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난 우리 엄마랑 그닥 살가운 모녀사이가 아니다.
젊은 나이에 시집을 와서 병든 시부모와 시누, 그리고 수시로 드나드는 시조카들,
사람 좋아하는 남편땜에 한밤중에도 손님들이 찾아오는, 그야말로 지금의 상황이라면 당장
이혼해도 뭐라 할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내가 태어났다.
게다가 내 밑으로 연년생 동생들이 줄줄이 셋이나 있었으니 큰 딸인 나에게 정을 붙일 새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린나이에도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 부모님을 대신해야 하는 그런 존재였고,
그 상황은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마찬가지이다.
엄마이지만 내겐 너무나 쌀쌀한 존재였다.
그런 엄마가 어느새 나이가 드니 내게 한 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고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첨엔 좀 짜증이 났다. 나 어릴적 그렇게 쌀쌀하게 대할땐 언제고 이제 와서 왜.
애증의 감정이 교차하면서 한동안은 엄마의 나약한 모습도 보기 싫고 내게 의지하는 것도 싫었다.
근데, 내나이 40, 50이 넘어가고 울엄마 나이도 70,80이 넘으니 이젠 엄마로서가 아닌 한 여자의 일생으로서 참 안됐다는 마음이 생겼다.
고생고생 하다가 이제 좀 살만하니 남편 먼저 하늘나라 보내고, 게다가 알츠하이머 진단까지.
(엄만 본인이 치매라는 사실을 모른다. 다행히 치매 초기라서 일상생활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지만, 자식 입장에서 안쓰럽고 불쌍하다.부디 이상태로만 유지되길.)
대략 이십 오년 전쯤.
아마도 울 엄마가 갱년기를 겪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 날 내게 뜬금없이 <요즘은 서글픈 생각이 많이 든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날 어둔 골목길을 같이 걸으며 내게 말을 걸던 그 순간, 그 감정이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나이 30대 초반이라 엄마 입장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 살갑지 않은 엄마가 뜬금없이 나한테 왜이래! 그냥 무시하고 싶었다.
무시하고 싶지만 가슴 한켠엔 착 달라붙어 세월이 지나도 안떨어지는 찐득한 그 무엇.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안하다. 갱년기 겪으면서 신체와 정신의 여러가지 변화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을 울 엄마가 큰 딸한테 힘들게 얘기 꺼냈을텐테...
내가 사춘기때 울 엄마가 내 상황을 받아주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엄마의 갱년기를 받아주기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생 많았을 울 엄마도 불쌍하고, 그 상황에 모든 화풀이 대상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도 참 안됐다. 성장하면서 지나치게 어른들과 주변의 눈치를 보는것도, 슬픔의 감정이 건드려지면 둑 터지듯이 무너지는 것도 이런 환경의 영향이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솜이를 잃고 나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우리 솜이 생각에 가슴 아픈게 가장 크지만, 솜이로 하여금 내 안의 슬픔들이 모조리 들고 일어나 나를 삼켜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의 내 나이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는 예전 울 엄마의 나이와 비슷하다.
엄마의 감정상태와 비슷한 걸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의 전환기에 맞은 우리 솜이와의 이별.
인생의 후반기를 맞이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 것,
깊은 슬픔은 쉼 없이 달려온 50평생을 되돌아보며 남은 인생의 목표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솜이가 내게 준 귀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오늘따라 온전한 사랑만을 주고 떠난 우리 솜이, 우리 막둥이가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