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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연 사태를 보는 엇갈린 시각들

by 춤추는 재스민


조동연 사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담론이 확산되면서 여러가지 의견을 동시다발적으로 읽게 된다. 나 역시 감정적으로 끌리는 의견들이 있지만 내 감정을 억제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읽어봤다.

몇 가지 방향의 의견들로 요약되는데 거칠게 나누자면 조동연에 대한 비난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쪽과 조동연을 비난하는 쪽이다.

하지만 이해하는 쪽도 조동연의 행동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문장을 꼭 끼워넣는다.


조동연은 이미 공직을 사임했기 때문에, 이제 사적인 영역에서만 계속해서 이슈화되고 있다.


사적인 문제는 정말 복잡하다. 결혼 문제를 비롯한 남녀간의 문제는 명확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이 다르고 내 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건 당시 자신의 심경을 명확하게 기억하기도 힘들고 기술하기란 더욱 힘들다. 제3자는 노출된 팩트만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상황이 왜곡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어느 쪽의 주장도 백프로 옳다고 틀렸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주장의 시발점인 시각 자체가 잘못 됐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수긍되는 구절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구절도 분명히 있다.


먼저 조동연에 대한 비난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쪽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그녀에 대한 비반은 가부장적 시선에서 나왔으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경우엔 수많은 혼외자를 둔 것으로 유명한 재벌 이야기가 거론된다. 다른 재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스캔들이 없는 경우가 오히려 비정상으로 보인다. 그들의 행위는 당연시되면서 왜 조동연이 가진 애정 행각은 비난받아야 하며 사적인 일이 공적 영역까지 확대되어야하는가이다.

사실 정주영 회장의 이야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감이 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다. 지금은 아무리 천하의 영웅이라도 '영웅 호색'이니, '아무나 내 씨를 낳기만 해라, 내가 다 책임진다'라는 마인드로 나가면 비난 받는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남성이 중책을 맡고 있는 경우, 여자문제가 불거지면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비난했다. 큰 일 하는 남자의 길을 막는다는 비난이다. 허리 아래 일은 묻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만들어 생리적인 일로 폄하한다. 드물지만 여자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경우에는 남자고 여자고 예외가 없다.


조동연의 입장을 지지하는 의견은 이혼한 지 십년이 지났고 전남편에게 위자료도 다 지급했기 때문에, 사적 영역에서 상황은 이미 종료됐고 이제 자신 이 공적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연장해 중책을 맡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왜 과거 일로 비난을 받아야하는가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과거가 문제가 될 걸 알면서 공직에 나왔다는 욕망을 비난한다. 이 부분은 조동연이 제의를 받은 후 송영길에게 미리 사실을 밝히고 거절했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의 시각도 바뀌었으며 그럴 수록 더 꿋꿋해야 한다고 거듭 종용했다고 했다.

조동연에게 꽂히는 가장 큰 비난은 남편을 속이고 아이를 키웠다는 것이다. 남의 아이를 자기 아이로 알고 키웠던 배신감에 엄청난 무게를 싣고 있다. 조동연이 불륜을 행한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가부장적 시선으로 이 사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씨인 줄 알고 애정을 쏟았던 사람이 가졌을 인간적인 배신감이라고 주장하는 쪽이다.

여기에는 조동연이 임신을 한 시점이 문제가 되는데, 사실상의 부부관계는 이미 끝난 시점이었고, 이혼 소송 중이었다고 주장한다. 심리적으로는 언제부터 부부관계가 끝난 것인지 알 수 없다. 누구의 아이인지, 헷갈릴 여지도 분명히 있다.

조동연이 법적인 남편의 아이라고 속일 의도가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사정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재미로 하는 이야기지만 영화 <맘마미아>는 하루 간격으로 세 남자와 관계한 여성이 아이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 영화인데, 아무도 그 여성을 문란하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함께 박수치고 노래부르며 즐거워했다. 영화는 현실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에 가치있고 그래서 더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각은 훨씬 관대하다. 동성애자, 장애인, 다문화 가정 같은 소수자를 다룬 영화를 볼 때, 관객은 감정이입이 되고 그들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백프로 이해한다. 그러나 막상 현실 앞에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인간은 이성을 가졌지만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이며,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이 사태에 대해서도 좁혀질 수 없는 시각의 차이를 보게 된다.

영화 <라쇼몽>이 얼마나 인간 심리와 사회적 태도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지 다시 실감하게 된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서의 행동은 함께 간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나는 동의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다만 조동연의 경우에는 남편의 아이라고 속이고 계속 키울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한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고, 당시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도 직접 당해보지 않는 이상 힘들기 때문에, 혼외 임신사실을 기준으로 공적 영역의 수행 능력까지 판단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조동연 사태가 담론화되면서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상황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이 세상에는 하지 못한 이야기들, 숨겨진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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