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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Oct 22. 2016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

우리에게는 또 다른 고뇌

  이 영화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가슴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책임자가 끝까지 남아 서서히 물이 올라차고 있는 비행기의 기체 내부를 둘러보는 모습은 특히 그렇다. 이런 장면은 우리에게 아픈 기억이 없다면 정말 흐믓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불행히도 우리 국민에게는 이 장면을 마음 놓고 볼 수가 없다. 우리에겐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설리 기장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다. 단 한명도 희생시키지 않고 155명 전원을 구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밤마다 악몽에 시딜리며 위기의 순간을 반추한다. 그래서 새벽마다 그는 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그의 자신 괴롭히기는 우리에게는 사치스러운 일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사회적인 생명을 위태롭게 할만큼 중대한 일이다. 자신의 선택이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을까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줄 수는 없다. 목숨을 살리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었을 거란 가정이 그를 해방시켜주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그가 다른 길을 선택했을 경우에 대한 확실한 답이 필요하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반증이 필요한 것이다.  

  이 영화의 결말이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준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그런 의혹의 여지를 말끔하게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고통스런 재현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고통이라면 고통일까. 떠올리기 힘든 심장 떨리는순간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이미 성공한 이후에도 왜 그런 물음이 필요한 것일까. 결과가 좋다면 우리는 과정에 대해서 더 이상 의문을 갖기 않는다.  더 나은 선택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눈을 감는다.

선장의 고뇌와는 상관 없이 관객인 우리는 해피엔딩을 보면서도 또 다른 기억으로 괴로워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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