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불면의 밤
일하랴 살림하랴 엄마 챙기랴 늘 시간이 부족하고 매일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다 보면 금세 체력이 바닥난다.
밤엔 거의 실신하듯 잠이 들고, 낮에도 항상 피곤함을 달고 산다.
이상하게 컨디션이 좋고 피곤하지 않은 날엔 (한 달이면 거의 손꼽을 만큼이지만)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니
만성 피로 증후군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래도 한숨 푹 자고 나면 살만했다. 공포의 불면증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50살이 넘어서면서 내게도 갱년기라는 게 찾아왔다.
40대 때 50대 선배들의 갱년기에 대한 각자의 다양한 증상을 들으며 <팔자가 편해서 그래 나처럼 사는데 바쁘면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을걸...> 이렇게 생각했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집에서 누워만 지낸다는 분도 계셨고, 여기저기 너무 아프고 우울하다는 분도 계셨다. 갱년기 증세라는 것이 너무도 다양하고 증세의 경중도 달라서 나의 갱년기를 예상할 수도 없었고, 사는데 바쁜 사람이 갱년기를 느낄 새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암튼 갱년기는 내겐 환상의 증세일 뿐이었다.
난 바빠서 갱년기도 사치일 거야. 마치 내 사춘기처럼.
(내 사춘기는 아버지의 부도로 가슴 한구석에 깊이 묻어두고 지나가야 했다.)
그런데...
드디어 내게도 찾아왔다. 마치 사춘기를 제대로 못 겪어봤으니 이젠 다른 사람들처럼 갱년기는 제대로 경험해 봐야지? 하는 느낌적 느낌.
얼굴이 화끈거리고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한다는데, 그건 잠시 잠깐 왔다 갔다.
물론 지금도 아주 가끔 그러긴 하지만.
일단 관절들이 욱신욱신 아프다. 검사해 보면 이상이 없단다.
손가락이고 무릎이고 움직일 때마다 엄마가 항상 내는 소리가 내입에서도 나온다. 아이고아이고~
(딸내미가 말을 더듬더듬 시작할 무렵 어느 날 갑자기 애가 일어나면서 아이고 아이고 하길래 배꼽을 잡았다.
할머니가 하는 말을 억양까지 똑같이, 엉거주춤 일어나는 포즈까지 취해가면서 따라 하더라)
어깨는 왜 또 이렇게 아픈지.
옆으로 돌아눕기가 힘들다. 급기야 팔이 저려서 병원에 갔더니 인대에 염증이 생겼단다. 노화의 일종이란다.
그다음은, 무기력증.
솜이가 떠난 후 우울과 더불어 무기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방안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도 손이 가질 않는다. 저걸 주워서 버려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극도의 무기력감. 간신히 꼭 필요한 일만 하면서도 극심한 피로감에 자꾸 지쳐 쓰러져 잤다.
이런 다양한 증상들을 겪으면서 친구들은 어찌 지내나 연락을 해봤더니,
여러 운동을 섭렵한, 갱년기의 ㄱ 자도 모를 거 같은 친구가 내게 해준말이 가슴에 꽂힌다.
<친구들하고 얘기하면서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를 확인하며 위로받고 있는 중>
이 말이 내게도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한참을 고생하다가 서서히 회복하나 싶더니, 웬걸~ 최악의 불면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밤에 잠이 안 오면 책을 보던지 다른걸 좀 하다가 자면 되는데 꼭 두어 시간 지나면 눈이 반짝 떠진다.
누가 부르는 것도 아닌데, 정말 눈이 반짝! 떠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잠이 안 온다.
다음날엔 일을 해야 하는데 잠이 안 오면 정말 미칠 지경이다.
잠을 못 자니 항상 예민한 상태이고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래서 든 생각이 갱년기가 사춘기를 이긴다는 게 이거구나 싶다.
그래도 사춘기는 잠이라도 자니까. 잠 못 자고 있는 대로 칼날처럼 예민한 갱년기를 당하기 쉽지 않지.
게다가 나는 운전하고 다닐 일이 많은데, 덜컹 겁이 난다. (실제로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기도 했다.)
자칫 대형 사고가 될 뻔했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수면제 처방을 받기로 했다.
수면제를 안 먹으려고 온갖 수면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니 운동이니, 심지어는 아로마세러피까지 해보았는데 그때뿐이니 이젠 약을 먹어야 할 때다.
병원에서 수면유도제와 수면유지제를 처방받았다.
일단 약을 먹으면 마치 수면 내시경 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최소한 6시간은 깨지 않고 잘 수 있어서 좀 살 것 같았다.
근데, 문제는...
며칠을 수면제를 먹고 잔 다음날 아침에 보니 내가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일어나 보니 그 밤에 내가 문자를 보냈다.
어머나, 이게 부작용이라는 거구나.
어떤 날 아침엔 아로마 뚜껑이 다 열려 있다. (불면증에 좋은 아로마가 항상 머리맡에 있어서 잠이 안올때마다 바르곤 한다.) 그런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놀라서 약 이름을 검색해 보니 그 유명한 <졸피뎀>
약효는 좋으나 그만큼 심각한 부작용이 있으니 마냥 먹을 수도 없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여 일단은 졸피뎀을 끊고 수면 유지하는 약을 먹어보기로 했다.
물론 그 약도 꼭 필요할 때만 먹으라고 한다.
<선생님,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요?> 했더니 아마 점점 더 심해지실 걸요? 이러신다.
나이 들수록 불면은 더 심해질 거라고.
오늘 그 얘길 듣고 오니,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새벽에 눈을 뜨고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어쩌겠나.
한 시간 남짓 글을 쓰고 나니 이제 슬슬 눈꺼풀이 무겁다.
두어 시간 자다가 출근해야지.
이 세상의 모든 갱년기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대들만 아픈 게 아니라네~
언제 한번 다 같이 모여서 불면의 밤을 함께 보내는 행사를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