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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난 살아간다

슬픔을 잊기 위해 감사를 떠올리다

by Lucia

갓 대학신입생 때, 우리 성당에 부임하신 작은 수녀님.

그땐 나도 어렸고 수녀님도 30대 초반, 지금으로 치면 어린 나이셨다. 10살 이상 차이나는 수녀님이 내겐 범접할 수 없는 어른이셨는데...


88년도에 만나서 89년도에 헤어졌으니 잊을 법도

한데 내겐 첫 수녀님이고 수녀님에게 난 성당반주를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열심히 하는 기특한 아이로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었던 것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늘 우울했던 나는 미사반주를

하며 마음을 다잡았고, 수녀님은 당신이 받은 선물들을 기특한 나에게 챙겨주셨더랬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수녀님은 다른 성당으로

떠나셨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니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고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참 보고 싶었다.


그 후로 30여 년이 세월이 지나고,

아주 우연한 기회에 수녀님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설마 나를 기억하실까... 기억 못 하실지도...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는 삼십 년 전이나 똑같으셔^^



수녀님, 저 공덕성당 루시아예요.

루시아! 내가 너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니?

어머나~살아있으니 이렇게 너를 만나는구나.



다 울컥해서, 그간의 얘기를 쏟아내고는

당장 만나자고 하셔서 수녀님이 계신 전주 수도원으로달음에 달려가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더랬다.

나를 오랜 세월 그리워해준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후로 틈틈이 안부를 전하고, 가끔 만나기도 한다.

우리 수녀님, 이제 환갑이 훨씬 지나셨고, 극좌(?) 파 멋진 수도자이다.

몇 달 전엔 뜬금없이 찾아오셔서 봉투에 용돈도

주고 가셨다. 수녀님 마음에 나는 영원한 학생인 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라고 문자 드렸더니, 편찮으시다고 기도해 달라고 하신다.

씩씩하고 건강하신 분인데ㅜㅜ

지금 포천에 계시니 조만간 뵈러 가야겠다.

수녀님께 솜이 얘기도 하면서 그때 그시절처럼

위로받고 와야겠디.


아프시다면서도 내게 이 영상을 보내주셨다.

수녀님이 계신 수도회에서 수녀님들이 눈싸움

하신다.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다. 천진난만(나이는 그렇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아이들 모습이 보여 웃음이 난다.

이렇게 순수하게 나이 먹었으면 좋겠다.

수녀님들 환한 모습에 치유받으며,

어느새 다가온 2월을 밝게 맞이하련다~


사비나수녀님... 빨리 나으세요.

루시아가 맛난 거 사 갖고 곧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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