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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Aug 28. 2016

동성애를 설득하는 또 하나의 방식

<캐롤>

                                                                                                                                                                    

 영화를 본 후에도 케이트 블란쳇이 아직도 근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영화를 보는 내내 케이트 블란쳇의 숨결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냈다. 케이트 블란쳇이 머리를 넘기는 모습, 애절하고 강렬하면서도 욕망이 담긴 눈빛은 그녀가 가지고 있을 사랑의 힘을 가늠하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영화를 보면서 어울리지 않게도 나는 <화양연화>를 떠올렸다. 특히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이 계단에서 서로 스쳐가는 슬로우비디오 씬이 떠올랐다. 마음 속에 어떤 색깔의 욕망을 담고 있건 그 분위기를 밖으로 끌어내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힘이 이 영화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많은 대사를 담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상의 힘이 강해졌다. 

   두 여자 사이의 사랑을 보면서 동성애가 아닌 이성애적 영화를 떠올린 것도 특이한 일이다. 동성애 영화는 관객에게 동성애의 진정성을 설득하려고 한다. 성공한 동성애 영화들은 바로 그런 면에서 성공한 영화들이다. 동성 간의 애성씬을 보면서도 동성보다는 그 둘 사이의 정서나 감정, 고통이 더 크게 부각된다. 그런 면에서 가장 설득력을 발휘했던 영화가 <브로크백 마운틴>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에서는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려고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테레즈는 자신이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왔고 자신의 동성애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뜬 것은 캐롤을 발견하고 나서부터이다. 테레즈는 처음에는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인정하지 않는다.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버리지 않고 지속시킨다. 반대로 캐롤은 이전부터 동성애적인 정서를 경험한 채로 테레즈를 만났다. 그래서 그녀의 눈빛에서 동성애 가능성을 발견했을 것이며 관계 형성의 시작은 테레즈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이성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할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 지점이 이성애와 동성애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캐롤은 그 시대의 남성들을 대변하는 남편의 가부장적 지배에 진저리를 내는 여성이다.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고 그것이 맞는 일임을 주지시키는 남성에게서 더 이상 어떤 것도 기대할 수가 없으며 사랑이란 신비로운 감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더군다나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자신의 성향이 체제 안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지만 그래도 그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은 딸의 양육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은 피같은 딸의 양육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악한 일이다. 테레즈 역시 이성애라는 정상으로 알려진 영역에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지만 그것은 정상의 가면을 얻는 대신 자신을 버리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이성애자들의 파티에서 자신이 그 영역에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가장 강렬한 엔딩씬에서 여러 곳을 헤매던 (캐롤과 테레즈)의 눈동자가 서로 만나는 순간 이 세상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하고 만다. 그리고 그 기운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엔딩 씬에서 테레즈를 바라보는 케이트 블란쳇의 눈빛은 이 영화의 화룡정점이다. 힘들고 혼란스러운 여정의 시작이지만 그 순간만은 둘만의 완벽한 승리의 순간이다. 이성애자라고 해서 그 점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주장하는 지점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신경증자 재스민의 영화로 버티기>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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