. 그 절제감이 곧 폴리스의 질서를 보여준다. 말은 야생의 상징에서 국가의 이미지로 이동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는 여신 아테나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파나테나이오스 축제의 행렬을 묘사한 것이다. 이 프리즈는 앞서가는 기병대 뒤로 아테네의 시민들이 행렬이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다. 여기서 말은 ‘도시의 질서’에 편입된다. 축제의 행렬 속 말은 야생의 힘이 아니라, 공동체가 길들인 힘이다. 근육과 긴장감은 살아있지만, 폭주하지 않는다. 아테네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위상, 그리고 시민들의 자부심이 들어나는 이 프리즈는 말이 가진 힘을 도시의 리듬 속에 넣어버린 장면이다. 고대가 꿈꾼 이상적 질서가 말의 움직임으로 시각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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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 프리즈의 기병, 서쪽 II, 2–3, 대영 박물관


3. “권력은 왜 말 위에 올라탔나” — 기마상이 만든 정치의 문법

서양에서 기마상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고 권력의 시각 언어였다. 말 위에 올라탄다는 건, “내가 이 힘을 통제한다”는 선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지 속에서 말이 사람을 더 크게 보이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권위는 말의 몸집과 균형 위에 세워진다. 말이 크고 안정적으로 보일수록, 통치도 안정적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로는 사람이 말을 통제하지만, 이미지에서는 말이 사람을 권위로 들어 올린다는 사실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서기 2세기경, 청동,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

고대부터 로마에서 널리 볼 수 있었던 2세기 로마 시대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청동 기마상은 르네상스 시대에 기마상 양식이 부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의 경우, 말 한 발이 들려 있어도 전체으로 안정적인 모습이다. 이를 통해서 ‘흔들림 없는 균형’이 곧 ‘흔들림 없는 통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기마상은 권력을 가장 직접적으로 설득하는 이미지였다.


도나텔로, 〈가타멜라타 기마상〉(1453경)

도나텔로의 〈가타멜라타 기마상〉(1453경)은 르네상스가 고대 로마의 기념비 전통을 되살려 만든 최초의 본격적 청동 기마 기념상으로 꼽힌다. 르네상스는 고대를 ‘복원’했지만, 그대로 복제하지는 않았다. 도나텔로의 말은 고전적 위엄을 갖고도 더 현실적인 무게를 가진다. 이때부터 기마상은 “고대의 권위 + 근대의 개인 영웅”이라는 혼합물이 된다.


작품은 파도바 산토 성당 앞에 세워져 있다.기마상의 주인공인 가타멜라타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콘도티에로(용병대장)였던 에라스모 다 나르니의 별칭이다. 도나텔로는 그를 신화적 영웅으로 과장하지 않고 절제된 자세와 응시로 통솔력과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말의 발 아래의 구(球)는 상징처럼 보이면서도 조각의 균형을 지탱하는 장치다. 이 작품은 개인의 명예와 도시의 정치가 예술 속에서 어떻게 기념비로 결합하는지 보여준다.


4. 동아시아에서 말은 ‘군마’이면서 ‘문인의 취향’

동양에서의 말의 모습은 어땠을까?

동양 회화에서 말은 국가와 군사력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감식안과 화가의 필력을 시험하는 소재였다. 말은 그리기 어렵다. 특히 목의 힘, 눈빛, 다리의 긴장감은 조금만 어긋나도 금세 생기가 죽는다. 그래서 좋은 말 그림은 대개 “멋진 동물”을 보여주는 동시에 “억눌린 생명력”을 드러내고 이와 함께 화가의 기량을 한눈에 보여준다.


동한, 〈마답비연〉(馬踏飛燕, ‘나는 제비를 밟는 말’로도 번역됨), 2세기경, 중국

동한의 〈마답비연〉(馬踏飛燕)은 '날고 있는 제비를 밟는 말’로도 번역된다. 말의 네 발 중 하나가 제비 위에 닿아 있는 이 작품은 “빠르다”는 개념을 조각으로 해결한 명작으로 꼽힌다. 속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 이 작품은 속도를 조형으로 바꿔버린 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미래파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간(韓幹), 〈조야백도照夜白圖 (Night-Shining White)〉, 당 8세기, 두루마리(전해지는 형식 기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당나라의 대표적인 말 그림 화가였던 한간(韓幹)은 말의 외형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포착해내는 재능을 지녔다고 알려져있다. 그가 그린 〈조야백도(照夜白圖, Night-Shining White)〉는 왕실의 명마를 그린 작품으로 중국 회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말 초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한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현종(재위 712~756)의 군마를 그린 초상화다. 불타는 듯한 눈빛, 벌렁거리는 콧구멍, 그리고 춤추듯 달리는 발굽을 가진 이 불같은 성격의 말은 중앙아시아의 신화에 나오는 "피땀을 흘리는" "천마", 즉 용이 변장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후대 소유자와 감상자들이 그림과 테두리에 남긴 인장과 글귀는 중국 수집 및 감정 문화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천 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새겨진 인장과 글귀는 작품의 전승과 후대에 미친 영향을 생생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말의 눈빛과 목의 긴장감이다. 고삐에 매여있는 이 말은 자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갇힌 생명이라는 것임을 보여준다. 왕실의 명마를 그렸지만, 실은 권력의 초상에 가깝다. 말의 목과 눈, 묶인 끈에서 긴장과 억압이 함께 느껴진다. ‘명마의 위엄’과 ‘갇힌 생명’이 동시에 보이는 점이 중요하다.


5. 신고전주의에 말은 ‘영웅 제조기’가 된다 — 정치가 이미지를 쓰는 방식

서양에서 근대 국가가 발전하면서,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을 “어떻게 보이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신고전주의의 대표작가인 자크-루이 다비드이 그린 나폴레옹의 모습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용맹스러워보이는 말 위에 탄 위용 가득한 나폴레옹의 모습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오히려 핵심이다. 이 그림은 역사 기록이 아니라 정치 이미지다. 말은 과장된 동작으로 영웅의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자크-루이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날뛰는 말의 자세는 ‘역사를 밀어붙이는 힘’으로 읽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실제보다 더 드라마틱해야 더 설득력 있는 시대였다. 근대 정치가 이미지를 통해 대중을 설득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자크-루이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자크-루이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Jacques-Louis David (1748-1825), Napoleon Crossing the Alps (1800) oil on canvas ; 259 x 221 cm, Château de Malmaison


6. 근대의 말: 속도, 스포츠, 그리고 ‘관찰’의 시대

19세기 이후 말은 전쟁뿐 아니라 스포츠와 도시 문화로 들어온다. 동시에 사진과 과학이 등장하면서, 말은 “보이는 것”과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실험 대상이 된다.


조지 스텁스, 〈휘슬재킷〉(Whistlejacket), 1762, 런던 내셔널 갤러리

조지 스텁스의 〈휘슬재킷〉(Whistlejacket, 약 1762)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말 한 마리를 실물 크기에 가깝게 그린 대형 유화다. 화면에는 말만 등장한다. 배경도 거의 비워 두고, 기수나 마구(안장·고삐) 같은 장치도 최소화했다.


제작 배경의 핵심은 “말 자체를 주인공으로 세운 귀족 후원”이다. 이 작품은 18세기 영국의 유력 정치가이자 대지주였던 록킹엄 후작(Marquess of Rockingham)이 소유한 명마를 그린 것이다. 18세기 영국 상류층 사회에서 경마와 혈통마 사육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명마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취향, 재력, ‘신사’로서의 위신을 소유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유명 화가에게 말의 초상을 의뢰했다. 사람의 초상화가 가문과 권위를 고정하듯, 말의 초상도 그 역할을 맡았다. 이 작품 역시 말의 위상을 ‘초상화’ 수준으로 기념하려는 맥락에서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상류층 사이에서 경마·혈통마(Thoroughbred)·마구 문화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재력과 취향,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장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 조지 스텁스는 말의 해부와 동세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화가로 잘 알려져있다. 이런 작가의 역량 덕분에 그는 “풍경 속의 말”이 아니라, 배경을 거의 비워 말의 몸과 움직임만으로 화면을 장악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었다. 기수나 안장 같은 ‘인간의 흔적’을 지워버린 것도 같은 이유다. 말이 곧 주인공이며, 소유자의 권위는 말의 존재감으로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스텁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동시대 조슈아 레이놀즈 같은 화가가 ‘그랜드 매너’로 인물을 영웅처럼 격상시켰다면, 스텁스는 말을 영웅화했다. 배경을 거의 비우고, 기수나 안장 같은 ‘인간의 장치’를 지운다. 남는 것은 말의 몸뿐이다. 이 방식은 “우리 집 말이 얼마나 훌륭한가”라는 자랑을 넘어, 말 자체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이자 주인공으로 선언하는 효과를 만든다.


이 선택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 있다. 스텁스는 말의 움직임을 감각으로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해부학적 관찰과 기록을 바탕으로 말의 구조를 이해하려 했고, 이런 태도는 계몽주의 시대의 경험주의적 시선과도 닿아 있다. 그 연구는 훗날 그의 저서《The Anatomy of the Horse》(1766)에서 정리된다. 다시 말해, 〈휘슬재킷〉은 귀족 후원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자연을 “정확히 보려는 시대의 눈”을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로사 보뇌르 Rosa Bonheur (1822–1899), The Horse Fair (1852-55) MET


로사 보뇌르 Rosa Bonheur (1822–1899), The Horse Fair (1852-55) oil on canvas ; 244.5 x 506.7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번에는 로자 보뇌르 〈말 시장(The Horse Fair)〉(1852–55)를 살펴보자. 로자 보뇌르는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동물화(특히 말·소) 전문 화가다. 〈말 시장〉은 그녀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으로, 파리의 실제 말 거래 시장을 소재로, 흥분한 말들이 원형으로 몰려 달리는 장면을 그렸다. 인간은 ‘주인공’이라기보다 말의 힘을 통제하려 애쓰는 존재로 등장한다. 화면의 주도권은 말의 근육과 질주가 쥐고 있다.


이 작품은 말의 해부학적 정확성과 운동감을 결합해, 동물화를 풍속화나 장식적 동물그림의 수준을 넘어 ‘근대 도시의 에너지’로 끌어올렸다는데 의의가 있다. 보뇌르는 현장 관찰을 위해 말 시장, 마구간, 도축장 등을 드나들며 스케치와 연구를 반복했다. 당시 여성 화가에게 쉽지 않은 현장 접근을 위해 남성복을 입고 다니며 작업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9세기 중반 회화가 집착한 주제인 현대성(도시, 시장, 노동)을 ‘말’이라는 소재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보뇌르가 여성 작가였다는 사실은 단순한 이력 정보가 아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여성은 거친 남성 노동 현장에 드나들기 어렵고, 해부학적 연구나 동물 관찰 역시 제약이 컸다. 보뇌르는 그런 한계를 우회하기 위해 현장을 집요하게 관찰했고, 필요할 때는 남성복 착용 허가를 받아 작업했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말의 에너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 정확성과 규모는, “여성은 이 장르를 다루기 어렵다”는 당시의 통념을 정면으로 깨뜨린다.


정리하면, 스텁스가 말로 귀족 사회의 품격을 고정했다면, 보뇌르는 말로 근대 도시의 힘과 긴장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그 폭발을 가능하게 한 관찰과 연구의 집요함은, 여성 작가로서 마주한 제약을 뚫고 나간 작업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Muybridge_race_horse_animated.gif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의 연속사진(달리는 말), 1870년대


1870년대 접어들면서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의 달리는 말의 모습을 연속적으로 찍은 모습은 “말이 달릴 때 네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이전에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의 모습은 두 앞발은 앞쪽으로, 뒷발은 뒷쪽으로 뻗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과학적 관찰 결과, 말이 아무리 속도를 내서 달리더라도 한 발은 반드시 땅에 닿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회화가 오랫동안 상상으로 처리하던 동작이 관찰로 교정된 것이다. 이후의 미술은 속도를 더 과감하게 다루게 된다.


Edgar Degas, Race Horses (ca.1885-88) pastel on wood ; 30.2 x 40.6 cm, MET


발레하는 소녀들의 그림으로 친숙한 에드가 드가는 경마하는 모습을 많이 그린 작가로도 유명하다. 고전 작품들과 달리 드가의 말은 영웅적이지 않다. 스포츠의 순간, 준비의 순간, 긴장과 루틴이 더 중요하다. 말은 근대의 여가문화와 시선의 습관을 보여준다.


7. 20세기, 현대미술의 말: 아름다움보다 불안이 앞선다. 말은 승리의 상징에서 ‘전쟁의 증언자’가 된다

20세기에 말은 더 이상 “승리”의 상징만은 아니다. 전쟁과 폭력의 기억 속에서 말은 찢기고, 비명 지르고, 인간과 함께 무너진다.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Blue Horses (1911) Walker Art Center

프란츠 마르크 Franz Marc, Blue Horses (1911) oil on canvas ; 105.7 × 181.2 cm,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Minnesota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는 말 그림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독일 표현주의 화가다. 마르크는 인간 사회를 불신했다. 물질주의와 소음, 도덕적 타락이 세계를 오염시킨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동물을 인간보다 더 순수한 존재, 더 근원적인 생명의 리듬을 간직한 존재로 여겼다. 말, 사슴, 여우 같은 동물은 그에게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잃어버린 순수한 세계에 대한 동경을 담는 매개였다.


마르크의 말은 사실적인 동물 묘사가 아니다. 굵게 단순화된 윤곽, 덩어리처럼 맞물린 형태, 그리고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색채가 핵심이다. 대표적으로 〈푸른 말 I〉(Blue Horse I, 1911)에서 말은 자연 속의 한 동물이 아니라,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상징적 존재로 서 있다. 파랑은 ‘말의 색’이 아니라, 마르크가 부여한 정신적 분위기다. 마르크의 말은 “잘 그린 말”이 아니라, 순수함과 영성, 자연과의 합일을 시각화한 상징이다. 그리고 그 상징을 가능하게 한 도구가 바로 색이었다.


기마상의 말이 권력을 돋보이게 했다면, 20세기의 말은 권력이 남긴 폭력을 드러낸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에서 말은 아름답지도, 위엄 있지도 않다. 찢기고 비명을 지른다. 말은 인간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같은 편에서 고통을 겪는 생명으로 등장한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 유화,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는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일으킨 쿠데타를 계기로 일어난 스페인 내전 중에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가 폭격당한 사건을 계기로 그려진 대형 반전(反戰) 회화다. 피카소는 당시 남성들은 참전 중인 상태라 피해를 입은 것이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들이라는 사실에 크게 분노해서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이 후 이 작품은 순회 전시를 통해 엄청난 구호기금을 모금했다.


흑백에 가까운 단색과 파편화된 인물·동물의 형상을 통해 공포, 폭력, 그리고 애도의 정서를 응축해 보여준다. 특정 전투의 기록을 넘어, 전쟁이 민간인에게 남기는 파괴를 상징하는 20세기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황소가 상징의 다층성을 담당한다면, 화면 중앙의 말은 폭격의 공포를 몸으로 증언한다. 여기서 말은 더 이상 인간의 도구가 아니다. 인간과 함께 희생되는 생명이다. 고전적 영웅담의 말이 무너지고, 희생자의 말이 등장한다. 말 이미지의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전환점이다.


말은 오래도록 인간의 힘을 상징했다. 그런데 그 힘은 한 번도 순수한 힘이 아니었다. 말은 인간이 만든 문명의 속도를 상징했고, 그 속도를 가능하게 한 폭력까지도 함께 품었다. 제국의 확장도, 영웅의 신화도, 근대의 속도도, 전쟁의 참상도 말의 몸 위에 얹혀 있었다. 그래서 말 그림은 언제나 “아름다운 동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이 힘을 다루는 방식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말의 해에 말 그림을 다시 본다는 것은, 단순한 길상 소비가 아니라 새해의 기운을 빌리는 동시에 우리의 문명 감각을 점검하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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