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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Nov 17. 2019

어머니는 정말로 나를 사랑했을까.

첫번째 이야기.

  지금까지 어머니에 대한 글을 피해왔다. 말을 꺼내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거리를 두고 이제 어머니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됐나 보다. 글쓰기라는 방식을 통해 어머니와 관계를 정리하고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싶다.


  브런치 글에도 어머니에 대한 글들이 많다. 이 세상에 평범한 어머니는 없는 것 같다. 어머니가 되면서 모두 독특한 캐릭터가 된다. 우리 아이들 역시 나를 독특한 사람으로 이야기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어머니는 대개의 경우 한 사람뿐이니까. 그러니까 비교 대상이 없는 것이다. 남의 어머니와 자신의 어머니를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의 어머니란 피상적인 존재일 뿐이니까.


  나 역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어릴 때는 엄마가 나의 전부였고, 한 살씩 먹어갈 수록 그런 생각은 반비례로 줄어들었다. 최고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는 일이 많아졌다.  어떤 무서운 일이 닥쳐도 엄마만 옆에 있으면 절대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 틀렸음이 증명되는 일도 많아졌다. 엄마는 믿어도 되는 사람일까, 한 치의 의심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일까.  엄마에 대한 의심은 이미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어머니는 아마 알지 못했으리라. 내가 그렇게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의심하고 있었던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어머니 역시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게 정말 내가 낳은 자식이 맞나.' 라고 늘 의심하는 게 분명했다. 나뿐만 아니라 형제 자매 모두 그렇게 의심하는 것 같았다. 내 마음에 드는 자식이 한 명도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셨으니까.


  돌아가신 지 6년이 됐지만 지금도 가끔 어머니의 얼굴이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얼굴과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지는 일이 많아졌다. 내 행동이 어머니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 느낌은 묘하다. 기분이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표현하기가 매우 애매한 느낌이다. 나는 절대 어머니와 닮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한테서 많은 상처를 받았고 나역시 엄마에게 복수하듯 상처를 줬다.

   나는 어머니와 정반대로 자식을 키우리라 생각했다. 이를 테면 자식이 좋아하는 것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가치를 인정해주자, 한번 약속한 일은 꼭 지키자, 자식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지 말자. 등등 많았다.

   결과는 반반이었던 것 같다. 반은 지켰고, 반은 그렇지 못했다.


  어머니는 자식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해 희생은 희생대로 했지만 자식들로부터 한번도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부작용만 컸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억울해했다. 그런 어머니를 봐왔길래 나는 결코 자식 때문에 뭘 포기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내 삶을 챙긴다고 자식에게는 해줄 것도 제대로 못해주는 엄마가 되고 만 것 같다. 어디까지가 부모가 해줘야 할 일인지도 사실은 애매하지만.

 하루는 좋은 기억으로, 또 하루는 나쁜 기억으로 내게 다가오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한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어머니는 내게 어떤 존재였나. 그리고 나는 어머니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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