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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Nov 19. 2019

꺼질 줄 몰랐던 엄마의 배

두번째 이야기 - 다섯은 너무 많아

엄마는 8년간 다섯명의 자녀를 낳았다. 중간에 유산이 된 적도 있으니, 임신 경험은 더 많다. 밑으로 셋은 거의 연연생이다. 6, 70년대에도 도시의 가정에서 다섯은 적지 않은 숫자였다. 결혼 후, 3년간 아이가 없어서 눈물 짓다가, 나를 낳았다는 말은 어릴 때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러나 자궁 문이 한 번 열리니, 그 다음부터는 쉴 새 없이 아이가 들어섰다. 나는 첫째 였기 때문에 엄마가 배가 늘 불러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정확하게 기억나는 아이는 막내동생이다. 그 아이를 병원에서 데려와 방안에 내려놓았던 것도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어젯일처럼 생각난다. 움직이는 인형처럼 생긴 조그마한 사람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아기가 울면서 발을 방바닥에 비벼댔는데 보니까 발꿈치가 빨갰다. 요를 벗어난 아기의 발이 뜨거운 방바닥에 마찰됐으니 발꿈치가 더 익을 수밖에. 나는 얼른 아이의 발바닥을 요위로 올려놨다. 그러자, 울음을 멈췄다. 나는 뿌듯했다. 마치 내가 동생을 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도 누군가를 보호해주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영웅의식 비스무레 한 거라고나 할까. 어릴 때는 그런 게 있었다.  


엄마가 가장 힘들어보일 때는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목욕시킬 때였다. 예전 엄마들은 다 그랬던가. 이태리 타월 속에 작은 수건을 넣어, 살이 빨갛다못해 쓰라릴 정도로 빡빡 문질러댔다. 목욕시간은 고문 받는 시간이었다. 요즘처럼 집안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물을 데워서 목욕을 하기도 번거로웠다. 보일러는 한참 뒤에나 나왔다. 그러니 공중목욕탕에 한 번 가면 사정없이 본전을 뽑고 왔다. 탕에 들어가 때를 불리는 시간부터 괴로움이 시작됐다. 숨이 막혀 살짝 나올라치면 더 있으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마지막 코스는 머리감기였다. 머리를 감을 때쯤이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열지옥으로부터 곧 해방된다는 뜻이다. 엄마는 무릎에 아이를 눕히고 머리를 감겼는데, 그때 올려다본 목욕탕의 천정은 너무 높았다. 위에는 굴뚝처럼 김빠져 나가는 구멍이 있었다. 그 모양이 괴이했다. 나는 내 몸이 가볍고 가벼워져서 거기까지 올라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목욕탕은 대개 남탕과 여탕이 붙어 있었다. 중간에 뚫려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엿볼 수 없는 높이에 있었다. 저쪽에는 남자들이 모두 옷을 벗고 있을 거라 상상하니, 기이한 생각도 들었다. 구경해보고 싶은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남자 아이들은 대개 엄마를 따라왔고 작은 고추를 달고 졸랑졸랑 걸어다녔다.


엄마가 우리 남매 다섯명을 차례로 씻기는 모습은 보기에도 고통스러웠다. 엄마는 마치 출산을 할 때처럼 얼굴에 온통 땀범벅이 된 채로 오만상을 찌푸리고 머릿채가 흔들릴 정도로 아이의 몸에 있는 때를 부드부득 밀어댔다. 때는 우수수 떨어졌다. "이그 이 때좀 봐라."라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 위로도 구슬같은 땀방울이 우수수 떨어졌다.  엄마의 고통스런 표정을 보면 태어나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기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엄마가 힘들 거라는 생각보다는 나는 절대 아이를 많이 낳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목욕시키는 것은, 그것도 다섯명이나 목욕을 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은 후, 처음으로 대중목욕탕에 데리고 갔던 날이 기억난다. 나는 가슴이 살짝 설레였다. 그리고 조그마한 알몸뚱아리를 가슴에 안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수증기가 자욱한 가운데 벌거벗은 여자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모습이 기이했던지, 아이는 무서워하면서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내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여기저기로 조금씩 진출했다. 그리고 이내 물놀이에 정신이 팔렸다. 두 볼이 발그레해진 채로 작은 물그릇에 수건을 올려놓고 수건 위로 물웅덩이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했다. 내가 어릴 때 했던 놀이랑 똑같았다. 아이들이 하는 짓이란 어쩌면 저리 똑같을까. 나는 엄마처럼 아이 몸에서 때를 벗기지 않았다. 대충 비누질만 했다. 목욕의 고통은 내 세대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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