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춤추는 재스민 Nov 14. 2018

베일리 어게인

  영화의 좋은 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반대도 영화의 장점이긴하다. 심각한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 영화는 이런 상반된 장점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매체다.


  엔딩 크레딧에서 라세 할스토롬 감독의 이름을 보고 살짝 놀랐다. 가벼우면서도 가슴에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들을 알게 모르게 꽤 많이 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봤던 그의 영화들은 <사이더 하우스>, <하치 이야기>, <개 같은 인생>, <초콜릿>, <쉬핑 뉴스>, <로맨틱 레시피>,<세이프 헤븐>, <길버트 그레이프>다. 이런 영화들을 볼 때, 나는 감독이름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후, 감독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어쩐지'라는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된다. 심각한 영화들이 아니면서도 인간의 삶에 대한 따스함을 진지하게 느끼게 해준다고나 할까. '인간이어서 힘들고 슬프지만 인간이어서 따듯함도 찾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이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은 인간에 대한 애정만큼 개에 대한 애정도 많다. 주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기차역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의 이야기를 그린 <하치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많이 남았던 영화다. 개가 인간에 대해 애정을 형성하게 되면 그것은 어떤 인간도 감히 따를 수 없을 정도의 차원이 된다. 인간에게서는 바라기 힘든 일방적인 애정이다. 일방적이지만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방적인 애정과도 차원이 다르다. 자신의 애정을 빌미로 인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억울해하지도 않고 분해하지도 않는다.


  <베일리 어게인>은 길지 않은 견생을 바라보는 인간을 위로해주는 영화다. 다른 개로 반복해서 환생한다는 것, 그리고 전생에서 좋은 관계를 맺었던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을 사는 인간에게도 똑같은 위안을 준다. 인간의 삶은 개에 비해서는 무척 긴 것 같지만 길고 짧다는 객관적 기준은 존재할 수가 없다. 시간이란 시작도 없고 끝도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것처럼 사라질 때도 그냥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이 설정한 끝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맞지 않는 이 단어는 너무 잔인하게 들린다.  끝이라고 설정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꾸 미련이 생기고 무언가에 매달리게 된다.


  <베일리 어게인> 처럼 개의 삶이 여러번 반복된다는 설정의 형상화는 주체가 개라서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묘한 효과를 거둔다. 인간의 환생에 대한 이야기도 늘 있어왔지만 믿기는 힘들다. 하지만 개라면? 혹시 정말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개는 말을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비밀을 폭로할 위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가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환생을 허락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입이 가벼운 존재다. 그래서 시간에는 시작도 끝도 없듯이, 사실은 삶도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설정에 위안을 받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생은 그냥 많은 생들 중 일부분일 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폴란드로 간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