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야 인생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는데...

벌써 나이가 너무 들었네.

by 이화정

2020년이다. 한 해가 올 때마다 조급해지고, 허무함이 느껴졌는데 올해는 뭔가 꽉 차 보이는 듯한 숫자의 모양 때문인지, 이제 나이가 들만큼 들어서인지 그냥 한 해가 기대가 된다.

구정이 지나면 어느새 3월이 슬금슬금 다가올 테고 그러면 다 말라죽은 것처럼 보이는 화단에서도 초록색 잎이 돋아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죽은 식물들을 거둬내고, 겨울을 이겨내고 살아 있는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며, 또 다른 새로운 식물을 사러 화원을 들락날락할 것이다. 한 네댓 번쯤 왔다 갔다 하다 보면 5월쯤이 될 것이다. 그러면 벌써 올해도 반이 지나갔다는 생각에 놀라는 척하면서 어렴풋이 그다음 해 내년이면 또 한 살 더 먹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잠시 콩 당거 릴 것이다.


이제부터는 언제까지는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 이것저것 생각하기에는 생산적인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대충의 계획은 세울 거다. 그냥 삶이, 내 정신과 신체가 허락하는 대로 하다가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편한 생각으로 살아야겠다. 순간을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보냈다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지내야겠다. 무리하는 것은 진짜 이제는 못하겠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꼭 결과가 좋으란 법은 없다는 것도 수십 년을 살다 보니 이제 수용이 된다.


나는 이사를 하면 그 동네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이 동네도 한 십 년 살고 보니 이제야 내 동네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유행도 한참 지난 다음에야 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늘 둔하고 느려 터지고 현실 감각이 없는 나는 이제야 인생이라는 것에, 삶이라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는데, 내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앞으로 남아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야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지금 행복하다고 느껴도 곧 사라질 것이며, 지금 문제가 생겨서 뒷골이 뻐근해도 조금만 지나면,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게 될 순간이 오고, 변화 없이 한심한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순간임을 알게 됐는데...

모든 것이 되돌이표를 찍듯 반복돼도 똑같은 반복은 결코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게 됐는데...

지금 다정하게 구는 사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변할 수 있으며 그렇게 돼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를 좋아해서, 내게 도움을 줄 거라는 생각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려야 한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됐는데 말이다.


곁에 있는 모두가 사라져도,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이 진짜고, 그 사실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이젠 된 것 같은데...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살다가 가고 싶다.


80세에 암병동에 입원해서 두 달만에 돌아가신 엄마와

92세부터 99세까지 요양원에서 7년간 지내다 돌아가신 큰 이모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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