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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엄마네 골목에는...

보고 싶은 할매들~

by Lucia

엄마의 알츠하이머가 조금씩 나빠지는 것 같다.

아빠 형제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모도 많이 안 좋으시다.

매일매일 엄마를 챙기지만 이런 날이 곧 끝날까 봐 두렵다.

엄마집을 나서며 가을바람에 스산한 골목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 그리움이 몰려온다.


엄마가 대흥동 골목집에 이사 온 게 어느덧 30년이 다 되어간다.

당시엔 골목골목 손주 봐주는 할머니들이 많았고 날씨 좋은 날엔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마늘도 까고

동네 이상한 여편네 흉도 보면서 김장 품앗이 하던 시절이었다.

울 딸을 기점으로 점점 애기는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동기간처럼 지내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몇 년 전부터 한분 두 분 천국으로 가시기 시작했다.

카부집 할머니네 낮은 담벼락은 동네 할머니들의 벤치였다. 울 딸내미도 할머니들 손에 컸다.

할머니들은 각자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그들만의 애칭이 있었다.

우리들 기준으로 보면 닉네임이랄까.

할머니들의 닉네임은 참 구수하고 정겹다.


코너에 집이 있는 할머니는 <카부집할머니>

언덕에 집이 있는 할머니는 <내리막길 형님>

빨간 바지 입고 다니는 할머니는 <빨간 바지>

옆집할머니는 <이쁜 할머니_울 딸이 어렸을 때 이쁜 할머니라 불렀던 그대로 애칭이 되어 돌아가시는 날까지, 지금까지도 이쁜 할머니로 통한다>

그 밖에도 이발사, 미장원여자, 택시운전수, 운전수마누라, 까만 차여편네 등등 그들만의 애칭으로 메마른 서울 한복판에서 지루한 노년시기를 나름 재미나게 보내셨는데...


얼마 전 미장원(동네 할머니들의 아지트)에 다녀온 엄마는 카부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몇날 며칠을 우울해 하셨다.

한동안 안보이셔서 걱정했는데 돌아가셨다고...

그나마 제일 친했던 할머니라 상심이 크셨다.

며칠 후, 엄만 다른 루트를 통해 카부집 할머니가 딸네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미장원집 여자를 비난하고 계신다. ㅎㅎㅎ

빨간바지 할머지집과 이쁜 할머니집. 늘 활짝 열려있던 이쁜 할머니네 대문은 항상 닫혀있다.
내리막길 형님 할머니는 치매가 심해서 집 밖으로 거동이 힘드시다. 얌전하고 고상한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그립니다.

한분 두 분 천국으로 떠나시니, 골목은 애들도 없고 할머니들도 없는, 쓸쓸한 풍경이 되었다.

할머니들 수다소리로 시끌시끌하던 그때가 그립다.

엄니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그때가 더 그립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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