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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내가 믿는 것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by 춤추는 재스민




며칠 전에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시리즈물을 봤다. 2020년 3월에 8부작으로 된 시즌 원이 완결된 드라마다. 제목만 보면 성폭행을 다룬 범죄수사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니, 뭐가 믿을 수 없다는 말인가. 이 드라마는 피해자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인식의 틀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핵심은 성폭행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갖는 편견과 안이함이다. 성폭행은 살인보다 심각하지 않은 사건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다. 군대에서 성폭력으로 자살한 여자 부사관 사건을 보라. 성폭행은 다른 범죄와는 달리, 피해자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갖게 된다. 피해자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곱지 않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그런 식의 2차 피해가 없다는 점이 위안을 준다. 이 드라마는 그런 2차 피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이 드라마가 여타 범죄수사물과 다른 점은, 범행 장면에서 피해자를 대상화해 쾌락적인 시선을 유도하고 있지 않다는 점, 강간이라는 범죄에 여성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시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 가해자의 표적이 될만한 공통적인 요인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십대의 가녀린 소녀라든가, 유흥업소 여성이라는가라는 식으로 구별지어 거리감을 만들지 않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십대인 마리 애들러가 강간을 당한 후에, 경찰에 진술하는 것부터 드라마 첫회가 시작된다. 그런데 첫 회부터 굉장히 모호하다. 마리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 때문이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현장에서는 증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전에 마리를 맡았던 위탁모의 진술은 이 사건을 맡은 남자 형사들을 혼동스럽게 만든다.


위탁모 역시 젊은 시절에 성폭행을 당한 경험을 가진 여성이다. 그런데 마리의 태도를 보면 자신과는 너무 다르다. 마치 아무일이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게다가 진술도 세부적인 부분에서 약간씩 달라진다. 위탁모는 마리는 원래 관종짓을 하는 아이였다고 말한다. 엄마와 아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탁자에 올라가 야한 춤을 춘다거나, 생일 파티에서 주인공인 아이가 촛불을 끄기 전에 자신이 확 불어서 꺼버려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 장면을 보면 시청자들도 위탁모의 말에 기울어지게 된다. 위탁모는 강간사건이 마리의 자작극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인식할 때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경험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상 그건 백프로 가짜야 라고 말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이 세상에 백프로란 없다.


위탁모의 이야기는 결정적으로 형사들에게 마리가 허위진술을 했다고 믿게 만든다. 마리는 결국 자신이 허위진술을 했음을 시인하고 만다. 첫 회는 시청자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든다. 마리가 실제가 아닌 환상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도 주기 때문이다. 마리는 그 뒤로 자신의 주장을 두차례나 번복한 탓에 주변사람들의 신뢰감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그런데 그 후로 마리가 겪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유형의 사건들이 여기 저기서 발생하면서 시청자들은 마리의 말이 사실이라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강한 의문이 남는다. 마리는 왜 허위진술이라고 시인했을까.


마리는 굉장히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원가정에서도 위탁 가정에서도 학대를 받았으며 위탁 가정도 여러번 바뀌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자신이 진실을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정한 틀에 들어맞지 않은 한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형사들의 허위진술 주장을 그냥 받아들인 것이다.


똑같은 사건을 겪었어도 피해자의 반응을 다를 수 있다. 마리처럼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의 경우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트라우마를 겪는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릴 때부터 환경의 변화가 심한 사람들은 겉으로 보면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에 쿨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말을 해도 자신이 위로 받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현되지 못하는 내면의 상처는 더 깊어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이 옳은 것인지 늘 성찰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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