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무시하게 추웠던 그 해 크리스마스
해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15년 전 그때의 일이 어제 일처럼 선명해진다.
그때 그 느낌과 감정, 분위기, 살을 에는듯한 살벌한 추위와 바람, 그 모든 상황이 마치 슬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2010년 12월 24일.
그날은 싱글맘이 된 후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예상치 못했던, 원치 않았던 싱글맘이 된 후 갓 두 돌이 지난 딸내미를 데리고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을 해야 하는 고된 나날들이 계속되던 때였다.
그야말로 길고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갇힌듯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많은 나이에 여러 차례의 시험관 시술로 귀하게 얻은 딸내미에게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내 인생에 감히 떠올릴 수도 없었던 이혼이라는 황당한 상황.
이래저래 자존감은 바닥을 뚫고 지하에 납작 엎드려 세상을 향해 얼굴을 들기도 힘들었던 나날들...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건 사고들로 (물론 나와 내 가족에게만 해당되지만) 온몸과 마음이 만신창이
가 되었지만 3살이 된 내 아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만은 꼭 해주고 싶었다.
멀쩡하게 잘 살던 집에서 쫓겨나 용산 꼭대기에 간신히 얻은 원룸에서 생활하던 우리 모녀는 유난히 층간 소음에 예민한 아래층 여인의 등살에 밤늦은 시간에 들어가 잠만 자고 아침에 일찍 나오기를 반복했었다.
그날도 날씨는 엄청 추웠지만, 일찍 들어갈 수도 없고,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집에 일찍 들어가기도 싫어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홈플러스로 향했다.
쇼핑카트에 아이를 태우고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신발을 하나 사주려고 매장에 들어섰다.
예전 같으면 좀 싼 것으로 가격을 보고 골랐을 텐데 (발이 금방 자라니 사실 비싼 게 의미가 없다.) 그날은 그냥 아이가 고르는 거 가격도 안 보고 사주리 라 마음먹었다.
부모 잘못 만나 어려서부터 고생하는 딸내미가 안쓰럽고, 순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가 고마워 큰 맘먹고 좋은 신발을 사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고르라고 했더니 빨간색이 들어간 반짝이 운동화를 품에 안고는 너무 이쁘다고 좋아한다.
약 5만 원가량 했던 거 같은데 (그 당시 내 형편엔 꽤 사치를 부린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눈 질끈 감고 계산을 해버렸다. 다른 신발들은 전혀 생각이 안 나는데 지금도 그 빨간 운동화는 눈에 선하다.
마트가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야 (그 당시엔 자정까지 운영을 했던 것 같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치 않다.
마트를 들어갈 땐 이 정도로 춥진 않았는데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바람이 무섭게 불었다.
체감온도가 거의 영하 20도가량 되고 뉴스에서는 동파에 주의하라는 긴급 뉴스가 나오고 있다.
내가 운영했던 작은 학원에 혹여 수도가 터질까 봐 그 밤중에 가서 수도를 열어놓고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던 길. 얼마나 얼마나 춥던지...
크리스마스이브날에 우리에겐 왜 예수님이 오시지 않고 이토록 시련을 주시는 걸까~
원망을 하며 이 추운 광야에 우리 모녀만 덩그러니 던져진 거 같은 극심한 외로움과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만 되면 그 매서웠던 칼바람의 감촉이 생생히 되살아 난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고3이 되는 딸내미에게 이쁜 카디건을 선물했다.
내 맘에 쏙 들어~ 하면서 좋아하는 딸내미 얼굴에 빨간 운동화를 가슴에 안고 좋아하던 3살짜리 어린
딸내미 얼굴이 겹쳐진다.
그런 힘든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너무나 빠르다.
이젠 엄마 건강을 걱정하고 챙기는 어엿한 숙녀가 되었다.
아빠의 부재가 큰 상처가 되었을 거라 미루어 짐작하지만 단 한 번도 내색을 하지 않는 기특한 딸내미.
누군가 말했듯 결핍이 우리의 에너지가 되어 그래도 참 열심히 살았던 지난 15년이다.
세상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나.
우리의 고난에도 분명 헤아리지 못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는다. 지나고 나면 왜 그랬는지 알게 되겠지.
그 고통도 추억이 되겠지.
올핸 참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
이젠 아픔까지 사랑해야겠다. 그 또한 내 소중한 삶의 일부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