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후유증이 너무 크다는 것을 이미 젊은 시절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나. 원래 늦바람이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대학 신입생 때 진탕 술을 마시고 너무 괴로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술을 자제했다. 쓰고보니 꽤나 자제력이 있는 인간처럼 들리는데 그 나이란 40대가 훌쩍 넘은 후부터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꽤 오랜 세월 술과 웬수로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로 나의 한계를 안다. 정말로 딱 거기까지만 이라는 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거기서 멈춘다. 이래서 나이가 들면 좋은 점들도 있나보다. 일단 체력이 딸리기 때문에, 절제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하고 보자는, 에라 모르겠다, 이런 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경험에 의해 정확하게 계측된 정도에 들어맞게 된다는 것을 이미 오랜 세월동안 경험했기 때문에 어설픈 행동이나 감정을 갖지 않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란 결코 백프로 신뢰해서도 실망할 필요도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
십년 지기 친구가 보험을 노리고 살해하는 일도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데.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참으로 오묘한 존재다. 마냥 사랑할 수도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 좀 잘해주면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하고, 수틀리면 도끼날을 세우는 존재?
아니, 내가 할 이야기는 인간관계가 아니다. 술에 대한 찬양이다. 정신 좀 차리자.
술은 좋다. 쓰잘데기 없이 발달된 인간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운 인간도 그 순간에는 참을 수 있게 되고, 범인류적인 사람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실수를 하면 안 된다. 이런 감정과 무딘 감각이 술 때문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나이가 들었고 현명하기 때문에 그런 실수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술이 깨는 순간, 감정이 곧 변하리라는 것은 경험을 통해 숱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이든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나이든 사람은 힘 없고 정열도 식었지만 보기보다 만만치 않다.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자료화 했기 때문이다. 아닌 사람은 물론 제외시켜야 한다. 그런 사람은 그냥 나이만 먹은 거다.
내가 술이 좋다고 하는 이유는 숨쉴 틈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잠시나마 잊고, 긴장된 감정 근육을 잠시나마 이완시켜주고, 그래서 쉴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 때 술을 사랑한다.
날카로운 이성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때로는 그냥 내버려둬도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저절로 내버려두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술은 필요하다. 그래서 나처럼 그런 인간들을 위해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